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살인 더위’, 지구 기온 인류 역사상 ‘최고’ 찍었다
전국이 찜통처럼 푹푹 찌고 있습니다. 상대습도가 90% 안팎을 오르내리며 마치 습식 사우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8월 상순까지는 체감온도 35도 안팎의 무더위와 열대야가 예보됐습니다.
장마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1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가 바로 이맘때입니다. 특히 올여름은 습도가 매우 높아서 체감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는데요. 대략 습도가 10% 증가하면 체감온도는 약 1℃ 상승합니다. 같은 30℃라도 습도 70%일 때는 체감온도가 31℃지만, 90%면 33℃로 더 높아집니다.
덥고 습한 날씨 속에 온열질환자도 폭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온열질환자는 총 856명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758명)보다 100명 가까이 많고, 이번 주 들어 100명 넘게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도 4명 나왔습니다.
유난히 견디기 힘든 무더위는 잦은 장맛비에다 3호 태풍 '개미'가 중국에 상륙하는 동안 열대의 수증기를 한반도 쪽으로 끌어올린 것이 원인입니다. '가강수량'(Total Precipitable Water) 지도를 통해 대기 중 수증기 분포를 살펴보면 중국 내륙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태풍 '개미'가 붉은색의 수증기를 우리나라로 퍼올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강수량'은 단위 면적의 연직 공기 기둥 안에 포함된 수증기가 모두 응결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릴 수 있는 비의 양을 뜻합니다. 젖은 수건을 꽉 짰을 때 흐르는 물을 떠올리면 되는데요. 단위는 mm를 씁니다. 붉은 보라빛으로 보이는 태풍 '개미'는 70mm 이상, 그러니까 집중호우를 퍼부을 수 있는 수증기를 품고 있습니다. 폭주하는 수증기 탓에 우리나라에는 찌는 듯한 폭염과 국지성 돌발 폭우가 도깨비처럼 출몰하고 있습니다.
■ 전 지구 기온, 지난해 뛰어넘어 관측 이후 가장 높았다
올여름 더위, 전 세계적으로도 심상치 않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날이 찾아왔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2일 전 지구의 평균기온이 17.15°C를 기록한 건데요. 유럽연합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지표면 기온 관측 데이터를 인용했습니다. 21일에 17.09°C로 이전 최고 기록인 2023년 7월 6일의 17.08°C를 뛰어 넘었는데, 하루 만에 또 기록이 경신된 겁니다.
2023년 여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올여름은 이미 그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지구가 뜨거워지는 엘니뇨의 입김이 더해졌지만, 지금은 그 반대 현상인 라니냐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구의 열기가 식지 않고 2023년 6월부터 13개월 연속 기록 행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6월 폭염은 예고편?…“올여름 지구 역사상 가장 덥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92665
■ 미지의 영역으로…지난 10년 동안 가장 뜨거웠던 지구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인류가 진정 미지의 영역에 있다며 지구가 계속 뜨거워짐에 따라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기록이 또 깨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지구는 가장 뜨거운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구가 가장 뜨거웠던 7월 22일의 기온 분포를 보면 북미 북서부와 남미 남부, 북유럽,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등지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습니다. 특히 지금 겨울인 남극 부근은 평년보다 10℃ 정도 높은 고온현상으로 해빙 면적이 기록적으로 줄고 있는 상태인데요. 지구의 기온은 북반구의 여름인 6월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7월 말부터 8월 초에 절정에 도달하니 앞으로 충격적인 소식이 더 자주 들려올지 모릅니다.
[연관 기사]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기후…“올여름이 심판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4834
■ 폭염 피해 줄이려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돌봐라"
전 지구 기온이 극값을 경신하자 지난 25일 안토니우 쿠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성명서를 냈습니다.
우리의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점점 더 열기를 심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고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더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안토니우 UN 사무총장은 매년 전 세계에서 더위로 약 5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돼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 저기압보다 30배 정도 많다고 밝혔습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촉발된 폭염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고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더위가 바로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강조했습니다.
UN은 폭염에 의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음과 같은 행동을 촉구했습니다.
첫째,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먼저 돌봐야 합니다. 폭염은 지구 어디에서나 발생하지만 그 영향이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닙니다. 도시의 빈민이나 혼자 사는 노인, 장애인, 기저질환자, 이주노동자 등 폭염 취약 계층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고된 재난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피해가 잇따른다는 소리는 피해 예방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65세 이상 노인의 열사병 사망률은 지난 20년 동안 85% 증가했다고 UN은 밝혔습니다. 전 세계 어린이의 25%가 잦은 폭염에 노출돼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극심한 더위에 노출되는 도시 빈민의 수는 지금보다 7배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폭염은 건강을 해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사람들을 더 큰 빈곤으로 몰아넣습니다. 특히 도시는 전 세계 평균보다 2배나 빠르게 기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둘째,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노동 인구의 70%가 넘는 24억 명이 극심한 더위에 취약한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근로자 4명 중 3명이 극심한 더위에 노출돼 있었는데요.
일 최고기온이 34°C 이상 올라가면 노동 생산성이 50% 감소한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일터에서 느끼는 폭염은 2030년 세계 경제에 2조 4,000억 달러의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 2,800억 달러와 비교하면 8.5배 증가한 겁니다.
미국의 기후학자인 켄 칼데이라 박사는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상당 부분의 경제활동이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서 진행되는 반면 많은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노동집약적인 야외작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빈곤이 극단적인 기온과 결합하면 목숨에 치명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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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실 기자 (weez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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