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파리와 에펠탑 그리고 올림픽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파리 올림픽이 개막했다. 1900년 제2회, 1924년 제8회 대회에 이어 꼭 100년 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하계 올림픽이다. 제33회다.
파리는 참으로 상징물이 많은 도시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에펠탑이다. 탑을 지은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1832~1923) 이름을 딴 에펠탑은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1889년 완공했는데, 당시 엄청난 반대에 부딪힌 아픈 역사가 있다. 거대한 철골 탑이 파리 경관을 망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에펠탑이 완공된 후로 자기 작품에 에펠탑을 뚜렷하게 부각한 화가들을 보자. 이들에겐 탑의 형상이 그림 소재로도 훌륭했겠지만, 자랑스럽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장 앞선 화가는 점묘법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다. 탑이 완공된 해(1889) 그린 작품을 보면, 파란 하늘 배경으로 붉은 탑을 매우 크게 그렸다. 점으로 찍어 그린 덕에 오히려 맵시 있다. 조금 떨어져 보면 탑의 웅장함도 도드라진다.
전문 화가가 아닌 취미활동으로 그림 그리는 경향을 '나이브 아트(Naive Art)'라고 하는데, 가장 유명한 화가는 앙리 루소(1844~1910)다. 1890년 그린 자화상 뒤로 에펠탑을 그렸다. 탑이 완공된 다음 해다.
센 강에 정박한 배에는 박람회를 축하하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으며, 그 앞으로 팔레트를 든 자기 전신을 유별나게 크게 그렸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파리도 자랑하고픈 의지를 대변한 것이다.
에펠탑을 연작으로 여러 점 그린 화가는 '오르피즘' 창시자인 로베르 들로네(1885~1941)다. 오르피즘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회화와 음악을 연결 지은 작품 경향을 뜻한다.
그가 1911년 그린 '붉은 탑'을 보면, 그림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에펠탑이 건물과 하늘을 껴안고 춤추듯 서 있다. 당시 파리에서 태동한 입체주의 화풍이다.
프랑스인은 아니지만, 파리에서 유학하는 동안 에펠탑에 쏙 빠진 이가 있다. 러시아 변방 비프테스크 출신 마르크 샤갈(1887~1985)이다.
'에펠탑의 신랑 신부'(1938)에서 사랑하는 여인 벨라와 막 결혼한 모습을 동화처럼 펼쳤다. 염소가 연주하고, 부케를 받은 친구는 천사가 됐으며, 두 사람은 다산을 상징하는 수탉을 타고 낙원으로 향한다.
만 51세로서 벨라와 결혼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젊은 시절 고독하게 보낸 파리에 대한 그리움을 짙푸른 에펠탑으로 상징했다. 파리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었다.
시공을 초월한 2015년, 한 한국 작가가 에펠탑과 개선문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해 동서 화합 정신을 꾀했다. 황란 작가 '빛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Bright)'이다.
한글 자·모음을 인용해 전통 한지로 만든 단추를 꽂되 핀의 높낮이를 적용해 입체성을 부여한 작품이다.
'예술적 변형'으로 '화합과 융화'라는 주제를 달성했다. 황란은 파리 유네스코 본부 내 존 미러 갤러리에서 한국 현대미술 작가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에펠탑은 파리 상징을 넘어 세계적인 유산이 된 지 오래지만, 탑이 남긴 응달은 적지 않다.
첫 파리 올림픽이 열렸던 1900년 전후엔 식민지 쟁탈에 열을 올리던 제국주의 시대였다. 인종 혐오와 오리엔탈리즘이 당연시되던 시기로서 원주민들을 동물원 동물처럼 전시하던 흑역사도 안고 있다. 에펠탑 바로 인근이었다.
이 대회에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선수로 뛰었지만, 그녀들 활약에 주최 측마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번 올림픽 슬로건은 '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다. 유럽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인종주의와 차별을 극복하고 '개방'과 '나눔'을 실현하는 올림픽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자랑과 고통, 전쟁과 평화, 영광과 굴욕을 온전히 견뎌온 에펠탑이 지켜보는 세 번째 올림픽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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