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카카오, 배경엔 ‘인사 실패’ 있었다
뒤늦게 쇄신 약속했지만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혀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지금의 위기는 브라이언 스스로 만들었다." 카카오 사정에 정통한 사내·외 인사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브라이언은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의 영어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을 본뜬 캐릭터를 만들 정도로 김 위원장은 카카오의 아이콘 그 자체로 통했다. 한때 국내 주식 부호 1위에 오른 재계 거물이지만, 현재는 시세조종이라는 대형 의혹에 휩싸여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모든 것은 인사 실패에서 야기됐다" "김 위원장이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는 게 카카오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카카오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의 경영 방식에 '인맥 의존'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빠르게 몸집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해 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취지다.
김 위원장은 뒤늦게 '초심'을 외치며 그룹 쇄신을 약속했다. 외부 감시기구를 설치하고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교체했다.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던 계열사를 가지치기하는 등의 혁신을 추진했다. 그러나 혁신을 약속한 당사자가 7월23일 새벽 법정 구속되면서, 카카오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지게 됐다.
카카오여서 흥했다가, 카카오여서 몰락했다
업계 분위기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이 법정 구속을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대기업 총수로서 도주 가능성이 낮은데도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김 위원장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와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위원장 측은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인수 관련 보고를 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인수 방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적극 부인했으나, 구속을 피할 순 없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총수로서 그룹 차원에서 벌인 시세조종을 몰랐을 리 없고 직접 지시·승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 내부에선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느냐'는 자조가 나온다. 카카오그룹 시가총액은 2021년 한때 120조원에 육박해 재계 서열 5위에 달했다. 주가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현재 시총은 30조원대까지 쪼그라든 상태다. 김 위원장이 구속된 당일에만 카카오그룹 주요 상장사의 시총은 1조7120억원 증발했다.
카카오의 위기 원인으로는 모순적이게도 '카카오스러움'이 꼽힌다. 김 위원장은 재계에서 은둔형 CEO(최고경영자)로 통했다. 그룹이 커질수록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자신은 뒤에서 큰 전략을 그렸다. 이 같은 자율경영 시스템은 카카오의 독특한 문화와 폭발적 성장을 이끈 계기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중차대한 순간에 발목을 잡았다.
김 위원장은 2021년 친인척 14명에게 1452억원의 주식을 증여할 정도로 '제 사람 챙기기'에 진심이다. 과거 단칸방에 살며 어렵게 생활했을 때 자신을 도운 이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한 행보로 해석됐다. 이 같은 태도가 '인맥 경영'으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실제 카카오그룹 요직에 김 위원장과 인연이 있는 서울대 산업공학과·삼성SDS·한게임·네이버 출신을 기용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 두고 '김범수 카르텔' '브러더 경영'이란 비판이 따라붙었다. 꼬리표는 제각각이어도 취지는 같다. 김 위원장의 인맥 중심 인사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황금기인 2021년쯤부터 파열음 나기 시작
김 위원장이 권한을 내려놓을수록 그룹 내 사건·사고는 많아졌다. 카카오가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시점은 카카오의 '황금기'로 불리는 2021년 즈음이다. '먹튀 논란'이 대표적이다. 카카오 차기 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를 비롯한 임원 8명은 2021년 카카오페이 상장 후 약 한 달 만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시간 외 블록딜로 무려 900억원에 가까운 차익을 거뒀다. 이 중 류 전 대표가 얻은 수익만 469억원에 달한다.
논란이 확산하자 류 전 대표는 사의를 밝히고 2022년 3월에 임기를 마쳤다. 이때도 퇴직금을 포함해 11억원가량의 보수를 챙겼다. 이후에는 2023년 3월까지 카카오페이 비상근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보수를 받았다. 카카오 측은 "동종업계 이직 방지와 영업기밀 보호를 위한 공동체 대표 퇴임 프로그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눈을 감아준 것"이란 반응도 나왔다.
2022년 카카오 대표로 선임된 남궁훈 전 대표는 논란을 의식한 듯 "스톡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약속했다. 남궁 전 대표의 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했던 이른바 '카카오 먹통' 사태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남궁 전 대표도 퇴임 후 스톡옵션을 행사해 94억원 규모의 차익을 챙겼다.
남궁 전 대표 퇴임 이후 혼자 카카오를 이어 맡은 홍은택 전 대표는 취임 전부터 구설에 올랐던 인물이다. 2016년 7월 직원의 멱살을 잡고 폭언해 카카오 윤리위원회로부터 연봉 25% 삭감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감봉은 월 급여의 10% 이내로 제한되는 것을 고려하면 엄중한 수위였다. 윤리위는 홍 전 대표가 중책을 맡은 점을 고려해 본보기로 무거운 처벌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남궁훈·홍은택 전 대표는 모두 김 위원장의 '복심'으로 통했던 인물이다.
카카오를 위기로 몰아넣은 SM엔터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인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도 마찬가지다. 배 전 대표는 CJ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성훈 전 카카오 최고전략책임자(CSO)의 추천으로 카카오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카카오 창사 이래 역대 최대 규모 투자를 유치해, 김 위원장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범수 카르텔' 때문에 빛 못 보는 '혁신'
카오는 뒤늦게 계열사 대표들을 물갈이하고 혁신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 자신도 경영 전면에 등장해 쇄신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월7일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완전히 책임을 지고 변화를 이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직접 총대를 메고 책임경영에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17년간 길러온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을 미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도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과거 사회적 질타를 받았던 인물들이 다시 중책을 맡으면서다. 대표적으로 카카오뱅크 기업공개(IPO) 직후 스톡옵션으로 80억원의 차익을 챙겨 비판을 받은 정규돈 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카카오 CTO로 다시 선임됐다. '코인 먹튀 논란'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카카오 계열사 그라운드X와 크러스트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던 정명진씨도 카카오 CA협의체 전략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돌아왔다.
카카오의 독립된 감시 기관인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는 이 같은 인사 논란에 △일부 경영진의 평판 리스크를 해결할 방안 △유사 평판 리스크를 예방하고 관리할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이 인사를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사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준신위는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는 의중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카카오를 향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당장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에서 내다보는 카카오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335억원 수준이다. 한 달 전 전망치보다 10.1% 하향 조정됐다. 카카오는 지난 1분기 120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1분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주가도 고꾸라졌다. 김 위원장 구속 당일인 7월23일 코스피에서 카카오 주가는 5.6% 떨어진 3만8850원에 장을 마감했다. 24일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한때 '국민주'로 평가받으며 최고가 17만3000원을 기록했던 때와 비교하면 80%가량 폭락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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