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신 북한, 석양 대신 장대비···낭만 쫓다 쫄딱 젖은 개막식[파리올림픽]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에펠탑을 곁에 두고 유럽의 젖줄이라는 센강을 따라 펼쳐진 사상 최초의 야외 개막식 그리고 수상 개막식. 올림픽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할 줄 알았던 파리의 개막식은 날씨, 그리고 치명적인 실수로 큰 오점을 남겼다.
2024 파리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26일 오후 7시30분(한국시간 27일 오후 2시30분) 시작된 개막식은 프랑스의 문화, 예술, 역사를 총망라한 한 편의 공연으로 꾸며졌다. 세계적인 가수 레이디가가의 등장으로 시작된 공연은 물랭루즈 댄서 80명의 캉캉 댄스, 루이비통, 프랑스 혁명 등 프랑스 문화와 역사의 상징들로 꾸며졌다. 그리고 206개 참가국 선수단이 약속한대로 배를 타고 입장했다. 오스테를리츠 다리를 출발해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 시청 건물,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콩코르드 광장, 그랑 팔레 등 프랑스의 명소들을 두루 지나는 6㎞ 구간의 여정 뒤 에펠탑 인근의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집결해 개막 행사가 이어졌다.
섬세한 연출로 최대한 낭만적이고 싶었던 파리올림픽의 꿈을 비가 방해했다. 노을이 지는 센강이 무대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미 개막식 시작 3시간 전에 두 차례 굵은 비가 내려 우산과 우비가 등장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에마누엘 마크롱 대통령 등 주요인사들이 자리한 VIP석을 제외한 모두가 비를 쫄딱 맞았다.
비가 잦아진 뒤 정상적으로 개막식이 시작해 평화롭게 센강을 타고 그리스부터 난민팀으로 이어진 선수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그러나 프랑스 알파벳 ‘C’로 시작하는 국가들의 차례가 될 때를 앞두고 다시 비가 내리더니 점점 굵어져 장대비가 됐다. 한국 선수들이 등장할 때는 이미 장대비가 시작됐다.
그래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꿈의 올림픽 개막식이기에 많은 관중과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지만 박수와 함성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치명적인 실수가 나왔다. 참가국의 이름을 잘못 불렀다. 그것도 한국을, 심지어 북한으로 호명했다.
대한민국은 206개국 중 48번째로 입장했다. 육상 우상혁과 수영 김서영이 기수로 태극기를 흔들며 빗속에서도 환한 미소로 올림픽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고자 다짐했다.
그러나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을 북한으로 불렀다. 불어로 먼저 한국을 République populaire démocratique de corée로 소개했고, 영어로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고 반복했다. 둘 다 북한이다. 한국의 정식 명칭은 불어로 République de corée,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다.
심지어 153번째로 입장한 북한은 정확하게 소개했다. 206개국 중 대한민국은 없고 북한만 두 번 등장한 셈이다.
참가국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은 ‘실례’라고 표현하기에도 모자란 어마어마한 ‘무례’다. 역사상 가장 낭만적이기를 기대했던 파리올림픽은 많은 전세계 선수단과 관중에게 장대비의 기억을, 한국에게는 모욕감을 안겨주며 출발한다.
파리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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