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자진사퇴 악순환의 굴레…방통위 결국 올스톱

최은수 기자 2024. 7.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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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식물 방통위①] 사상 초유 '상임위원 0명'…기능 상실한 합의제 기구
이상인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자진 사퇴로 당분간 의결 불능
尹 정부 출범 이후 한번도 정족수 채우지 못해…탄핵→자진사퇴 악순환 반복
공영방송 이사 선임 두고 여야 힘겨루기…본연 역할은 잃어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07.25.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최은수 심지혜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급기야 현직 위원이 한명도 없는 '식물 위원회'로 전락했다. 2008년 출범 이후 사상 초유의 사태다. 지상파 방송 이사진 교체 일정을 앞두고 여야 정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파행에 파행을 거듭한 결과다.

26일 이상인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겸 위원장 직무대행이 스스로 물러났다. 이 날 이 부위원장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 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가기 전 자진 사퇴한 것. 탄핵소추안이 국회 통과할 경우 최장 180일간 방통위원직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현 정부 들어 야당 주도의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자진사퇴한 건 이동관·김홍일 위원장에 이어 이 부위원장이 세번째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달 김홍일 위원장이 자진사퇴한 이후 홀로 방통위를 지켜왔다. 이제 현직에 남아있는 방통위원은 아무도 없다. 초유의 일이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현재 국회 청문절차를 밟고 있어 정식 위원장직에 임명되기에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이상인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별도 퇴임식 없이 정부과천청사를 떠나며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이 부위원장은 “방통위가 정쟁의 큰 수렁에 빠져 있는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상임위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서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하루빨리 방통위가 정상화돼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탄핵 소추→자진사퇴 굴레 반복되는 이유…합의 없는 합의제 기구


방통위는 지난 2008년 이명박(MB) 정부 시절 방송위원회와 독임제 부처인 정보통신부를 통합해 출범한 5인 합의제 기구다. 대통령이 2인을 지명하고 국회에서 여야 각각 1인, 2인 총 3인을 추천하도록 법률로 정했다. 방송의 독립성·공정성,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방통위는 파행을 거듭해왔다. 5인 상임위원단 구성에 실패하면서다. 방통위는 지난해 5월 한상혁 전 위원장이 면직된 후 3명의 상임위원 체제로 운영되다가 같은 해 8월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위원장-부위원장 2인 의결 체제로 운영됐다. 당시 YTN 최대주주 변경과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심사, 종편 재연장 등을 의결했다.

그러다 이동관 전 위원장이 취임한 지 100일도 채 안된 지난해 12월 전격 자진 사퇴했다. 야당이 위원장 탄핵 소추안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고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표결로 통과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위원장 직무가 중단된다. 헌재는 180일 이내 처분을 내려야 한다.

2인 의사결정체제에서 위원 1명의 직무가 중단되면 의사정족수(2인 이상)을 채울 수 없어 중요 정책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반면 위원장 자진사퇴 시 대통령이 다시 새로운 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업무 공백을 피할 수 있다. 2인 의결체제를 막는다는 명분의 야당의 탄핵소추안에 맞서 정책 일정을 강행하기 위한 맞수로 자진사퇴→재임명 수순을 선택한 것이다.

후임자인 김홍일 전 위원장도 같은 이유로 취임 반면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김 전 위원장은 YTN 최대주주 변경을 허가한 뒤 MBC 대주주 방문진, K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를 추진했다. 이에 야권이 그의 탄핵을 추진했고 김 전 위원장도 자진 사퇴를 선택했다.

오는 8월~9월 임기가 만료되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KBS, EBS 등 공영방송 3사의 이사진 교체시기를 앞두고 방송법을 개정하려는 야권과 이사진 교체 일정을 강행하려는 정부와의 정면 충돌이 사상 초유의 '식물 방통위'를 만든 셈이다.

위원회 위원이 0명?…정쟁 휘말리며 본연 역할은 잃어

방송 샅바싸움에 갇힌 방통위…플랫폼·통신 이용자 보호는 외면?

[과천=뉴시스] 고승민 기자 = 김효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이 9일 정부과천청사 방통위에서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KBS보궐이사 추천 및 방문진 보궐이사 임명 안건을 의결했다. 야권 김현 위원은 방문진 보궐이사 안건 의결 절차 등에 반발하며 회의에 불참했다. 2023.08.09. kkssmm99@newsis.com
방통위는 사상 처음으로 상임위원이 한 명도 없는 0인 체제를 맞게 됐다. 이 부위원장 사퇴로 이진숙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에 정식 임명되더라도 1인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단, 상임위원의 경우 별도 청문회 절차 없이 대통령이 즉각 지명할 수 있어, 2인 체제로의 복귀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26일까지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뒤 27일는 대전MBC 방문 검증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 청문 일정과는 별개로 윤석열 대통령이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에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요청안을 제출했으며, 20일 안에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내 기간을 정해 국회에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다.

국회가 이 기간이 지나도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보고서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임명할 수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 후보자의 전임자인 이동관·김홍일 위원장 임명 당시에도 재송부를 오래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임명을 강행했다.

이 후보자 임명이 강행되고 곧바로 이 부원장 후임이 지명되면 방통위는 2인 체제를 꾸려 공영방송 이사 선임안을 의결할 수 있다. 이에 야권은 이 후보자가 임명되더라도 탄핵을 통해 방통위를 1인 체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문제는 방통위 체제가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는 동안 방송 현안을 제외한 다른 정책·업무가 사실상 '올스톱' 돼왔다는 점이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및 방송사 재허가를 제외한 정책과 주요 의결 사항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방통위는 방송·통신·ICT(정보통신기술) 정책 수립, 규제, 이용자 권익 보호, 미디어 다양성 증진 등 다양한 정책 업무를 수행 중이다.

가령, 구글·애플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위반 과징금 등이 방통위의 시급한 현안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방통위는 구글·애플 앱마켓 인앱결제 강제와 관련해 과징금 680억원을 부과하는 시정 조치 방안을 발표한 바 있으나 최종 결정을 9개월째 내리지 못하고 있다. EU(유럽연합)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빅테크 제재를 시행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규제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이진숙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에서도 "9개월이 지났음에도 방통위가 아무 조치를 안 취하면서 구글·애플 눈치만 살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방통위 조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구글에서 워낙 긴 자료 설명서를 가져와서 지금 검토 중인데, 마무리 단계에 있는 만큼 제가 임명되면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이밖에 ▲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폐지 ▲공정거래위원회가 진행 중인 이동통신3사 담함 의혹 ▲전환지원금 실효성 논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해외 진출 지원 ▲지상파와 인터넷TV(IPTV)·OTT를 아우르는 통합미디어법 제정 ▲콘텐츠사용료 대가산정 제도 개선 ▲구글·넷플릭스 등 망 사용료 지급 등의 현안들도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방통위 사정에 능통한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한국 철수 계획을 밝힌 트위치는 빠르게 과징금을 부과한 반면 구글과 애플은 빅테크라는 이유로 눈치를 보느라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지 못하고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등 방송 현안에만 집중하고 있다"라며 "위원회가 의결을 하지 못하니 직원들의 업무도 제한이 되는 등 전혀 방통위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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