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마크롱 주최 올림픽 갈라디너에 가봤더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내외,스페인의 필리페4세 국왕, 네덜란드 윌리엄 알렉산더 국왕 등 정상급인사
삼성 이재용 회장, 홍라희 리움 관장 등 참석
세계 최고의 세프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알랑 뒤카프가 총지휘
‘집게발로 만든 섬세한 소스에 담은 청색 랍스터와 느와르무티에 감자로 만든 쿡팟’ 등 메뉴
프랑스 와인은 Condrieu(Domain Vallet 2022)
음식과 와인 이면의 치열한 전투 …보이지 않는 총성 가득한 스포츠외교의 장
프랑스는 먹는 것에 진심인 미식의 나라이다.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는 유명한 말은 200년 전 원조 베스트셀러가 된 ‘미식 예찬’에 나오는 말이다. 파리에서 동거하는 남녀가 매주 날을 정해 상대를 위해 요리하는데 푸아그라를 식탁에 올리는 남자와 수프를 만드는 여자가 음식에서 오는 갈등으로 헤어진다는 수필을 읽은 적이 있는데 먹는 것이 계급의 표현이 되는 곳이 프랑스다.
미식(gastronomy)이라는 인류 최대의 행복을 발명했다는 자부심의 나라가 주최하는 정상급 만찬은 어느 정도일까? 파리 올림픽 개막 전야에 거행된 토마스 바흐 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주최한 올림픽 갈라 만찬이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아래서 펼쳐졌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내외를 비롯하여 스페인의 필리페4세 국왕, 네덜란드 윌리엄 알렉산더 국왕, 덴마크 프레더릭 국왕, 모나코 앨버트 왕자 등 유럽 왕실 인사, 개막식에 참석하는 핀란드 이스라엘 파라과이 시에라에온 대통령 등 정상급 인사, 100여명의 IOC 위원들과 파리 2024 조직위 고위인사 등이 초청되었다. 우리나라 IOC 위원인 이기홍 대한체육회장, 김재열 국제빙상연맹 회장, 유승민 선수위원과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삼성 이재용 회장, IOC 위원으로 20여 년간 한국 스포츠외교를 이끌어온 고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이 포함되어 스포츠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다시 미식 이야기로 돌아가서 세계 최고의 세프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알랑 뒤카프가 총지휘한 메뉴는 ‘정원에서 딴 신선한 토마토와 허브로 만든 셔벗’, ‘집게발로 만든 섬세한 소스에 담은 청색 랍스터와 느와르무티에 감자로 만든 쿡팟, 알랑 뒤카스의 바삭바삭한 메일을 넣은 초콜릿과 라스베리 히비스커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과자와 차/커피’. 프랑스 요리는 이름이 따로 없고 재료와 조리법을 장황하게 서술하는 식이라 보는 이의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다. 우리 음식은 비빔밥 불고기 냉면 등 설명이 필요 없는 요리 이름이 있는데 요즈음 서울 소위 파인다이닝이라는 한식당도 프랑스식으로 메뉴 설명이 복잡해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프랑스 음식에 와인이 빠질 수는 없다. 와인이 없는 식사는 햇살이 없는 날과 같다는 말도 있고 와인은 물보다 흥미롭고 더 큰 행복을 준다고 프랑스 사람들은 말한다. 세계 문명의 전시장이자 선도권을 쥐게 되는 엑스포의 최초 개최(1851)를 당시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에 빼앗기고 늦을세라 바로 바통을 받은 프랑스는 파리엑스포(1855)에 산업발명품 대신 프랑스의 자존심을 걸고 보르도와인을 출품하였다. 보르도와인의 공식등급제도도 그때 만들어져 와인계의 넘사벽으로 남게 된다. 올림픽 갈라 만찬에 제공된 Condrieu(Domain Vallet 2022), Saint-Emilion Grand Cru(Le Petit Cheval 2018), Rivesaltes(Legend vintage, Gerard Bertrand 1979)는 신의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안에서 한 편의 시를 음미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음식은 음식이다. 환상적인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연회의 겉모습 뒤에는 치열한 전투가 있다.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세를 확장해나가야 하고 자신의 비전과 전략을 세일즈 해야 한다. 마카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세계문화를 주도해나갈 나라라는 이미지를 각국 정상과 국제여론에 심어야 한다. IOC 위원들은 자국과 소속 연맹의 이익을 위한 각종 아젠다를 올리고 지지를 얻어야 한다. 후원기업들은 브랜드 파워를 더 키워야 한다. 이런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 음식과 와인으로 포장된 갈라디너는 보이지 않는 총성이 가득한 스포츠외교의 장이다. 이스라엘 대통령이 오고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각국의 IOC 위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만찬 내내 대화에 열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참석자들도 한반도 긴장 완화, 올림픽 유치, 박인비 선수 IOC 위원선출 등 중요한 아젠다를 갈라디너라는 무대 뒤편에 잘 올려놓았기를 기대한다.
박은하 전 주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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