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김일성 키즈”, 그들은 대체 무엇에 씌었던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4. 7.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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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40회>
김일성, 김정일 동상 아래서 참배하는 북한 주민들./공공부문

주사파의 바이블: “주체사상에 대하여”

1988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국립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하여 첫 학기를 마친 한 친구가 재수생인 나에게 40여 쪽 되는 문건 하나를 건넸다. “주체사상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탄생 70 돐 기념 전국 주체사상 토론회에 보낸 론문”이었다. 198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인 김정일”이 직접 썼다는 북한의 선전물이다.

그 친구는 “놀라운 문건이니까 마음을 비우고 꼭 정독”하라면서 말했다. “이 논문을 잘 읽어보면 북한이 실제로 어떤 나라인지 알 수가 있어!” 당시 대한민국 대학가에선 그렇게 주체사상 학습 열풍이 일고 있었다. 이제 와 다시 그 문건을 찾아서 읽어보면 전체주의 정권의 선전물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재확인하게 된다. 도입부에 줄줄이 나열되는 “수령님” 찬양 몇 문장을 보자.

대기근을 일으키면서도 핵무장에 몰두했던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과 그의 저작 “주체사상에 대하여(1982).”/공공부문

“진보적 사상은 사회 력사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민대중은 진보적 사상에 의하여 지도될 때 력사의 힘 있는 창조자로 될 수 있습니다.···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은 탁월한 수령들에 의하여 창시됩니다.··· 수령님께서는 억압받고 천대받던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시고 위대한 주체사상을 창시하심으로써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시였으며 인류 력사 발전의 새시대, 주체 시대를 개척하시였습니다.” (https://ko.wikisource.org/wiki/주체사상에_대하여)

인민대중이 힘 있는 역사의 창조자가 되기 위해선 탁월한 수령들이 창시한 혁명사상에 따라야 한다는 말인가? 한 인간의 사상을 절대화하는 전체주의적 복종의 논리는 아닌가? 김정일은 1930년 불과 18세의 나이로 김일성이 창시한 “주체사상”이 “사람 중심의 새로운 철학사상”이라면서 주장한다. “수령님께서는 사람은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밝혔시였습니다.” 요컨대 “주체사상”을 창시한 김일성이 인류 역사 발전의 새 시대인 주체 시대를 개척한 탁월한 수령이라는 전체주의 신정국가 북한의 체제 선전일 뿐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면, 왜 북한 인민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왜 ‘어버이 수령님’만 숭배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몰개성의 좀비들로 전락했는가?” 바로 김일성이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북한 인민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파괴한 후 전체주의적 사상통제와 무지막지한 세뇌 교육으로 그들의 영혼에 예속성, 맹목성, 복종성을 심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게 나는 당시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에 따라서 “주체사상에 대하여”가 고작 북한 정권의 선전임을 간파했는데, 먼저 대학물 살짝 먹은 그 친구는 이미 “김일성의 아이들” 틈에 끼어서 섬뜩한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김정일을 “사상가”라 찬양한 남한의 철학자

그로부터 19년하고도 3, 4개월이 더 지난 후였다. 2007년 10월 2~4일 제2차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다녀온 “철학자” 김용옥은 딱 사흘 만에 10월 7일 KBS ‘남북정상회담 특별기획-도올의 평양 이야기’에 출연했다. 바로 그때 그는 그 “주체사상에 대하여” 책자를 한 손에 높이 들고서 강연장을 꽉 메운 청중을 향해 외쳤다.

2007년 10월 초 대통령 방북 특별수행자 자격으로 평양에 간 철학자 김용옥이 북을 치고 있다./청와대 사진기자단

“내가 만나서 나도 진지하게 대화를 해봤으면 오죽 좋겠나. 민족의 문제를 위해서 당신(김정일)도 사상가고 나도 사상가인데, 여기 김정일 위원장이 쓴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책을 가지고 왔는데 이 양반도 사상가란 말이다. 유물 철학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가 대단하다.”(2007년 10일7일 방송 KBS 일요스페셜 ‘남북정상회담 특별기획·도올의 평양이야기’ 中)

또 그는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인간이 하는 쇼로서는 최상의 쇼다. 그러나 아리랑은 쇼가 아니다. 그 사람들의 삶이다. 이를 위해 매일매일 훈련할 것이고, 이런 참여를 통해 일체감을 얻고 가치관을 형성한다. 모든 전국 인민들이 모여서 아리랑을 보면서 ‘우리는 주체적·의식적·자발적·능동적으로 이 세계를 개혁해 나간다. 굶어 죽어도 좋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명예롭게 살자. 잘 사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느낀다. 아리랑은 어마어마한 가치 체계”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 장면을 KBS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똑똑히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다. (이 점은 조갑제닷컴에 실린 김필재 기자의 기사로도 확인된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을 기원한 것은 현명한 발언이었다..(중략) 그런데 이번에 보니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태음인으로 봤는데 포도주를 절제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공영방송에서 전체주의 국가의 독재자를 찬양하는 실로 야릇한 장면이었다. 진정 “이 정도면 막 가자는 거” 아니었을까?

1990년대 북한 대기근의 참상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진./The Borgen Project

2007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출판된 <<북한의 대기근(Famine in North Korea>>에 따르면 1990년대 초부터 1998년까지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 사회엔 대기근이 발생하여 60만에서 100만 명이 아사했다. 오직 “주체사상”의 신정체제 유지를 위해서 김정은 전체 인구의 3~5%를 굶겨 죽이면서도 핵무장에 나섰던 사악한 독재자였을 뿐이다.

국민 혈세로 유지되는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에서 몰상식한 독재자 찬양이 그렇게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뿌려졌다. 그 방송의 피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방송국의 사장은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마이크를 잡고 큰 목소리로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저 “철학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누구의 이익에 복무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선 1980~90년대 대한민국 소위 “진보 진영”을 장악했던 주사파의 정신세계를 파헤쳐야만 한다.

다섯 가지 “안티 의식”과 다섯 가지 “프로 의식”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유신의 아이들”을 “김일성의 아이들로 순식간에 거듭났다. “슬픈 중국”<38회>에서 이미 논했듯, 대략 다섯 가지 역발상이 그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1) “박정희는 친일 분자였고, 김일성은 항일 투사이다.”

2) “대한민국이 친일파가 외세와 결탁해서 급조한 식민지에 불과하고, 북한은 항일 투사가 외세를 배격하여 만든 자주 국가이다.”

3) “대한민국이 영구 분단 획책 세력이고, 북한이 통일 세력이다.”

4)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민중을 착취하는 노예의 길이고, 공산주의 명령경제가 노동자·농민 주도의 인간 해방의 길이다.

5) 미국을 위시한 “자유 진영”이 사악한 제국주의 세력이고, 소련·중국이 이끄는 공산 진영이 세계 인민을 해방하는 반제국주의 세력이다.

이 다섯 가지 역발상을 역사의 진실로 받아들이면,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의 잘못된 나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 밑바탕엔 반(反)대한민국, 반미, 반일,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라는 다섯 가지 “안티(anti-)” 의식과 친(親)북한, 친중, 친소, 친사회주의/공산주의 정도의 다섯 가지 프로(pro- ) 의식이 깔려 있었다.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선 이상 다섯 가지 “안티” 의식과 다섯 가지 “프로” 의식으로 중무장한 반체제적 이념 집단이 공고한 운동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1989년 5월 충남대 종합운동장에선 전국 100여 개 대학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기 전대협 발대식이 열렸다./공공부문

돌이켜 보면, 그 세대의 역발상은 세계사의 큰 방향을 터무니없이 빗나간 시대착오적 미망이었다.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정권들이 줄도산했고, 1991년 12월엔 사회주의 종주국 구소련이 무너졌다. 역사적 상황이 그러했음에도 대한민국 운동권의 “그때 그 사람들”은 세계사의 변화에 역행하여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갔다.” 그들의 이념적 확신은 대체 어떤 논리에 근거했는가?

우선 그들은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라서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으로 무너지고 사회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는 소위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맹신했다. 또한 그들은 레닌의 교시를 받들어 서방세계가 자본주의 최종단계에서 제국주의적 발악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한 구시대의 뒤틀린 혁명 이론에 사로잡혀서 그들은 한반도에서 미(美)제국주의자를 몰아내는 북한 주도의 “조국 통일” 투쟁이 비단 “우리 민족” 내부 모순의 해결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책무라 믿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들은 북한의 김일성이 단순히 “우리 민족의 수령”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영도자라는 궤변까지 펼쳐댔다.

1945~1950년 해방공간에서 철저하게 친일파를 청산하고 “양키들”을 축출하여 “조국통일”을 이뤘어야 했는데, “이승만 괴뢰도당과 미제국주의자들”이 영구 분단을 획책하여 “조국의 절반을 미제의 식민지로” 남겨뒀다는 북한식 정치선전이 1980년대 대한민국 좌파 지식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1960~70년대 중화학 공업으로 굴기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 후에도 1980년대 연간 10% 경제 성장률을 과시하며 견실한 제조업 국가로 발돋움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토록 비현실적인 역사관이 먹힐 수 있었을까?

신화가 된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1980~90년대 대한민국 대학가에서 주사파가 그렇게 순식간에 큰 세력으로 자라난 이유를 설명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역발상 중에서 특히 첫 번째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1917년생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거친 일본군 장교였지만, 1912년생 김일성은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투쟁을 벌였다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 유신의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 세미나나 술자리 토론에서 “박정희는 독립군 잡는 일본군 장교”인 반면 김일성은 만주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웠던 “민족의 영웅”이라는 NL계의 역발상을 접하고 나면, 12년간 관제 교육에 완벽하게 속았다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12년의 공교육 과정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주입받아 민족-근본주의자들로 길러졌기에 “유신의 아이들”은 1930년대 만주의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너무나 빨리, 너무나 쉽게, 너무나 맹목적으로 “김일성의 아이들”로 거듭날 수 있었다. 유신 시대의 강력한 민족교육이 “김일성의 아이들”이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

북한 조선노동당 선전부는 김일성 항일투쟁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각종 선전물을 만들어서 “유신의 아이들”을 뒤흔들었다. “피바다,” “꽃 파는 처녀,” “한 자위 단원의 운명” 등 김일성이 직접 창작했다는 북한의 소위 “3대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모두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을 과장하고, 극화하고, 찬양·선전하는 노골적인 정치 선동극이다. 1980년대 말부터 북한의 선전물은 대한민국에서 떼로 “김일성의 아이들”을 길러냈다. 고교 시절 이미 그 형을 통해서 “주체사상”에 입문했다는 내 주변 한 친구는 월북작가 석윤기(1929-1989)의 장편소설 ‘봄우레’를 거듭해서 읽고는 “위대한 수령 장군님을 따라서 미제 괴뢰도당을 물리치고 조국 통일을 앞당기는 혁명 투쟁의 전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 들어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문제는 북한에서 선전하는 1930년대 김일성의 무장 항일투쟁은 과장 거짓, 왜곡, 날조로 점철된 정치선전용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만주 지역 중국공산당 군사 조직인 동북항일연군에 들어가서 중국인의 명령을 받으며 항일투쟁을 했다고 하지만, 그의 항일투쟁에 관한 북한의 선전은 김일성의 권력 강화를 위한 우상화, 신격화, 신화화, 절대화의 조작물일 뿐이다. 북한이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를 어떻게 과장하고 조작했는지에 관해선 다음 회에 이어가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그 많던 “김일성 키즈,” 그들은 무엇에 그토록 씌었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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