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도 우리 안 써줘요"…성매매 여성들, 폐허 못 떠나는 이유[르포]
"여긴 완전 다른 세상이에요."
지난 25일 오전 10시쯤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 앞.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보고 한 주민이 이렇게 말했다. 골목길 내부로 들어가니 큼큼한 냄새가 났다. 집집마다 유리창은 깨져있고 현관문에는 빨간색 스프레이로 '공가'(空家)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성매매 집장촌으로 유명했던 '미아리 텍사스'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호황을 누렸지만 2000년대 재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떠났다. 지금은 바닥에 생활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천장에는 거미가 매달려 있다.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간간이 여성들이 보였다.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이다. 40대로 보이는 여성 4~5명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붉은색 간이 천막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여성도 눈에 띄었다.
신월곡 제1구역 재개발사업은 2009년 4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그해 8월 조합이 설립됐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하다가 2022년 11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이곳에는 2206세대 공동주택·오피스텔, 생활숙박시설, 판매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에 공사를 시작해 2029년 하반기 준공하는 게 목표다. 현재는 조합은 남아있는 주민들과 이주 절차를 밟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전체 이주 완료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올해 11월부터 이주가 완료된 지역을 시작으로 부분 철거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신월곡 제1구역에는 크게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일반 주택 세입자 △가게 운영하는 영업권 세입자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세입자 등이다. 조합원과 세입자를 포함한 이주 대상자는 총 703명이었다. 지난 18일까지 총 531명이 이주를 완료했다.
현재 남은 사람 중 다수는 성매매 업소 세입자다. △조합원 1세대 △주거세입자 38세대 △일반영업소 세입자 41세대 △성매매 업소 세입자 92세대 등 총 172세대가 남았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전체 이주율로 보면 80%가 이주했고 나머지 20%가 성매매 업소 세입자"라고 말했다.
이날 굳게 닫힌 집들 사이로 빨간 조명을 켠 채 문을 연 업소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거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무더운 날씨에 바닥에 앉아 선풍기를 쐬기도 했다.
이들은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손님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생활했다는 업소 종자사 A씨는 "지금도 저녁 시간에 문을 여는 업소들이 있다"며 "사실상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업소 종사자들은 갈 곳이 없어 이곳에 남아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여종사자 B씨는 "여기는 나이를 먹어도 일할 수 있다"며 "식당 일도 알아봤지만 우리를 써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 역시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그냥 여기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세입자도, 주민도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주 과정에서 보상을 받기 힘들다. 구청에 따르면 이주비는 토지보상법에 따라 조합 측에서 현금 청산자, 세입자 등에게 약 75만~2500만원 수준으로 지원됐다. 조합은 일부 성매매 업소 세입자에 동산이전비 등 보상금을 조율할 예정이다.
성북구청은 업소 종사자에 대한 별도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성매매 피해자 상담소, 자활센터 등이다.
구청 관계자는 "성매매 피해자에 대해 상담, 의료·법률지원, 직업훈련 등 현장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 가구를 위한 생계·의료·주거·교육 등 복지서비스를 안내하는 등 법적 제도 내의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립과 자활 의지가 있는 탈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공동작업장,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해 일정 시간 참여하면 월 지원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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