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에서 활약할 수직이착륙기, 상용화 조건은
2024년 7월 27일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마장마술 단체전 경기가 열린다. 간밤 파리 세느강에서 열린 올림픽 개막식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완료했다.
오전 8시경 파리 남서쪽에 있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이착륙장, 이시레물리노 버티포트에 도착했다. 오늘 나를 베르사유로 데려다 줄 UAM은 2인용 기체 '볼로시티'다. 간단한 짐 검사를 마친 뒤 파일럿과 인사를 나누고 기체에 탑승했다.
이곳에서 베르사유 궁전 바로 옆에 있는 생시르-레콜 버티포트는 17km 떨어져 있다. 파리와 근교 도시를 잇는 급행열차로 꼬박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고작 10분 만에 도착했다. 축제 시작이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가 활약할 2024 파리 올림픽의 순간을 즐겁게 상상해 봤다. UAM은 전기동력수직이착륙기(eVTOL·Electric vertical take-off andlanding)가 지상에서 300~600m의 저고도를 비행하는 도심 교통 시스템이다.
2016년에 세계 최대 차량호출 기업인 '우버'가 개념을 정립했다. 2010년 전후 하늘을 나는 자동차 '플라잉카' 등의 실현 가능성이 생겨난 뒤 점점 관심이 높아지던 때였다. 당시 우버는 백서를 통해 '현재의 교통 시스템 안에선 매일 수백만 시간을 도로에서 낭비한다'며 '최근 기술이 발전하며 시끄럽지 않고 또 안전한 eVTOL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우버의 백서가 발표된 후 UAM 시장의 투자는 본격화됐다. 미국의 조비 에비에이션, 아쳐, 베타 테크놀로지스, 독일의 릴리움, 볼로콥터 등이 주목받았다. 에어버스와 보잉 등 기존 항공기 제조사들도 eVTOL 기체 생산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중 볼로콥터는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을 목표로 2020년부터 파리시와 협력해 왔다.
볼로콥터는 5~10대의 기체를 올림픽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UAM이 상용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네 가지 특명을 완수해야 한다.
● 특명 소음 : 도심의 소음 수준을 지켜라
'닥터 헬기' 즉 응급의료 전용 헬리콥터는 '날아 다니는 응급실'이다. 헬기 내에는 심실제세동기, 산소공급장치, 인공호흡기 등 응급 의료 장비가 장착돼 있다. 그런데 닥터 헬기가 도입된 후 너무 시끄럽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실제로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의정부성모병원 경기북부 권역외상센터는 2019년 폐쇄 위기를 겪기도 했다. 민원이 해결되지 않아 헬기장이 폐쇄되면 외상센터 지정도 취소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닥터 헬기 소음에 대한 캠페인이 진행되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외상센터는 지금도 운영 중이다.
이처럼 도심, 사람들의 생활 권역에서 수백 대의 기체가 뜨고 내리고 또 비행하기 위해선 소음을 줄이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닥터 헬기처럼 사람들의 인내와 배려로 운행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운용 중인 헬리콥터는 이착륙시 약 100~110 가중데시벨(dBA·귀로 들을 수 있는 음의 크기를 주파수에 대한 가중치를 적용해 상대적 단위로 나타낸 값), 전진 비행 시에는 80dBA의 소음을 만든다.
헬리콥터가 시끄러운 이유는 로터 때문이다. 로터는 회전 운동을 하는 기계 장치다. 헬리콥터 에는 머리 위로 2~4개의 회전 날개를 묶은 메인로터가 있는데 메인 로터의 회전면을 기울여 공기를 빨아들이면 위로 떠오르는 힘인 양력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인 추력이 발생해 날아오른다.
이때 로터에 부착된 날개 끝부분에서 충격파가 발생해 큰 소음이 생긴다. 게다가 날개가 회전하면 날개 끝에 소용돌이 현상인 와류가 발생하는데 이 와류가 계속해 다른 날개와 부딪치며 충격파를 만들어 낸다. 더군다나 헬리콥터가 만드는 소음은 낮은 음역이라 소리가 멀리까지 전파된다. 이런 이유로 헬리콥터는 UAM의 기체가 될 수 없다.
65dBA. 현재 UAM 기체 제조사들은 UAM의 소음 기준을 일반적인 도심 도로의 소음에 맞추고 있다. 올림픽 기간 파리 상공을 비행할 볼로시티도 이 기준을 충족했다. 제조사는 볼로시티가 지상 75m 높이에서 정지 비행을 할 때 소음 수준이 5dBA라고 발표했다.
헬리콥터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사람이 들었을 때느끼는 소음 민감도는 다르다. 미국연방항공국(FAA)에 따르면 10dBA가 증가할 때마다 사람이 인지하는 소리의 크기는 2배로 증가한다.
2022년 5월 조비 에비에이션(조비)은 자사의 UAM 기체가 고도 500m에서 100노트의 속도로 전진 비행할 때 45.2dBA의 소음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조비는 "기체 날개와 와류의 상호작용을 방지해 소음을 줄일 수 있도록 날개 모양과 기울기, 회전 속도 등을 최적화했다"고 밝혔다.
2023년 조비 기체의 비행 시연을 참관했던 이관중 서울대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공항에서 비행 시연이 있었기에 주변이 매우 조용한 편이었는데도 기체의 소음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시연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상공에서 UAM 기체가 날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UAM은 지금의 택시, 버스, 지하철처럼 수백, 수천 대 운행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UAM 여러 대가 비행할 때 발생하는 소음총합이 '저소음 미션'을 달성하는 것이다.
● 특명 안정성 : 감항당국과 이용객의 신뢰를 얻어라
UAM은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 무료 시범 비행만 제공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에어택시의 비행 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당 2회로 제한하고, 전체 시범 기간 동안 최대 900회 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버티포트도 올해 12월 31일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EASA로부터 받아야 하는 승인은 '형식 증명(TC)'이다. 기체 설계가 해당 항공기 기술 기준에 적합함을 입증하는 일이다. 예정대로였다면 2024년 초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볼로시티 프로토타입 제작이 늦어졌다.
한국형 도심항공모빌리티(K-UAM) 컨소시엄에 운항사로 참여하고 있는 SK텔레콤이 2023년 11월에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UAM 서비스에 대한 우려 사항으로 전체 응답자의 35%가 안전성을 꼽았다. 비싼 이용 요금(24.1%)과 기상에 따른 운행 제한(17.5%)은 후순이었다.
5월 28일 대전에서 만난 최성욱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UAM 연구부 책임연구원도 UAM이 상용화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을 안전성으로 꼽았다. 최 책임연구원은 "현재 모든 UAM 기체는 분산 전기추진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분산 전기추진 시스템이란 프로펠러를 여러 개 장착해 모터 하나가 고장 나더라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핵심 부품을 여러 개 만들어서 장착하는 '다중화'도 필요하다. 항우연이 개발한 오파브(OPPAV)는 비행 자세를 측정하는 센서를 삼중화했다. 이중화가 아닌 삼중화인 것은 크로스체크를 위해서다. 이중화만으로는 한 센서가 가리키는 값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신뢰성이 확보돼야 UAM 기체는 사람을 태워도 괜찮다는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인 항공기는 10의 9승, 약 10억 시간의 비행동안 1번의 사고가 발생할까 말까 한 수준의 신뢰도를 보인다. 최 책임연구원은 "UAM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UAM 기체의 각 부품들과 전체 시스템 역시 '10의 9승' 수준의 높은 신뢰도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UAM은 대형 여객기나 헬리콥터와 달리 안전 인증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안전 인증은 형식 증명(TC), 제작 증명(PC), 감항 증명(AC)으로 나뉜다. 각각 기체가 안전 규정에 맞게 잘 설계됐는지, 생산한 기체가 설계와 잘 부합하는지, 기체가 공중 운항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한다.
그런데 UAM은 기존의 항공기와 다른 유형의 새로운 기체인 만큼 UAM에 특화된 안전 인증 요소가 필요하다. 현재 FAA와 EASA가 UAM 인증 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최 책임연구원은 "그럴 수밖에 없다"며 "만약 UAM이 도심 위에서 운행하다가 기체가하나라도 추락하면 UAM 산업 자체가 흔들릴것이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용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에도 안전성은 핵심 요소다. 일례로 하늘을 이용하는 기체가 증가하면 하늘에서도 '교통 정리'가 필요해진다.
지난 6월 4일 SK텔레콤 본사에서 만난 신상훈 UAM Tech팀 리더는 "드론과 기존 항공기 그리고 UAM이 서로 다른 고도에서 비행하더라도 모든 비행체의 정보가 유기적으로 전달돼야 하고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UAM이 '하늘 도로'라고 부를 수 있는항로의 회랑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신 리더는 "현재 회랑 폭을 300m로 보고 있는데 기체가 회랑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실시간으로 감시 및 판별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UAM은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사각지대 없이 데이터 교환이 가능하도록 6G 통신망도 구축해야 한다.
신 리더는 "UAM이 자율주행을 하기 위해선 기체 상태와 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기체와 운용 시스템, 그리고 기체와 기체가 수백 bps(1초 동안 전송할 수 있는 비트의 수) 이상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설명했다.
● 특명 경제성 : 운임과 시간을 줄여 수요를 높여라
오귀스틴 드 로마네 ADP 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인(CEO)은 2023년 "볼로시티 티켓 가격은 110 유로(약 16만 2700원) 정도일 것"이라고 말한 바있다. 전 세계 26개 국제공항을 운영하는 ADP 그룹은 2024 파리 올림픽 UAM 비행을 제조사와 함께 준비해 왔다. 볼로시티가 약 20km의 거리의 노선을 비행하는 데에는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4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전 세계인의 축제에 기꺼이 참여한 관광객이라면 10분 여의 비행에 16만 2700원은 지갑을 열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다. 하지만 UAM 산업은 일회성 경험이 아닌 도시 내 거주자들의 일상에 파고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선 수요 예측이 중요하다. 이교수팀은 K-UAM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과 함께 UAM 교통 수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UAM 수요를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이동시간과 운임입니다." 교통 수요 파악은 우선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모든 지역에 UAM이 이착륙할 수 있는 버티포트가 있다는 가정을 두고 출발한다. 택시나 버스 그리고 지하철과 같은 기존 교통수단을 이용했을 때의 이동시간과 운임이 비교군이다.
대중교통 체계가 잘 발달한 한국의 경우엔 특히나 여러 개의 교통수단 중에 UAM을 선택할 만한 이유가 확실해야 한다. 지금까지 파악된 UAM의 가장 큰 경쟁력은 시간 단축이다.다만 시간 단축이 버티포트와 버티포트를 잇는 UAM의 비행에만 해당해서는 안 된다. 이용객들은 UAM을 타러 이동하고 내려서 목적지까지 가는 전체 시간을 고려한다.
한강 수상택시는 UAM의 반면교사다. 2007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한강 수상택시는 서울 도심의 교통정체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수상택시는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한강을 빠르게 건너도 결국은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서 최종 목적지로 가야 했다. 서울시는 한강 수상택시와 연계하기 위한 맞춤형 버스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이용객이 적어 노선이 없어졌다.
이 교수는 "UAM 기체는 기본적으로 탑승에 소요되는 시간이 있다. 탑승 준비시간도 UAM 수요에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22년 6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한국형 도심항공교통 기술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UAM의 운임은 상용화 초기엔 1km당 3000원, 성장기에는 2000원, 성숙기에는 1300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에는 생략돼 있지만 UAM도 택시처럼 기본요금이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기본요금을 1만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상용화 초기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UAM 총 요금은 5만 5000원 정도다. UAM 비행시간은 10분 안팎이다.
"상용화 초기에는 요금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고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UAM 산업이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에 도달한다면 운임은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 특명 버티포트 : 도심 교통의 거점을 건설하라
버티포트는 UAM의 이착륙장이다. 수직이착륙을 특징으로 하는 UAM은 활주로가 필요 없다. 또 배터리를 이용하기에 기존 헬리콥터 이착륙장과 다르게 전기 충전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헬리콥터 이착륙장은 헬리콥터 소음 때문에 도심에 두기 어려웠지만 UAM은 소음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이착륙장을 도심 내에 설치하고 다른 교통수단과 연계할 수 있다.
처음부터 버티포트가 집과 회사 근처에 설치되는 것은 아니다. 5월 31일, GS건설 본사에서 만난 이재형 UAM Vanguard 팀장은 "UAM 시장이 성숙해짐에 따라 버티포트 위치도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초기엔 인구가 밀집하지 않은 지역이나 지자체가 소유하고있는 공원 등의 공공부지에 먼저 들어설 것이다.
이 팀장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을 태우기보다 사람들에게 UAM이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줘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적은 건설비와 낮은 임대료로 버티포트를 짓고 또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파리와 근교에 세워질 5개의 버티포트도 위험을 최소화하고 기존의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로 선정됐다. 특히 파리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오스테를리츠 버티포트는 도심 내 상업용 건물의 옥상이 아닌 세느강 위에 지어졌다. 강 위에 740m² 면적의 바지선을 정박시키고 그 위에시설을 지은 것이다.
오스테를리츠 버티포트와 이실레물리노 버티포트를 연결하는 노선도 도심을 가로지르는 '최단 루트'가 아니다. 볼로시티는 파리 바깥쪽을 따라 건설된 외곽순환도로 위를 지나가게 된다. 이 항로는 현재 파리의 '닥터헬기'가 오가는 노선이다. 파리 경찰청으로부터별도로 허가를 받으면 비행 금지 구역인 파리 도심 상공에서도 이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UAM 산업이 성장기에 들어서면 도심 교통환승센터 등의 거점 지역에 대규모 버티포트가 만들어질 것이다. 버티포트와 다른 교통 체계와의 연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UAM 산업이 마지막 성숙기에 도달하면 크고 작은 형태의 버티포트가 수요에 따라 여기저기에 설치될 것이다. 10년 뒤 2034년에 파리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땐 UAM을 타고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 위를 지날지도 모른다.
"UAM이 상용화되면 교통 시스템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됩니다." 이 팀장은 UAM이 교통을 넘어 도시 생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려만 보던 하늘 공간이 사람들의 생활 영역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영역의 확대는 지금 지상 교통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생활 공간 혹은 녹지로 되찾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UAM이 나는 하늘 아래, 도심은 어떤 모습일까. 함께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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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기자 tae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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