이 짬뽕엔 국물 없어 [ESC]
먼저 재료 볶고 육수 넣어 조절
경상도서 인기 있는 중화비빔밥
밥 빼면 탄수화물 없는 술안주
요즘도 꽤 팔리는 메뉴인데 짬뽕국물이라는 중국집 안주가 있다. 워낙 탕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요구에 맞춰 화교가 개발한 안주 요리일 것이다. 내 어린 시절(아아, 무려 40여년 전)에는 고등학생들이 슬쩍 중국집에서 소주를 마신다면 안주는 대개 짬뽕국물이었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뻘겋고 기름진 국물, 인원수에 맞춰 숟가락이 푹푹 그릇에 미리 담겨 나왔다. 위생 그런 거 따지지 않던 때였으니까. 후루룩 국물과 양파조각과 오징어를 씹었다. 탕수육을 시키기에는 돈이 모자라고 그렇다고 군만두만 먹기에는 아쉬울 때 짬뽕국물은 훌륭한 안주였다. 그 때에는 오징어가 너무 많이 잡혀 가격 폭락으로 어민들이 시위를 했을 정도. 그러니 짬뽕국물에도 해산물이 넉넉히 들어 있었다.
PX에서 팔았던 간짬뽕
짬뽕으로 만드는 중국집의 변주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짬뽕밥, 짬뽕국물, 간짬뽕, 야키우동, 중화비빔밥 등이다. 서울은 앞 두 가지 외에는 거의 없었다. 기존 짬뽕과 차이가 없는 메뉴다. 면 대신 밥을 주면 짬뽕밥. 짬뽕국물은 앞서 얘기한 대로 식사가 아닌 안주를 의미한다. 국물이 뻑뻑해지고 뭔가 소스처럼 농후한 형태로 변한 것을 간짬뽕 등으로 부른다. 간짜장에서 온 말이다. 간은 ‘마를 건’(乾)의 중국식 발음이다. 물기 없이(적게) 바특하게 조려 볶는 방식이다. 짬뽕의 조리 과정을 알고나면 이해가 빨라진다. 짬뽕은 한국식 탕이 아니다. 대체로 따로 볶는 과정이 없고, 재료를 넣고 끓이면서 농도가 만들어지고 맛이 우러나오는 게 한국식 탕이다. 일단 볶고 보는 게 중국요리란 말이 있다. 중국요리에서 볶는다는 의미의 한자어는 대략 10가지가 넘는다. 볶음밥에 쓰는 초(炒), 튀기듯 볶는 짜장면의 작(炸)도 있다. 야구경기에서 ‘타선이 작렬했다’고 할 때도 같은 한자다. 아주 센 불에 볶는 건 폭(爆)이다. 하여튼 짬뽕은 국물요리이지만 먼저 재료를 볶고, 육수나 물을 넣어 용량을 조절한다. 초기 짬뽕은 국물 양이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조림에 가까웠다는 증언도 많다. 점차 한국인 기호에 맞게 넉넉한 국물 양으로 바뀌었다. 짬뽕의 경쟁자는 일본식 우동, 한국식 칼국수였다. 국물 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짬뽕이 원래는 볶음에서 시작했다는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요리가 있으니, 바로 간짬뽕이다. 인천 지역에서 더러 볼 수 있었는데, 군대에서 유명해졌다. 피엑스(PX)에서 파는 음식으로 2000년대부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흑흑. 피엑스에 ‘냉동’이 없던 군번입니다). 삼양라면에서 인스턴트 간짬뽕이 나온 건 2007년이다.
국물이 없거나 바특한 짬뽕은 대구 지역 사람들에게는 별난 요리도 아니다. 야키우동, 중화밥이라는 게 오랫동안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의 옛날 도심 화교 지역을 ‘종로’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는 전설적인 야키우동이 있다.(물론 지금은 대구 전역에 퍼져 있다.) 우동이라고 하지만, ‘면’을 통칭하는 의미에서 명명된 것이지 중국집 우동과는 다르다. 간짬뽕, 즉 볶음 짬뽕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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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에서 제육덮밥 파는 이유
중화비빔밥도 경상도 지역에서 인기 있는 현역이다. 화교 음식이 센 부산이나 인천에서도 판다. 밥 위에 볶은 짬뽕을 고명으로 올려낸다. 불맛과 매운 향이 훅 올라오는 고명을 썩썩 밥에 비비면 끝내준다. 중독성이 있다. 대구 출신 내 친구는 서울에 살면서 오로지 이게 먹고 싶어 기차 타고 집에 다녀오곤 했다. 야키우동이나 중화비빔밥을 먹으면 우선 입가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달고 짜며 맵다. 국물 많은 짬뽕이 되기 그 이전의, 일종의 농축 버전이니까 그런 것 같다. 짬뽕은 면을 뜨고 고명을 씹어가며 국물을 들이켜니 뭔가 매운맛이 고르게 퍼진다면, 야키우동이나 중화비빔밥은 한 번에 매콤하게 들어온다. 중화비빔밥에는 야키우동과 달리 계란프라이를 올려주는 것이 ‘국룰’. 중국집답게 바삭하게 튀기듯 하는 크런치 에그 스타일이 많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여러 지역 작은 중국집에서는 오래전부터 오징어덮밥이나 제육덮밥을 팔고 있다. 강한 화력을 쓰는 중국집의 조건을 살려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비틀어내고 있다. 그게 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을 팔려고 하는 중국집의 피나는 현지화 노력일 것이다.
대구식 중국요리의 상징처럼 된 야키우동이라는 말도 아주 재미있다. 일제강점기는 중국요리에도 일본어가 침투하던 시기였다. 불에 은근히 구운 것을 야키(燒き)라고 했다. 군만두 이전에 흔하게 부르던 야키만두라는 말은 그렇게 탄생했다. 겨울에 먹는 따끈한 중국 면인 따루멘(打滷麵)이 ‘우동’이 됐다. 중국식 덮밥은 중화동(中華井)이라고 했고, 지금도 아예 덮밥의 일본어인 ‘돈부리’라고 표기해서 파는 중국집이 더러 남아 있다. 대구의 야키우동은 불에 볶았다고 해서 야키와 면이 합쳐져서 명명된 것이다.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손님이 형태와 맛을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꽂히는 작명이 음식 이름으로는 최적의 ‘카피’다. 야키우동은 그렇게 인기 음식이 될 수 있었다.
간짬뽕 또는 야키우동과 중화비빔밥은 비슷한 조리과정을 거치지만 또 조금 다르다. 간짬뽕류는 걸쭉한 국물이 어느 정도 있지만, 중화비빔밥은 바특한 볶음에 가깝다.
이번 안주는 중화비빔밥에서 밥이 없는 형태로, 짬뽕이 짬뽕국물 안주가 될 때는 면이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레나 간짜장을 탄수화물이 없이 술안주로 하면 좋다는 걸 이미 이 지면에서 알려드렸는데, 짬뽕도 그렇다. 이 안주의 이름은 뭐라 부를까. 짬비라고 해본다. 비빔짬뽕이라는 뜻으로.
재료(2인분)
오징어 한 마리, 돼지고기(아무 부위나) 200g, 칵테일새우 6마리
양배추나 배추 50g, 양파 큰 것 반 개, 다진마늘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식용유 4큰술
간장 1작은술, 치킨스톡(액상) 1큰술
소금 약간, 청주나 소주 약간
1. 오징어는 먹기 좋게, 돼지고기는 가늘게 썬다. 양배추나 배추, 양파도 1㎝ 폭으로 썬다.
2. 센 불에 팬을 올린다. 식용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양파를 넣고 볶는다. 돼지고기를 넣고 바싹 볶는다(이 대목이 중요하다. 대강 볶으면 맛이 비리다). 고춧가루를 넣어 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더 볶는다.
3. 2에 오징어와 새우를 넣고 볶다가 양배추를 넣고 한번 더 볶는다.
4. 3에 간장, 술을 넣는다. 치킨스톡을 넣어 농도를 내고 간을 보아 부족하면 소금을 넣어 조절한다. 뜨거울 때 먹는다.
박찬일 |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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