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때문에 올해 야구 기록 오래간다? [경기장의 안과 밖]
2024년은 프로야구 기록의 해다. NC 다이노스 외야수 손아섭(36)은 6월20일 잠실 두산전 6회 초에 2사에서 상대 선발투수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날렸다. 이 안타로 손아섭은 2020년 은퇴한 박용택이 가지고 있던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 기록(2504개)’을 깼다.
이에 앞선 4월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SSG 랜더스 3루수 최정(37)이 통산 468호 홈런을 기록하며 이승엽의 종전 기록을 경신했다. KIA 타이거즈 지명타자 최형우(40)는 이미 지난해 이승엽의 통산 최다 타점(1498)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는 1600점 고지를 돌파했다. 타점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삼성 포수 강민호(38)는 개막 6일 만인 3월28일 잠실 LG전에서 2238경기 출장으로 박용택의 종전 역대 1위 기록(2237)을 넘어섰다. 마운드에선 KIA 왼손 에이스 양현종(36)이 후반기 대기록을 달성한다. 양현종은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통산 삼진 수를 2016개로 늘렸다. 송진우의 역대 최다 기록(2048)과 32개 차이다.
손아섭은 2007년 롯데에 3루수로 입단했다. 입단 당시 이름은 손광민이었다. 2009년 손아섭으로 개명했다. 지금 등번호인 31번을 달고 시작한 2010년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우며 3할 타자가 됐다. 이후 열두 번이나 3할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로 자리 잡았다. 전성기 때에는 강력한 어깨와 준수한 장타력을 자랑했다. 송구 능력과 히팅파워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안타 생산 능력은 여전하다. 손아섭은 지금 현역 가운데 유일하게 통산 3000안타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로 꼽힌다. 3000안타는 일본프로야구(NPB)에서도 장훈(3085개) 단 한 명만 갖고 있는 대기록이다.
최정은 7월10일 현재 21홈런을 더하면 전인미답의 500홈런 고지를 밟는다. 늦어도 내년에는 기록 경신이 가능해 보인다. 이승엽이 한·일 통산 626홈런을 날렸지만 KBO리그에서는 467홈런이 공식 기록이다. NPB에서도 500홈런 기록은 8명만 갖고 있다. 최정은 2005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첫 시즌 45경기에서 1홈런에 그쳤다. 하지만 2006년 12홈런을 시작으로 19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냈다. 몸쪽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타자다. 홈플레이트 쪽에 바짝 붙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통산 ‘몸 맞는 공’이 무려 340개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기록은 휴이 제닝스의 287개, NPB에선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196개다. 이 분야에선 2021년부터 세계 기록을 갖고 있다.
최형우는 올해 올스타전 MVP에 올랐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포수로 입단했지만 2004년까지 1군에서 6경기만 뛰고 방출당했다. 하지만 경찰청 복무를 거쳐 2008년 삼성과 다시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이해 19홈런에 7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51을 기록하며 삼성 주력 타자로 거듭났다. 2017년부터는 KIA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형우는 역대 KBO리그 최다 2루타(510)와 루타(4127) 기록도 갖고 있다. 세 번째로 많은 볼넷(1141)과 다섯 번째로 많은 득점(1275)을 올린 타자이기도 하다.
강민호는 2004년 19세로 롯데에 입단했다. 이듬해 104경기에 출장했다. 지금까지 20세 이전 나이에 100경기 이상 출장한 포수는 세 명뿐이다. 2005년 강민호가 처음이었다. 가장 힘든 포수 포지션을 지키면서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동시에 포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경험과 수비력이 중요한 포수는 롱런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단, 이 위상에 오르려면 누구나 인정하는 포수가 되어야 한다. 박경완(2044경기)과 김동수(2039경기)가 그랬다.
양현종은 2007년 드래프트 1라운더로 KIA에 입단했다. 3년 차이던 2009년 12승을 따내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오랫동안 류현진·김광현과 함께 ‘왼손 트로이카’를 이뤘다. 세 명 모두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메이저리그 경험도 있다. 평균자책점은 류현진(2.86), 김광현(3.26), 양현종(3.82) 순이다. 하지만 양현종은 다승(174)과 탈삼진(2016)에서 두 투수를 앞선다.
2010년대 데뷔 선수들이 부진한 이유
올해 대기록을 세웠거나, 세울 선수 다섯 명은 모두 2000년대에 데뷔했다. 프로야구가 경기 운영 및 트레이닝, 기술 등의 측면에서 도약하던 때다. 이 시기에 한국 야구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늘어난 경기 수는 올해 연이은 대기록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원년 프로야구는 팀당 80경기 체제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126경기로 늘어났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133경기로 늘었다. 2015년 KT 위즈의 합류 이후엔 144경기가 치러진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경기 수 증가로 대기록 탄생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올해 ‘대기록 풍년’이 만개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고교 유망주들이 대학 진학 대신 프로 직행을 택한 점도 올해 대기록이 쏟아지게 된 한 이유로 꼽힌다.
2010년대에 데뷔한 선수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 2010년 이후 야수 WAR(대체선수 대비 승수) 상위 20명 가운데 나성범(KIA)과 구자욱(삼성),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만이 2010년 이후 데뷔한 선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운동 잘하는 선수들이 축구로 몰리면서 야구 유망주 풀이 줄어든 현상과 무관치 않다. 지난해 WBC 국가대표팀에서 야구선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7~32세 연령대 선수가 5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미국 국적 토미 에드먼을 제외하면 네 명이다. 2010년대 데뷔 선수들의 약세로 올해 2000년대 데뷔 선수들이 세운 대기록은 당분간 재경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민규 (한국야구학회 이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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