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유소년 아카데미, FC 바르셀로나 ‘라 마시아
기본기와 '스페인 축구' 방식 배우는 곳
야말을 발굴하고 지금의 선수로 성장시킨 곳은 세계 최고의 유소년 아카데미인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다. 국내 축구 팬들에겐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가 함께 몸담았던 곳으로 알려진 그곳이다. 보통 라 마시아라고 하면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선수 육성 시스템을 일컫지만, 바르셀로나 유스 아카데미 정식 명칭은 '라 마시아 데 칸 플라네스(La Masia de Can Planes)'다. 라 마시아는 선수들이 생활하는 생활관, 즉 클럽하우스 이름이다. 쉽게 말해 '청룡 축구팀'의 유소년 기숙사 '대한관'을 청룡 팀 유소년 시스템 '대한관'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라 마시아를 영어로 옮기면 'The Farmhouse(농장)'다. 농부가 정성스레 농작물을 재배하듯 선수를 성장시키겠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본격 시작된 바르셀로나 유소년 아카데미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선수 스카우트 능력은 물론 유소년을 프로선수로 키우는 교육 커리큘럼이 탄탄하다. 그 결과 이제껏 프로선수로 성장한 수가 엄청나다. 유소년에서 프로까지 일관된 방식으로 성장시키는 게 라 마시아의 특징이다. 그 과정에서 정확하고 냉정한 경쟁을 통해 최고 재능을 갖춘 이만 살아남아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
라 마시아에선 유소년 꿈나무를 철저히 기본기에 초점을 맞춰 훈련시킨다. 패스, 슛, 터치, 드리블 등 기초 능력에서 최고 실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본 자질이 갖춰진 후 경기하는 법을 익히고 오프 더 볼 움직임이나 동료를 활용한 이타적 플레이 훈련으로 넘어간다. 여기에 요한 크라위프가 가미한 '토털 풋볼' 기술도 추가된다. '티키타카'로 불리는 원터치 패스 플레이, 패스 & 무브도 라 마시아에서 익히는 중요한 기술이다.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 형태로 냉정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동시에 미드필더가 모든 경기 중심을 맡는 게 핵심이다. 선수들로 하여금 빠르게 위치를 이동하면서도 동료 위치를 파악해 계속 공격적인 삼각 대형을 만드는 것도 필수과목이다. 이처럼 철저한 기본기와 패스로 무장한 '스페인 축구' 하면 떠오르는 경기 방식을 배우는 곳이 바로 라 마시아다.
유소년부터 프로까지 하나의 교육철학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카데미 운영 목적이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프로선수 육성‘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같은 포메이션과 운영 방식으로 경기를 치르면 자연스레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을 때 적응 시간이 단축된다. 유소년 팀에서 다음 단계 반으로 승격해도, 본격적인 성인 무대인 B 팀으로 올라가도, 1군 무대에 올라가서도 자기 포지션에서 경기하는 게 편해지는 것이다. 설령 바르셀로나에서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거나 팀을 떠나도 어려서부터 탄탄하게 쌓은 기본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오래 살아남아 핵심으로 활약한 선수가 어느 팀에서든 제 몫을 해내는 이유다.
물론 이런 육성 방식에 부작용도 있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같은 시스템에서만 성장한 탓에 선수들이 다른 형태 축구엔 적응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한때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은 뛰어난 개인 기량을 지녔지만 다른 팀에선 수월하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수많은 슈퍼스타를 배출한 라 마시아 역사에서도 특히 빛난 시기는 2008~2012년경이다. 자신도 라 마시아 출신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아 스페인 축구가 천하를 호령하던 때다. 당시 이미 바르셀로나 1군에는 라 마시아 출신인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 수비수 카를레스 푸욜, 미드필더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그리고 리오넬 메시가 버티고 있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하면서 라 마시아 출신의 수비형 미드필더 세르히오 부스케츠를 1군으로 승격시켰다. 또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스카우트돼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떠난 라 마시아 출신 센터백 헤라르드 피케도 친정에 돌아왔다. 1년 뒤에는 윙포워드 페드로까지 주전으로 발돋움해 바르셀로나는 유스 출신 왕국으로 거듭났다. 팀 에이스가 메시로 완전히 바뀐 것도 그즈음이다. 최고의 축구선수인 메시를 스카우트해 성장시켰다는 것만으로도 라 마시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라 마시아 역사에서 빛난 과르디올라 시대
다만 라 마시아 출신 성골들이 팀에 자리 잡으면서 호나우지뉴, 티에리 앙리, 사뮈엘 에토, 데쿠, 잔루카 참브로타 같은 외국인 선수들의 자리는 서서히 좁아졌다. 물론 필요한 경우 외부 출신 선수도 영입하긴 했지만, 핵심 포지션은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들로 채워진 것이다.
한동안 티아고 알칸타라의 등장, EPL 아스널로 떠난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발렌시아 유니폼을 입었던 조르디 알바의 복귀 등 바르셀로나에서 라 마시아 출신 명맥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라 마시아에 어둠이 짙게 깔린 시기였다. 방만한 경영으로 바르셀로나를 경제적 어려움에 빠뜨린 주제프 바르토메우 전 회장이 유소년 시스템을 쑥대밭으로 만든 게 화근이었다.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기보다 선수 이적에 혈안이 돼 팀을 무계획적으로 운영한 것이다. 한동안 라 마시아 출신 1군 승격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바르셀로나 유스는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진 않았다. 최근 왼쪽 수비수 알레한드로 발데를 비롯해 미드필더 가비와 페르민 로페스, 중앙 수비수 파우 쿠바르시까지 탄탄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다시 위대한 라 마시아 왕국을 만들 태세다.
대표 팀 주전으로 성장한 야말과 가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활약한 발데, 이번 유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신예 로페스, 거기에 야말과 동갑내기로 이미 바르셀로나 1군 주전으로 부상한 쿠바르시까지. 라 마시아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정성스레 자라난 선수들 앞에 실패는 없어 보인다. 최고 재능을 갖춘 축구 꿈나무가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동료들과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는 곳, 바로 '라 마시아'다.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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