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매 ‘발 노릇’에…시골엄마의 숨가쁜 하루
5남매 발 노릇하면서 소멸되는 지역 이동권 온몸으로 감당
[주간경향] 초저출생 시대, 다자녀 가구는 어디서나 귀한 존재다. 하루가 다르게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 사는 정은라씨(43)는 귀한 사람이다. 셋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 다섯 가족이 홍성군으로 귀농했다. 홍성에 뿌리를 내린 뒤로는 두 아이가 더 태어나 일곱 가족이 됐다. 2021년 막내가 태어났을 때는 가족의 소식이 지역언론에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당시 기사에는 “대단하네요. 다섯째는 홍성에서 집 한 채씩 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댓글도 달렸는데, 가족의 소식은 그만큼 지역주민들이 함께 기뻐할 만한 이야기였다.
지금 정은라씨는 지역의 현실을 살고 있다. 아이들의 성장 단계별로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의 교육·돌봄 기관은 집에서 그리 가깝지 않다.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눌 또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보다 서서히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정씨는 “큰 애가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학원도 다니기 시작할 거고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돼요”라고 했다. 정은라씨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읍내까지 하루 70㎞, 엄마의 여정
정씨의 하루는 첫째 문소영양(14)의 새벽 기상과 함께 시작된다. 중학교 2학년인 소영양은 장곡면에는 중학교가 없어 인근 홍동면의 중학교에 다닌다. 버스 첫차를 타는 수밖에 없는데, 첫차는 마을 앞 큰길을 오전 6시 50분쯤 지나간다. 정씨는 “걸어서 한 10~15분은 나가야 하는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다 보니까 아침에는 정류장까지 같이 가요. 새벽에 나가는 것 보면 짠하고 대견하고 미안해요”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직 자는 아이들을 깨워 등교 준비를 한다. 둘째와 셋째는 장곡초등학교 학생이고, 넷째는 장곡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장곡초등학교가 운행하는 통학버스가 오전 8시 20분쯤 마을 앞 큰길까지 오기 때문에 세 아이를 동시에 등교시킨다. 그 길로 차를 몰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를 등원시킨다. 밥을 먹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막내는 언니, 오빠들의 일정에 맞추다보니 밥을 제대로 못 먹는 날도 많다. 정씨는 “여기까지만 해도 지쳐요. 사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지쳐요”라며 웃었다.
정말 버거운 건 운전기사 노릇을 하는 하교, 하원 시간이다. 아이들의 일정이 꼬이는 날에는 집에서 12㎞가량 떨어진 홍성 읍내를 3~4번은 오가야 한다. 동선은 이렇다. 집에서 홍동면 중학교로 가서(7㎞) 첫째를 태우고 홍성읍의 학원까지 데려다준다(5.5㎞). 둘째는 주기적으로 홍성읍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와 둘째를 태우고(12㎞) 인근 어린이집에 들러 막내를 차에 태운 뒤(3㎞) 홍성읍의 병원에 바래다준다(13㎞). 그리고 학원을 마친 첫째를 태우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가(12㎞), 둘째의 치료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홍성읍에 다시 다녀온다(왕복 24㎞). 일정이 꼬이는 날에는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만 70~80㎞를 이동해야 하는 셈이다. 농사일로 아침부터 바쁜 남편이 시간을 빼는 때도 있지만 온종일 이어지는 농사일에는 자투리 시간이 별로 없다. 지역의 미비한 교통 여건을 그가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홍성에 자리잡고부터였다. 면허는 있었지만 차를 몰 엄두는 내지 못했고, 홍성에 정착하고도 한동안은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운전대를 잡을 결심을 한 건 병원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홍성읍에 있는 병원을 가야 했는데, 그러자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첫째·둘째의 손을 잡고, 셋째를 안은 채로 버스를 타야 했다. 그는 “서울에 있을 때는 마을버스 다 있고 운전할 필요가 없었죠. 그런데 여기서는 운전을 안 하고는 살 수가 없었어요. 버스를 타려 해도 배차 간격은 길고, 노선은 돌아가고, 집 앞으로 오지도 않고 병원 한 번 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무서워서 운전 정말 하기 싫었는데 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지역소멸 대책? 버스 배차 간격부터”
정씨는 “막연히 시골에 살면 여유롭고 쫓기지 않을 줄 알았죠. 그런데 오히려 바쁜 것 같아요. 일단 동선을 짜는 게 엄마의 과제예요. 짜놓은 동선대로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으면 마음이 급해지거든요. 그러면 또 애들한테 ‘지금 나가야 해’ 닦달하고, 애들도 힘들어하죠”라고 했다.
이동권이 제한되는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자녀의 수만큼 부모의 부담은 커진다. 부모만 부담을 지는 것도 아니다. 자녀들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스스로 제한하거나 부모의 눈치를 살핀다. 정씨는 “첫째는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공연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게 제 눈에도 보여요. 뭘 선뜻 못하고 ‘엄마, 그 시간 돼? 데려다줄 수 있어?’를 먼저 저한테 확인해요. 안쓰러워요. 그런데도 전체 동선과 맞지 않을 때는 ‘미안해, 이때는 안 될 것 같아’ 거절을 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게 미안해요”라고 했다.
요즈음 그는 아이들의 사회성이나 또래 관계를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활달했던 셋째가 요즈음은 낯가림이 심하다. 작은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이 한정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셋째를 향한 걱정은 넷째와 막내에 대한 걱정으로도 번진다. 넷째가 다니는 유치원은 원생이 5명이고, 막내의 어린이집은 원아가 2명뿐이다. 그에게 지역소멸은 피부로 느껴지는 위기다.
그는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지역에서의 일상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첫째가 고교에 진학하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게 좋을까, 다른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중학교와 학원에 다닐 수 있을까, 농사를 지어야 하는 남편을 두고 홍성읍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의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에게 아이 울음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지역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지를 물었다. 정씨는 “출생 직후의 지원은 많은데 아이가 커가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실 그 이후부터가 애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까 고민하는 시기거든요. 지역의 인구소멸을 막는 것도 결국 젊은 분들이 마을로 와서 아이를 낳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든,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든 인프라가 있어야 정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으로선 버스 배차 간격만이라도 짧아지면 좋겠네요”라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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