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한동훈의 적은 한동훈'…채 상병 특검도 입장 바뀌나
대표 되고 난 뒤 "제가 발의하는거 아냐", "하나의 대안" 바뀐 말들
韓, 정치 데뷔 후 계속되는 '말 바꾸기'에 '한적한' 논란 계속
'원외+소수파'로는 한계…우군 확보 위한 '속도 조절' 분석 있지만
전당대회서 받은 압도적 표심 어긋나는 '실망스런' 행보란 지적도
해병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 등의 수사 외압 의혹을 파헤칠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 재의결 끝에 폐기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특검법을 추진하겠다며 '반윤'(反윤석열)의 포지션으로 당선된 뒤였지만, 여당에선 이탈표 4표 외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를 두고 특검법 추진에 대한 한 대표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의결 과정에서 여야 간 협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수정안을 거절한 바 있다"며 야당에 화살을 돌렸지만, 한 대표 또한 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대표는 특검법에 대해 "제가 발의하는 게 아니"라고 답하는가 하면, '친한'(親한동훈)계 핵심인 장동혁 의원 또한 "특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말하는 등 한 발 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은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일각에서는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유행했던 과거 발언과 현재의 태도가 달라지는 점을 비꼰 '조적조'(조국의 적(敵)은 조국)처럼 한 대표가 '한적한'(한동훈의 적은 한동훈)이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 되면 채 상병 특검법 추진" → 당선 후 "제가 발의하는 게 아냐"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보다 강화된 채 상병 특검법을 즉각 발의하겠다"며 "윤석열 정권과 여당의 어떠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의 문이 열릴 때까지 10번이고 100번이고 두드리고 또 두들기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여당을 향해서도 "국민이 원하고 유족이 간절히 원하는 특검법을 대놓고 가로막는 게 어떻게 민심과 함께하는 일이냐"며 "민심 동행을 운운하던 한 대표의 공약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첫 출발부터 용산 해바라기, 대통령 부부 허수아비를 자처하는 것을 보니 한동훈 체제의 싹수도 노랗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는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한 대표의 입장 변화를 겨냥한 것이다.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특검은 수사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점이 드러났을 때 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후 당 대표에 출마할 때는 "국민의힘이 나서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대표가 되자 다시 "(특검법안) 발의는 제가 하는 게 아니다"라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은 뉘앙스가 좀 더 변했다. 한 대표는 특검법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저는 지금 돌아가는 상황들을 감안할 때 그게(제3자 추천안이) 하나의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제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본인의 '변화하지 않은 입장'이 제3자 추천 특검법 '추진'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미묘하게 바뀐 셈이다.
당내 '한동훈계'도 이 같은 기류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한 대표에게 입법권이 없기 때문에 특검 추진을 위해선 원내 '한동훈계'의 조력이 필수적인데, 한 대표와 함께 한 발 빼는 모습이다.
한 대표 최측근이자, 지난 전당대회에서 '팀한동훈'으로 함께 뛰었던 장동혁 최고위원은 전날 라디오에서 "저는 제3자 특검에 대한 논의를 굳이 이어갈 실익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당의 특검은 공정성과 중립성을 전혀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제3자가 하는 특검이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 대표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지, 채 해병 사건에 대해 특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한 대표의) 특검이 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韓, 국회의장에 "합의정신 지켜야"…여야 합의였던 금투세엔 "폐지"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이던 지난 4월 1일 부산·경남 유세에서 "정부가 여러분 눈높이에 부족한 게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100일도 안 된 제게 그 책임이 있지는 않지 않느냐"고 정부와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다음 날 홍준표 대구시장이 "(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했으니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자, 이후 충청권 유세에선 "중대한 결전을 앞두고 서로에게 핑계대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국민들을 기운 빠지게 하는 일"이라며 "부족한 게 있으면 제 책임이니 저에게 돌리면 된다"고 곧바로 말을 바꿨다.
전당대회 때는 토론회에서 "총선 패배는 100% 제 책임"이라고 했다가, 다시 경쟁 주자들을 향해 "제가 지원유세 다닐 때 세 분은 왜 지원유세 안 하셨느냐"고 지적하며 타 후보에게 책임론을 돌린 탓에 '앞뒤가 안 맞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논란의 경우, 논란이 불거진 처음에는 '여사의 문자 취지는 사과를 못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5개 문자 전문이 드러나자 "여사가 사과의 뜻이 없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로 확인했다"고 말을 바꿨다.
'댓글팀 운영 의혹'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내로남불',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 대표는 과거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이명박 정부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공작'(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 대한 수사·기소 전반을 지휘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간) 합의 정신이 잘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 의장이 본회의를 개최하고, 민주당 등 야당이 '방송 4법' 등을 강행처리하려는 것을 겨냥한 셈이다.
하지만 한 대표가 폐지하겠다고 주장하는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는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처리한 대표적 법안이다. 당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사람은 바로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추경호 의원이다.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여야 합의로 2년 늦춰 2025년 시행키로 약속했는데, 시행도 전에 폐지를 언급한 것이다.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소수·원외 한계…'속도 조절'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당내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득표율 63%라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이 되긴 했지만, 당내, 특히 원내에서는 '소수파'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보에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채 상병 특검법을 추진했다가 주류인 '친윤'(親윤석열) 세력과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당 혁신 동력 자체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 정비에 시간이 필요한 한 대표는 친윤계와의 '휴전 협정'을 맺은 모양새다.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과의 만찬에 참석하는 등 대통령과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야당 주도 특검법에 대해서도 "강력 반대"를 외치고 있다. 대야 투쟁에 집중해 당내 우군을 확보할 시간을 최대한 벌면서, 오는 8월 18일 민주당에 새 지도부가 들어서고 공수처의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가 나오는 등 상황을 반전할 '모멘텀'을 기다리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친한계 의원을 다 끌어모아도 나경원·원희룡을 지지했던 의원들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한 대표가 이들이 수용하기 힘든 의견을 내면서 독자 행보를 해서는 당을 이끌 수가 없다"며 "초반에는 눈치를 좀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기 내 한 대표는 민주당과의 정쟁을 현명하게 이끌면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당내 세력에 더해 중도층까지 포섭해야 대선 출마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표가 대선을 생각한다면 '당권-대권 분리' 조항으로 임기가 약 1년 2개월 정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을 추진하기보다는 임기 내내 당내 우군 확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당원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낸 만큼 한 대표가 이를 발판 삼아 채 상병 특검법 등에 대한 당내 저항에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여당 의원은 "친윤 세력들이 물밑에서 도왔는데도 원희룡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저조했던 것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으로 보인다"며 "한 대표가 초반 동력이 있을 때 본인이 주장했던 것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눈치 보는 모습은 또다른 실망감만 안겨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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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sm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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