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영웅 리튬의 감추고 싶은 탄생기 [주기율표 위 건강과 사회]

김명희 2024. 7. 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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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은 친환경 시대를 이끌어갈 주인공으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리튬의 생산 과정은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전자 폐기물 재활용 역시 노동자를 건강 위험에 노출시킨다.
6월25일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현장에서 화재 원인을 찾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이번 편에는 리튬을 다뤄야지,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야금야금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동해안 유전 발견 소식이 발단이었다. “지금? 갑자기?”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의심과 더불어, 진짜 석유가 있다 해도 2035년이 넘어서야 채굴이 가능하다는데 그때가 되면 애물단지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탄소중립 목표는 어떻게 달성할 것이며, 유럽연합과 미국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한다고 하니 석유를 어디에 쓸 것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석연료에 맞서는 대안 에너지의 선봉장 리튬을 ‘픽’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화성의 리튬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난 것이다. 6월24일 처음 단신으로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라는 속보가 떴을 때 큰일 났구나 싶었다. 리튬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재를 완전히 진압하기까지 22시간이나 걸렸고 무려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사IN〉의 ‘주기율표‘ 연재에서 다룰 다음 원소로 리튬을 골라놓은 상황에서 참사 소식을 접하니, 어쩐지 내가 불길한 예언이라도 한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게다가 희생된 노동자 중에는 불법파견된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여느 산재사고에서 본 것처럼, ‘기-승-전-위험의 외주화’라는 판에 박힌 시나리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미래산업의 초라한 이면이다. 시민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리튬의 속성과 리튬을 취급하는 작업의 위험성은 물론 일차전지와 이차전지의 차이까지 ’억지로’ 알게 되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평형수’의 존재와 의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참사는 자꾸 우리에게 원치 않는 학습을 시킨다.

‘관광지’ 우유니 사막도 리튬 매장지

요즘은 리튬 하면 바로 전지(電池)를 떠올릴 만큼 실생활에서도 익숙한 물질이지만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이전까지 리튬은 그리 유명한 물질은 아니었다. 돌 암석이라는 뜻의 ‘lithos’에서 이름을 따온 리튬(lithium)은 주기율표에서 수소와 헬륨 다음으로 원소기호 3번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가벼운 고체 원소이자 금속이다. 이들 세 원소는 빅뱅 후에 처음으로 생성되었지만, 수소와 헬륨이 전 우주에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리튬은 매우 극소량만 존재한다. 지구에서도 지각의 0.002%만 차지할 정도로 드문 원소 중 하나다.

4월18일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SQM 광산에서 굴삭기가 리튬이 함유된 소금을 덤프트럭에 퍼담고 있다. ⓒAP Photo

무른 은백색의 리튬은 1817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고온을 견뎌야 하는 비행기 엔진 윤활제로 쓰였고, 내열유리와 세라믹을 제조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리튬은 정신질환 치료에도 쓰인다. 1949년 조증(mania) 치료에 쓰이기 시작한 이래, 1970년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약품으로 등재되어 오늘날에도 조울증 등 정동장애를 치료하는 데 이용된다. 노르에피네프린 방출을 감소시키고 세로토닌 합성을 증가시켜 기분 안정화에 기여한다고 하지만, 상세한 생물학적 기전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냉전시대에 리튬은 핵융합 무기 생산에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과 핵무기 군비 경쟁이 시들해지면서 덩달아 수요와 생산이 감소했다. 그러다 21세기에 들어 리튬이온 전지가 개발되면서 리튬은 비로소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리튬은 용매하에서 쉽게 전자를 용출하여 Li+가 되며, 열과 전기 전도성이 높다. 게다가 가볍기까지 하니 이동용 전자기기에 쓰이는 배터리를 제조하는 데 최적의 재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전 기차의 핵심 부품으로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친환경 시대를 이끌어갈 주 인공으로 각광받는다. 당연히 몸값도 높아졌다. 2015~2018년에만 가격이 3배 인상되었고, 리튬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도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리튬 매장지를 찾아 나서는 모습을 미국의 황금광 시대(gold rush)에 빗대어 ‘화이트 골드 러시(white gold rush)’로 부르기도 한다.

리튬은 상업적 활용도가 높은 다른 금속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골고루 매장되어 있지 않다. 2022년 미국 지질조사국 발표 자료에 따르면, 활용 가능한 리튬 매장량은 칠레 930만t, 오스트레일리아 620만t, 아르헨티나 360만t, 중국 300만t 정도가 된다. 다만 연간 생산량은 7만5000t 규모로 오스트레일리아가 가장 많고 칠레가 약 3만8000t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전체 자원 규모를 따지자면 볼리비아에 2300만t, 아르헨티나에 2200만t, 칠레에 1100만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라틴아메리카에 위치한 이 세 나라는 ‘리튬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소금사막을 보유하고 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칠레의 아타카마, 아르헨티나의 아리사로 사막이 그 주인공인데, 이곳에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75%가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튬은 반응성이 높고 대기 중에서 빠르게 부식하기 때문에 자연계에 단독 원소로 존재하지 않는다. 화성암 형태의 광물로 존재하거나 이온 형태로 염수에 녹아 있다. 소금사막 지하에는 리튬이 함유된 염수가 자리 잡고 있다. 리튬은 화석연료에 맞서는 친환경 산업의 총아로 여겨지지만, 생산 과정 자체는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광석 형태의 리튬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중장비로 암석을 채굴하고 ‘산(acid)’을 이용해 원소를 분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파괴는 물론, 비소나 안티몬 등 광산 폐기물이 발생하고 수질오염이 일어난다. 소금사막에서 리튬을 채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하의 염수를 지표면으로 끌어올려, 마치 염전에서 소금을 만들듯 수분을 증발시켜 농축한 다음 이를 여과하고 화학분해 과정을 거쳐 리튬을 추출한다.

이 과정에 막대한 양의 물이 사용된다. 예컨대 리튬 1t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물 190만t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건조한 사막 지역에 물 부족을 심화시키고 지표수와 식수를 오염시켜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제 때문에 환경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채굴·생산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러한 부정적 영향은 항상 그래왔듯 저소득 국가, 그 안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 북부 리튬 트라이앵글 근처에 거주하는 선주민들은 이곳의 리튬 채굴에 반대하며 정부를 상대로 투쟁 중이다. 이곳은 400개 넘는 선주민 부족이 스페인 원정대가 라틴아메리카 땅을 밟기 전부터 대대로 살아온 지역이다. 하지만 이들의 토지 거래는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고 현재 이들에겐 법적 소유권이 없다. 리튬 채굴이 시작되면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날 처지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물은 더욱 말라가고 오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들의 반대 투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네바다주 고원지대 사막에서 리튬 매장이 확인되었다. 전기차 생산에 사활을 건 미국으로서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리튬을 국내 조달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태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한 곳이자 아메리카 선주민의 역사 유적지이기도 하다. 이곳의 토지가 정부에 귀속되어 있지만, 이조차 역사적으로 강탈한 것이었다. 지역의 선주민들은 리튬 채굴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서는 리튬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위해 그동안 발전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당해온 선주민의 권리와 목소리가 다시금 부정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타까운 점은 선주민 공동체와 환경운동가들 내부에서도 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리튬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또 이곳이 워낙 오지이고 경제가 낙후되어 있다 보니 주민들이 이만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해서 작금의 기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거의 책임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녹색’의 이름으로 피해가 전가되고 서로 갈등하게 만드는 상황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전자 폐기물 재활용에 동원되는 ‘어린’ 손들

대표적으로, 전자 폐기물(e-waste) 재활용 사업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다.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전자 폐기물 5360만t이 생산되고 지난 5년간 21%가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전통적 전자제품 이외에 휴대전화·노트북·태블릿 같은 소형 전자제품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전자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은 매립이나 소각 과정에서 직접적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부품으로 활용되는 금·은·백금·구리·코발트·팔라듐 같은 금속과 희토류 채굴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런 재활용 작업이 주로 중저개발 국가 주민들, 그중에서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싼값에 일할 수 있는 어린이들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기차 충전소 모습. ⓒ연합뉴스

전자제품의 재활용 과정이 적절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변 환경오염과 건강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태우거나 열을 가하고, 금속을 분리하기 위해 산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수은·납·카드뮴 같은 중금속뿐 아니라 다이옥신·퓨란·PCB·방향족 탄화수소·브롬 화합물 같은 온갖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경·발달 장애, 부정적 임신 결과, 폐기능 이상, 심혈관 이상, 갑상샘 이상 등의 다양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전자 폐기물 중에서 17.4%만 공식적 관리나 재활용 체계에 들어온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어린이 1800만명과 여성 1300만명이 전자 폐기물 재활용과 관련한 건강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구촌 먼 나라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5월 전주시의 재활용 처리시설에서 가스가 폭발하여 노동자 5명이 전신 화상을 입고 그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음식물 쓰레기 200~300t을 처리하고, 하수 슬러지 150t을 자원화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메탄가스가 적절히 배출되지 않아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노동조합에서 배기시설에 대해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내놓는 재활용 폐기물을 선별하는 노동자들도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은’ 작업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재활용에 반대하는 시민은 없지만, 그런 작업이 내 눈에 보이고 우리 동네 근처에서 악취를 풍기는 것은 반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재활용 선별 작업장을 지하로 배치하고 있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노동자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마스크 한 장에 의존하여 먼지와 악취에 견디고, 굉음을 내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2022년 8월31일 브라질 북부 론도니아주의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타고 있다. ⓒAFP PHOTO

‘바이오연료’가 지구를 구할 것처럼 떠들썩하던 2000년대 중반, 브라질 상파울루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말로만 듣던 바이오에탄올 차량을 처음으로 타보고 감동했다. 정말 매연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냄새조차 없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미래 기술이구나! 그날 밤, 맥주 한잔과 함께 은은한 구름에 둘러싸인 채 빛나는 보름달을 칭송하던 여행자의 작은 낭만은 현지 친구의 ‘팩트 폭격’에 산산이 부서졌다. 달에 드리운 운치 있는 그림자가 구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려고 몰래 사탕수수밭과 숲을 태워서 발생한 연기와 잿가루였다.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거리 곳곳마다 도시 외곽으로부터 날아온 잿가루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배신감이 들었다. 낮에 본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 자동차들의 환상적 모습은 다 사기였단 말인가. ‘친환경’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기후위기는 정말 어려운 도전 과제다. 지구온난화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 지구에 탄소발자국을 거의 남기지 않았던 중저개발 국가, 그리고 세계 곳곳의 가난한 시민들이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녹색 전환에서 또다시 이들이 그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화학물질의 위험에 노출되며, 사람들이 기피하는 쓰레기 더미와 온종일 싸우고, 때로는 살고 있던 곳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닥치고 녹색’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이 절실하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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