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인가 스캔들', 레트로풍 막장의 유혹

아이즈 ize 한수진(칼럼니스트) 2024. 7. 27.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즈 ize 한수진(칼럼니스트)

사진=디즈니플러스

"'이 여자 이 지옥에서 내가 꼭 꺼낸다' 당신 지켜주는 거 그거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재벌가 사모님에게 경호원이 이렇게 말한다. 둘 사이에 야릇한 눈빛이 오간다. 경호원은 이윽고 사모님을 끌어안는다. 경호원은 사모님을 지키다 점점 그에게 빠져들고, 사모님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경호원에게 스미듯 매료된다. 당연히 사모님은 유부녀다. 이 금단의 사랑 뒤엔 재벌가의 중상모략이, 그리고 얽히고설킨 다른 인물들의 치정도 있다. 

이는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극본 최윤정, 연출 박홍균)의 서사다. 사모님은 완수(김하늘), 경호원은 도윤(정지훈)이다. '화인가 스캔들'의 줄거리는 이렇게 소개돼 있다. 대한민국 상위 재벌 1% 화인가를 둘러싼 상속 전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우재단 이사장 완수와 그의 경호원 도윤이 비밀을 파헤치는 치명적 스캔들 드라마. 치명적 스캔들이라는 소개말에서 이 드라마의 행간이 읽힌다. 시쳇말로 막장 드라마라는 이야기다. 막장 드라마의 클리셰인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상황, 극단적인 갈등, 불륜, 복수 등이 '화인가 스캔들'에 존재한다. 

사진=디즈니플러스

'화인가 스캔들'의 중심인물인 완수는 흙수저지만 골프로 인생역전한 인물이다. 도박에 중독된 어머니가 돈벌이 요량으로 완수를 골프 선수로 만들었고, 그는 맨몸으로 미국에 건너가 각종 세계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극중 선수로서 완수의 위상은 박세리 그 이상이다. 골프 실력도 외모도 인성도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덕분에 재벌가 화인의 며느리가 됐다. 도윤은 경찰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실력 좋은 경찰 출신이다. 하지만 동료이자 친우가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됐다. 도윤은 친구의 죽음을 파헤치다 화인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화인에 잠입했고 완수의 경호원이 됐다. 완수의 시아버지를 죽인 범인과 도윤의 친구를 죽인 범인은 같다. 그렇게 둘은 유대를 맺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점점 사랑에 빠져들었다. 

완수는 이 막장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만큼 삶이 녹록지 않다. 남편은 결혼 생활 내내 불륜을 저지르고 혼외자까지 뒀다. 시어머니와 시동생 부부는 완수의 출신을 문제 삼으며 끊임없이 그를 멸시한다. 하나뿐인 자식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완수를 향해 다정히 미소 짓던 유일한 그의 편 시아버지는 의문의 사고로 숨졌다. 친모는 시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 갇힌 채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도 계속해서 위협받는다. 기구하다 느껴질 만큼 굴곡진 삶을 사는 완수는 시댁 식구들이 자신을 멸시할수록 고개를 빳빳이 들며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된다. 그러다 도윤을 만나 보호받고 안도를 느끼면서 저변에 꽁꽁 숨겨뒀던 유약함을 축축한 포옹과 키스로 위로받는다.  

분명하게 이 작품은 자극적이고 과장됐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점이 재미로 통한다. 경호원과 사랑에 빠진 사모님이라니. 자극적인 틀이지만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독특한 건 대놓고 예스러운 느낌을 낸다는 거다. 연기부터 연출, 대사, 카메라 구도까지 요즘 작품에선 볼 수 없는 10~20년 전 클리셰 한 낡은 기법을 끌어다 써 오히려 신선하다. 망망대해 요트에서 이뤄진 완수와 도윤의 첫 키스신은 전후 장면에서 펼쳐진 요란한 카메라 줌인으로 90년대 리조트 광고를 연상시킬 정도다.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을 트래킹 샷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예스러움의 화룡점정을 장식한다. 눈빛 교류과 미묘한 스킨십으로 은근한 감정선을 유지하던 두 남녀 주인공이 처음 키스하는 장면은 8회에 이르러서야 성사됐다. 이 작품은 10부작이다. 초장부터 진도를 쭉쭉 뽑는 요즘 작품과 달리 옛 감성을 따라 예열이 길다.

'화인가 스캔들'의 메가폰은 박홍균 감독이 잡았다. 그는 MBC '선덕여왕', '최고의 사랑' 등을 연출했다. 집필은 KBS '좋은 걸 어떡해', MBC '황금마차', SBS '흥부네 박 터졌네'를 작업한 최윤정 작가가 맡았다. 박 감독의 마지막 작품은 7년 전 tvN '화유기', 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은 10년 전 SBS '사랑만 할래'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사랑받았던 과거의 것을 고스란히 '화인가 스캔들'에 녹였다. 억지로 시대에 발맞추려 트렌드를 흉내만 내면 더 엉성해지는 법이다. "내 남자/여자 할래요?"라는 속 부대끼는 낡은 대사가 난무하는 이 작품은 과거로 회귀한 요란한 촬영 기법으로 연쇄적인 자극을 주다가 끝내 홀리듯 빠져든다. 때문에 클리셰 범벅이라며 언론의 혹평을 받았지만 흥행 면에서는 성과가 나쁘지 않다. 디즈니플러스 한국 톱10 전체 부문에서 2주 이상 1위를 했다. 대만에서도 나흘 동안 1위를 했다. 싱가포르, 홍콩에서도 톱10이다. 

사진=디즈니플러스

역시 아는 맛이 무섭다. 2000년대 감성이 장면 사이사이를 헤집는 '화인가 스캔들'을 보고있자면 잔잔하게 실소가 터져 나오지만, 빤한 걸 펀(fun)하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었다면 클리셰도 작은 미덕이 될 수 있다. 어찌 됐건, 완수와 도윤의 종착지가 궁금한 것처럼. 

Copyright © ize & iz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