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스토리] 제주 첫 올림픽 메달 땄지만..울분 삼킨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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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스토리'는 제주의 여러 '1호'들을 찾아서 알려드리는 연재입니다. 단순히 '최초', '최고', '최대'라는 타이틀에만 매몰되지 않고, 그에 얽힌 역사와 맥락을 짚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 속에 담긴 제주의 가치에 대해서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주도체육회에 따르면, 1968년 제19회 멕시코시티 올림픽부터 2021년 진행된 제32회 도쿄올림픽까지 제주 출신·연고 선수들이 획득한 개인·단체 종목의 메달은 모두 19개(금 9, 은5, 동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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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체육회에 따르면, 1968년 제19회 멕시코시티 올림픽부터 2021년 진행된 제32회 도쿄올림픽까지 제주 출신·연고 선수들이 획득한 개인·단체 종목의 메달은 모두 19개(금 9, 은5, 동5)입니다.
우리나라 통산 올림픽 메달이 287개임을 감안하면, 인구 1% 제주의 저력이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데요.
이번엔 올림픽에 도전해 온 제주 선수들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1972년, 제주 첫 올림픽 메달.. 울분 삼켜야 했던 이유는?
제주의 첫 메달은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에서 나왔습니다.
제주 첫 올림픽 출선 선수는 이보다 4년 앞선 제19회 멕시코 올림픽(1968년)에서 나왔는데요. 제주 복싱의 상징적 인물이자, 국내 복싱의 중흥기를 이끈 '캥거루 복서' 김성은 전 대한복싱협회장(1943~2007)으로, 당시 첫 올림픽 메달 기대감을 높였으나 예선 2회전에서 안타깝게 고배를 들었습니다.
4년 뒤 대망의 뮌헨 올림픽엔 제주에서 복싱과 유도 투기 종목 기대주 2명이 출전했습니다. 바로 오승립(유도), 고생근(복싱)이었는데요. 표선 출신 고생근 선수는 8강까지 진출했으나 스페인 로드리게스에 판정패를 당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한편, 직전 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성은 선수도 최종 선발전에서 선발됐음에도 뮌헨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파이팅 폼이 캥거루 스타일이고, 그 스타일로는 세계 제패가 어렵다'는 당시 체육계 고위층의 견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체육회장 비서실에서 보름가량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뮌헨 올림픽 첫 메달 소식은 제주의 오승립 선수에게서 나왔습니다.
오승립은 유도 미들급 종목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한 것인데요. 재일제주인(在日濟州人) 2세였던 오 선수는 일본에서 자라면서 배운 유도 실력을 발휘해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했습니다. 이후 2회전과 3회전에서 각각 푼소니(태국), 재클(체코) 선수를 한판승으로 누르고 4회전에 진출했습니다.
이어진 4회전에선 일본의 세키네 시노부 선수에게 우세승을 거두고 준결승 티켓을 거머쥐었습니다. 오 선수는 준결승에서 프랑스의 코쉬 선수를 한판으로 꺾으며 결승전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4회전에서 탈락한 세키네였습니다.
오승립은 패자부활전을 통해 올라온 세키네와의 다시 한번 맞붙었으나 우세패를 당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근데 당시 오 선수의 패배를 두고 국제적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미 앞선 경기에서 한 번 패배했던 선수가 대회 전승(全勝)을 기록하며 올라온 선수와 다시 한번 결승전에서 붙어 금메달을 가져가는 게 정당한 것이냐는 논란이었는데요. '제주도체육회 70년사'에선 이 경기를 두고 "일본의 농간"이라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이종택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지난 2012년 대한체육회 소식지 '스포츠 코리아'를 통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세키네 선수에게 금메달이 넘어간 당시 경기를 계기로 이후 국제연맹의 경기규정이 패자부활전을 통해 오른 선수는 최대 3·4위 결정전까지만 진출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오 선수가 딴 은메달이 뮌헨에서 수확한 한국선수단의 유일한 메달이어서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이 올림픽을 끝으로 오승립은 선수 생활을 접었습니다. 승자로 기록된 세키네 역시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제무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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