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보다 마음 가는 대로…자극적 소재의 성찰적 결말
신들린 연애
무속·사주·타로 남녀 8명 짝짓기
젊고 세련된 모습에 선입견 깨져
사주 선택과 현실감정 사이 고뇌
주술 얽매이지 않은 인간적 통찰
‘신들린 연애’(에스비에스)는 6부작 짝짓기 리얼리티 예능이다.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쇼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기획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출연자 전원이 사주·무속·타로 등 점술가 8명으로 구성되었다. 엠시(MC)로 신동엽, 유인나, 가비, 유선호에 역술가 박성준이 합류했다.
‘신들린 연애’가 지상파 예능으로 편성된 것은 영화 ‘파묘’의 흥행 이후 샤머니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오컬트물은 오랫동안 비(B)급 콘텐츠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파묘’의 1000만 흥행은 이러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는 마치 영화 ‘부산행’의 흥행으로 좀비물이 주류 장르로 탈바꿈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까지 무속인이 된 연예인의 근황을 전하는 예능 콘텐츠가 유튜브나 종합편성채널에 간간이 소개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들린 연애’, 무속인들을 조명한 오티티(OTT) 다큐멘터리 ‘샤먼: 귀신전’, 웹드라마 ‘타로: 일곱 장의 이야기’의 공개가 잇따르고 있다.
젊고 매력적인 무당
‘신들린 연애’가 던지는 원초적인 충격은 점술가들이 모두 젊고, 세련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무당들의 미모가 ‘미쳤다’. ‘어서 와, 이렇게 매력적인 무당은 처음이지?’랄까. 영화 ‘파묘’에서 김고은과 이도현이 연기하는 ‘엠제트(MZ) 무당’을 보았음에도, 무당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이 깨지질 않았던 모양이다. 하기야 영화 속 캐릭터를 보는 것과 리얼리티쇼의 실존 인물을 보는 것은 다른 충격이다. 출연자들의 아름다운 외모와 마성의 섹시함에 넋을 놓고 보다가, 본래 ‘아름다울 미’(美)의 상형이 샤먼임을 떠올린다. 원래 전통사회에서 샤먼은 화려한 장식을 한 미남·미녀였고, 연예인적인 카리스마를 뿜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외모뿐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도 출중하다. 함수현은 내숭 없이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에 유머러스하다. 무당이 된 과정을 말하는 순간도 담백하다. 10년간 은행원으로 무당의 운명을 거부하다가 신내림을 받았다는 사연도 인간적인 고뇌가 서려 있지만 씩씩하다. 이홍조는 운동 트레이너와 통역사를 했고 스튜디오와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등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던 재능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신내림을 받은 과정의 신비함도 곁들인다. 더욱이 ‘양보가 없는 신’에게 ‘동생을 대신해’ 신내림을 받았다니, 이타적이기까지 하다. 박이율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신비한 눈빛과 인상이 특징적이다. 그는 시종 차분하고 진중한 수행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무당이면서 퇴귀사’라는 그의 낯선 직업이 내공이 단단한 종교인임을 믿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출연자들은 모두 점술가지만, 그들 내부에서도 무당은 눈빛 등으로 알아보고 다소 특별하게 여긴다. 무당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셈이다.
주술보다 강한 ‘연애 일반이론’
‘신들린 연애’는 운명을 믿고 남의 연애를 점쳐주는 이들이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는 게임이다. 과연 운명의 점괘대로 될 것인가. 이런 흥미로운 질문을 충족시키기 위해 구성을 차별화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하우스에 들어가기 전에 사주만 적힌 운명패를 보고 상대를 고르게 했다. 각자 직감과 점사를 활용해 운명패를 골랐다.
최한나와 이홍조는 서로 운명패를 고른 운명의 짝이었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에 순항했다. 우연히 첫 데이트도 함께 했고, 서로의 매력을 칭찬했다. 최한나는 운명패를 고를 때 강력한 점사가 나왔는데, 운명패의 주인공이 바로 이홍조일 것 같다고 말한다. 둘 사이에 확신에 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출연자들의 직업을 밝힌 직후 최한나가 이홍조에게 오방기로 연애운을 봐달라고 한다. 점사가 나쁘게 나오자 최한나는 불안해하며 스스로 타로 점을 본다. 배신 카드와 데빌 카드가 뜬다. 더욱 불안해하며 계속 타로 점을 본다. 데스 카드가 뜬다. 그러자 이제는 끝장이라며 낙담한다. 최한나와 이홍조는 여전히 서로에게 선택표를 주는 관계이다. 하지만 최한나가 점사에 의존하면서 둘의 마음은 하염없이 흔들린다.
여기 점사의 지옥에 빠진 또 한 사람이 있다. 이재원은 자신이 고른 운명패에 집착했다. 그는 자신이 고른 운명패가 함수현인 줄 오인해, 계속 함수현에게 선택표를 주며 직진했다. 사실 운명패와 무관하게 실제 관계에 집중하며 마음 가는 대로 상황을 풀어나갔다면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며 첫 데이트를 하고 선택표를 주었던 조한나가 자연히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사실 조한나가 이재원이 고른 운명패의 주인공이었다. 조한나가 응답 없는 이재원을 향한 마음을 거두자, 이재원은 0표를 기록한다. 그제야 이재원은 자신의 추리가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멘붕’에 빠진다. 급기야 그는 도중하차해버린다.
한편 조한나는 하우스에서 끊임없이 타로 점을 보며, 눈앞의 연애에 집중하지 못한다. 일명 “타로에 미친 여자”이다. 조한나는 말이 빠르고 질문이 많고, 생각난 것을 모두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직업적 자의식도 강하다. 이재원과 첫 데이트를 했을 때 그는 직업에 대해 주로 말을 하느라, 상대의 매력에 집중하지 못한다. 처음 호감을 느낀 이재원이 퇴소해버리자 이홍조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만, 전화로 바깥에 있는 ‘선생님’에게 20분간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사람의 타로 점을 계속 봐주는 등 연애 감정에 몰입하지 못한다.
‘신들린 연애’는 주술적 세계관을 전제하지만, 주술적 세계관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운명이 아닌 마음을 따를 것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프로그램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주술의 힘’이 아닌 ‘연애의 일반이론’이다. 즉 성적인 매력, 인간적인 매력, 배려 등이 승리한다.
최한나가 이홍조와의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고 괴로워할 때, 박이율이 그 사이로 직진해 들어간다. 박이율은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한결같은 믿음을 준다. 마음이 여리고 피암시성이 강한 최한나가 갈등할 때, 곁에서 충분히 기다리고 다독이고 축원한다. 그는 처음부터 “퇴귀사인 것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왔으며, 운명이 아닌 마음 가는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최한나를 지지하고 보살피고 ‘힘들 때 일으켜줄 수 있는’ 박이율은 과연 최적의 남자이다.
함수현과 이홍조. 카리스마 넘치는 최고의 미남·미녀 무당이 하우스에서 밤새 웃고 떠든다. (두 사람이 밤새 떠드는 것을 듣는 다른 참가자들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롤러장에서 시시덕거리는 두 사람을 보라. 둘은 특수 전문 직업인으로 결이 맞고 죽이 맞고 농담의 코드가 잘 맞는다. 가령 이홍조에게 조한나는 “나를 스캔할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최한나는 “왜 나에게 충분한 확신을 주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그런데 함수현은 그런 설명·변명·해명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뭘 자꾸 정색하고 말해야 하지만, 이 사람은 얼굴만 봐도 씩 웃음이 나오고 실실 농담을 해도 다 말이 통하는 상대이다. 누가 봐도 너무 잘 어울리는 환상의 짝꿍이다.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에 이홍조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라 답한다. 함수현은 “잘 놀아주는 사람”이라 답한다. 함수현은 “아까 잠깐 황혼과 애가 둘이라는 미래를 보았다”고 말한다. 무당 커플다운 최고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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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성 유혹 이겨내고…
참가자들은 대부분 처음 찍은 운명패가 아닌 마음을 따라 선택했다. 최한나·조윤아가 박이율을 선택하고, 함수현·조한나가 이홍조를 선택했다.
오직 허구봉만이 운명패의 상대를 최종 선택하였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하지만 허구봉은 역술가로서 가장 충실하였고 인간으로서 가장 지순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함수현의 운명패를 선택한 순간부터 자신이 경쟁 구도에 놓이고 다른 남자로 인해 괴로워질 것을 예측했다. 초반에 함수현이 적극적으로 다가올 때도 흐름을 예측했다. 마음이 떠난 함수현이 거절하는 부담을 덜어주고자, 허구봉은 함수현에게 엽전을 던지게 한다. 그 점사를 혼자 읽으며 거절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함수현이 이홍조를 최종 선택한 뒤에도, 허구봉은 일편단심을 마지막으로 고백하며 마무리한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역술가로서 본분을 내려놓고 마음을 따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가장 역술가다운 행보였다. 함수현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은 그의 운명이다. 허구봉은 최선을 다하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조윤아도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도 남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역술가로서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박이율에게 “최종 선택이 맺어지지 않는 것을 안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택할 사람이 없는 것을 안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박이율이 자신과 맺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와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하기에 선택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는 것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길이다.
‘신들린 연애’는 자칫 샤머니즘과 연애 리얼리티쇼의 결합이라는 고자극 요소가 담뿍 담긴 예능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선정성과 볼거리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면 화제성은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지극히 담담한 연출과 편집으로 성찰적인 결말에 도달했다. 점술가들이 운명을 타고 넘거나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오히려 인간의 길을 음미하고, 운명에 얽매이지 않아야겠다는 통찰을 얻는다. 이토록 철학적인 예능이라니!(그래서 점집에 철학관이라고 쓰여 있구나!)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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