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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데이트폭력'으로 이어지는 '가스라이팅'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4. 7.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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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인 관계에서 결별을 말했다고 해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는 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요즘은 십대에서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가해하지 말라고 해야 하지만 그래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만큼, 또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는 만큼 위험 신호들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신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너는 어떻게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냐"는 식으로 자존감을 낮추고 "내가 아니라면 너 따위는 아무도 만나주지 않을 거야"라고 '가스라이팅'하는 것이 한 가지 신호다.

많은 가해자들이 자신이 정서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다 상대방 탓인 것처럼 정당화 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학대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든다. 상대방을 모욕하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질투와 집착을 보이고 친구와 만나는 것도 싫어하는 등 사회적 관계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도 대표적인 위험 신호 중 하나다.

주변 사람들 모두, 또 가족과도 거리를 두게 하는 등 피해자를 고립시켜 도움을 구하기 어렵게 만들고 온전히 가해자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행동들이 나타난다. 피해자가 자신의 사회적 반경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일을 하러 가거나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등 심리적, 물리적으로 활동 반경을 축소시키기도 한다. 

돈을 갈취하거나 빚을 지게 만드는 등 피해자를 금전적으로 갈취하는 행동들 또한 나타날 수 있다. 피해자의 재산을 자신의 재산인 양 통제권을 휘두르는 것이나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행동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 외에도 상대가 원치 않는 성적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 술이나 마약을 권하는 것, 위협적인 행동이나 협박,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애완 동물을 해치겠다고 협박하는 행동들 또한 대표적인 위험신호다. 

물론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가해자가 절대적인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피해자가 혼자 가해자의 덫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은 쉽지 않다. 연예인 또는 유명 인플루언서 같은 사람들조차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이를 잘 보여준다. 

가장 좋은 것은 위험 신호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십대들의 경우 보호자 또는 믿을만한 선생님 등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한국 여성의 전화 같이 여성을 향한 폭력을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기관에 연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양육자들의 경우 주기적으로 자녀와 함께 위험 신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오랜 가스라이팅을 통해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사회적으로 고립시켜서 피해자가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폭력이 상당히 진행중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피해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함께 위에서 언급한 위험 신호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들어 나의 경우 원래 덤벙거리기도 하고 체질적으로 몸에 멍이 잘 생겨서 다리에 자주 멍이 들어 있다. 이 때문에 특히 병원에서 집이나 연인과의 사이에서 안전함을 느끼는지에 관한 질문들을 주기적으로 받는다. 특히 임신을 했을 때는 나의 안전에 대한 질문을 거의 매번 받았다. 

적어도 내가 있는 미국의 경우 멍이 있는 여성 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에 대해 의료진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질문이라고 했다. 이 덕분에 폭력으로부터 구제받는 여성들이 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안전함을 느끼는지 안타깝지만 여성을 향한 폭력이 결코 적지 않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주변 여성들에게 자주 물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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