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것은 ‘가능성’의 다른 이름, 공간[정우성의 일상과 호사]
창업은 곧 공간이었다. 사람과 아이디어, 계획과 열정이 있어도 공간이 없으면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벌써 6년 전. 소규모 투자를 받아 창업한 이후 벌써 2개의 개인 사무실과 2개의 공유 오피스를 거쳐왔다. 최근에는 세 번째 개인 사무실 입주를 마쳤다. 모든 사무실에 장단점이 있었다. 때로는 일과 공간이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다. 왜 그렇게 자주 옮겼을까? 개인 사무실과 공유 오피스는 어떻게 달랐을까?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우리 회사에 투자했던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는 몇 가지 혜택을 제공했다. 그중 하나는 ‘액셀러레이터’라는 이름에 걸맞은 네트워킹과 멘토링. 또 하나는 공간 지원이었다. 이제 막 창업한 사람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책상 몇 개를 놓을 사무실. 와이파이와 생수와 화장실 정도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서는 일할 수 없었다. 이틀 정도 출근하고 나서 부동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침묵과 독립이 필요했는데 그 공간에는 우리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회사들과 함께였다. 그 분주하고 설익은 생명력으로도 가슴이 충만해지는 효과가 있었지만…. 우리는 뉴 미디어 콘텐츠 회사였다.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송출할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녹음과 촬영이 필수였다. 주변이 부산스럽거나 사람이 많으면 곤란했다.
그래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5만원짜리 한남동 사무실을 새로 얻었다. 오래된 건물의 4층 공간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화장실은 3층과 나눠 썼다. 남녀 구분은 없었고 주차는 불가능했다. 옥상이 가깝다는 낭만이 있었지만 우리는 옥상에 올라갈 틈이 별로 없었다. 어떤 주말에는 취객이 건물 문을 열고 들어와 3층까지 올라온 후 화장실 문 앞에 큰일을 보고 갔다. 일종의 인분 테러를 당한 셈이었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다행히 사업은 순항했다. 부지런히 만들었던 콘텐츠도 인기가 있었고 협업도 무수히 해냈다. 덕분에 첫해에 직전 회사에서 받던 연봉을 상회하는 매출을 올렸다. 앞으로도 썩 괜찮을 것 같다는 직감이 생길 즈음 확장을 위한 새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는 120만원. 압구정역 근처에 있는 독특한 구조의 사무실로 이사했다. 자신이 있었다. 직원을 뽑을 생각으로 여분의 책상도 두었지만… 그 사무실에서 회사는 좌초하고 말았다. 공동창업자와 헤어진 후의 회사는 맥없이 백지 상태가 되었다.
공유 오피스는 저비용이 최대 장점
비품 부담 적고 네트워킹에도 유리
업체마다 특화된 서비스도 인상적
하지만 저소음·독립이 중요하다면
결국 개인 사무실 차려 나갈 수밖에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몇 달 정도는 혼자 지냈지만, 그 큰 공간에서 120만원이나 되는 월세까지 지출하는 건 낭비였다. 회사 통장 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때 만난 첫 번째 공유 오피스. 성수동에 있는 ‘헤이그라운드’였다. 헤이그라운드는 이른바 ‘소셜 벤처’ 회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소셜 벤처란 사회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회사를 뜻한다. 헤이그라운드는 환경/에너지, 보육/육아, 건강/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소셜 벤처 회사들이 지원서와 면접을 통해 입주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였다. 나는 뉴 미디어 콘텐츠로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고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 한다는 소개서를 쓰고 면접에 통과했다. 그렇게 얻은 공간이 공용공간에 있는 딱 하나의 책상. 이른바 ‘지정 데스크’였다.
책상 하나를 임대하는 비용은 확실히 저렴했다. 보증금이 낮은 것도 공유 오피스의 중요한 장점이었다. 스타트업에 고정비는 곧 생명수. 줄인 만큼 버틸 수 있었다. 헤이그라운드에서는 공유 오피스의 다양한 장점들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건물 전체에 밝고 긍정적인 활기가 있었다. 네트워킹을 위한 활동도 다양하게 열렸다. 요가를 함께하거나 간단하게 맥주를 나누기도 했다. 업무 시간에도 묘하고 느슨한 파티장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로부터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는 스타트업의 지상과제는 생존이었다. 나는 굶주린 경주마였다.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정신이 혼미했는데 물 마실 틈도 없었다. 빠르게 많이 만들어 시장에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밤낮으로 글을 쓰고 영상을 찍어 콘텐츠를 생산했다.
노력이 가상했던 걸까. 죽어 있던 회사가 천천히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박차를 가하고 싶었다. 집에서 성수동까지 이동하는 약 20분의 시간도 아끼고 싶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 차를 타지 않아도 2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새 사무실을 얻고자 했다. 그럴 목적으로 다양한 공유 오피스를 알아볼 때 들어온 이름들이 ‘패스트 파이브’와 ‘스파크 플러스’, ‘위워크’ 등이었다. 최종 선택은 ‘무신사 스튜디오’였다. 가장 중요한 건 책상의 크기였다.
파산 위기에서 회생해 다시 성장 중인 ‘위워크’야말로 공유 오피스 판타지의 서곡이었다. 공용공간에서 제공하는 커피나 맥주,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일하고 교류하는 사람들. 회사와 회사 사이에서 생기는 다양한 협업과 발전의 기회 등. 패스트 파이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 사무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공간과 서비스가 다양하게 제공됐다. 쓰레기 처리와 비품 등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형편으로는 다소 비싼 데다 책상이 너무 좁았다. 사무를 위한 공간이라면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뭘 만들고 쓰기에는 가로폭 1200㎜짜리 책상이 비좁고 답답해서 몸이 곱는 것 같았다. 그럴 때 ‘패션 특화 공유 오피스’라는 이름으로 공유 오피스 시장에 등장한 것이 바로 ‘무신사 스튜디오’였다. 가로 1400㎜ 책상의 시원함, 전체적인 인테리어의 깔끔함, 심플한 공용공간까지. 20㎝ 넓은 책상에서 20㎝만큼의 정신적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화려하고 유혹적인 공용공간을 딱 필요한 만큼으로 줄여 커피와 얼음, 물과 개수대와 소파를 제공하고 나머지 공간은 회사 개별 공간에 할애한 덕이었다. 택배 발송이나 재단, 피팅 등을 위한 패션 브랜드 맞춤형 공간도 알차게 갖췄다.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와 회의실도 효율적이었다. 다른 공유 오피스였다면 적어도 3개의 책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에 딱 두 개의 책상만 놓고 남는 공간에 최신형 선반까지 갖춘 호방함도 좋았다. 그래서 2년을 꽉 차게 머무는 동안 회사는 조금씩 성장했다. 다루는 콘텐츠의 장르도 조금씩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10평 정도 되는 새 사무실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5만원. 좌초해서 가라앉던 회사는 두 개의 공유 오피스를 거쳐 가까스로 보증금과 월세를 다시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공유 오피스의 효율과 편의 덕에 다시 안정된 회사를 조금 더 큰물에 새로 띄우는 기분일까. 침묵과 독립을 다시 찾은 것이다.
스타트업에 공간은 이런 것이다. 효율이자 생계, 의지이자 미래, 상상력이자 전투력, 끝없는 실험을 위한 발판…. 회사는 몇 번 더 좌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새 창업 6년 차, 아직 큰 성공은 못했지만 세 개의 사무실과 두 개의 공유 오피스를 거치며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공용공간은커녕 인터넷, 에어컨, 쓰레기통, 번듯한 책상과 선반도 모자라는 공간이지만 넓고 조용하며 자유롭다. 뭐든 새롭게 할 수 있는 이 공간에, 다시금 우리만 있다.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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