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난잡함 사이..거리로 나온 파리올림픽 개회식,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 최악 참사에 메시지 퇴색
[뉴스엔 안형준 기자]
'예술의 도시'다운 화려한 개회식이었다. 하지만 참사도 역대급이었다.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7월 2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센 강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개회식은 역대 올림픽 최초로 주경기장이 아닌 야외에서 진행됐다. 파리에는 비가 내렸지만 축제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선수단은 주경기장 트랙을 걸어서 입장하는 기존 방식 대신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에 보트와 유람선을 타고 입장했다.
이날 개회식은 그 어느 개회식보다 거대하고 화려하게 진행됐다. 파리가 자랑하는 예술, 프랑스가 대표하는 자유와 평등의 테마가 화려하게 담겼다. 센 강변 뿐 아니라 파리 전체가 개회식장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개회식은 환영의 인사를 시작으로 열정, 자유, 평등, 우애, 여성 등의 테마로 구성된 행사가 진행됐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를 조명하려는 노력도 곳곳에 엿보였다.
개회식은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이 텅 빈 주경기장에서 성화를 건네받는 영상으로 시작됐다. 지단은 주경기장을 벗어나 파리 시내를 달려 지하철에 몸을 실었지만 갑작스럽게 지하철이 멈췄고 자신을 따라온 아이들에게 성화를 전달했다.
성화를 건네받은 아이들은 지하철 아래 하수도로 향했고 센 강으로 이어지는 물가에서 가면을 쓴 인물이 노를 젓는 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그 보트가 실제로 센 강변에 등장하며 본격적인 개회식이 시작됐다. 보트가 등장하자 센 강의 오스테를리츠 다리에는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연막이 터지며 프랑스 국기가 형상화됐다.
성화가 탄 보트 뒤로 근대 올림픽의 발원지인 그리스를 시작으로 선수단이 차례로 입장했다. 난민 선수단이 두 번째로 입장했고 이어 알파벳 순으로 선수단이 차례로 들어섰다. 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알바니아 등이 뒤이어 들어섰다.
10여개국이 입장한 뒤에는 첫 번째 축하 공연이 진행됐다. 첫 공연은 이탈리아 및 캐나다계 미국인으로서 프랑스계 혈통도 가진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무대였다. 레이디 가가는 센 강변의 황금색 계단 무대에서 검정 의상, 분홍색과 흰색의 깃털을 든 백댄서들과 함께 프랑스 '카바레' 스타일의 공연을 선보였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 끝나자 보트를 떠나 강변으로 올라온 아이들과 '가면 속 성화 주자'가 다시 등장했다. 아이들에게서 성화를 건네받은 가면 쓴 주자는 강변 지붕을 파쿠르로 이동하며 센 강변과 파리의 주요 장소들을 비췄다.
다시 선수단 입장이 이어졌고 강변에서는 프랑스의 유명 카바레 '물랑 루즈'의 아티스트들이 분홍색 의상을 입고 프랜치 캉캉 공연을 선보였다. 선수단 입장과 '예술의 도시' 파리의 공연 예술이 동시에 이뤄졌다. 선수단 입장이 이어진 가운데 가면 쓴 성화 주자는 복원 공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고 대성당의 공사 현장에서는 프랑스 '장인 예술'을 형상화 한 공연이 진행됐다.
개회식은 영상과 현실이 교차되며 화려하게 이어졌다. 영상 이후에는 센 강변, 건물에서 예술가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파리 예술가들은 '파리 시민의 열정'을 주제로 화려한 금빛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시 성화 주자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올림픽 메달을 주조하는 장면과 메달 트렁크를 제작하는 프랑스 유명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모습도 공개됐다.
예술 뒤에는 자유를 쟁취해낸 프랑스의 역사가 이어졌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프랑스 대혁명을 테마로 한 공연은 대혁명 당시 귀족의 형무소로 사용된 콩시에르주리에서 진행됐다. 오페라 카르멘의 '길들여지지 않는 새' 공연까지 마친 개회식은 평등 테마로 이어졌고 공화국 근위대 군악대와 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가수인 아야 나카무라의 합동 공연이 진행됐다.
가면 속 주자가 성화를 들고 파리의 또 다른 상징인 루브르 박물관을 누빈 뒤 센 강에는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했다. 육상의 우상혁, 수영의 김서영이 기수를 맡은 대한민국 선수단은 206개국 중 48번째로 입장했다. 영어 'KOREA'가 아닌 프랑스어 'Corée'를 기준으로 순서가 결정된 만큼 대한민국 선수단은 개회식 초반부에 입장하게 됐다. 선수단은 하늘색 단복을 입고 비 속에서도 환한 미소와 함께 등장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역대급 사고'가 터졌다. 장내 아나운서가 대한민국을 북한으로 소개한 것. 장내 아나운서는 대한민국을 뜻하는 프랑스어 'République de corée', 영어 'Republic of Korea' 대신 북한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République populaire démocratique de corée', 영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한국 선수단을 소개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참사였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입장을 마친 후에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의 아름다운 피아노 공연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성화 주자가 오르셰 미술관으로 이동해 프랑스 영상 예술을 소개했다. 그리고 '여성의 힘'을 테마로 메조 소프라노 악셍 셍시렐이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가창했고 프랑스 역사 속 위대한 여성 10인의 동상이 센 강에 떠올랐다.
이후에는 선수단 입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힙합 공연, 런웨이 패션쇼 공연 등이 진행됐다. 센 강변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에서 각종 공연이 계속됐다. 개최국 프랑스 선수단이 마지막 입장을 마친 뒤에는 각종 메시지를 담은 댄스 공연이 센 강의 야경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이번 올림픽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환경 보호의 메시지가 담긴 강렬한 공연도 이어졌다.
공연이 끝나자 센 강에는 오륜기를 걸친 '센 강의 여신' 세쿠아나가 철마를 타고 등장했고 선수단이 입장한 6km 수로를 달렸다. 에펠탑 앞 트로카데로 광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든 각국의 국기가 입장했고 센 강을 달린 세쿠아나가 백마를 타고 트로카데로 광장에 입장하자 각국 국기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세쿠아나는 에펠탑을 형상화 한 광장 무대를 지나 올림픽 오륜기를 게양대에 전달했고 오륜기가 계양되며 선수단이 모인 광장에 올림픽 찬가가 울려퍼졌다.
이후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공식 연설이 진행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회를 선언하며 올림픽의 막이 공식적으로 올랐다.
올림픽 선서 후 개회식 시작을 알린 영상에 등장했던 지단이 광장에 입장했고 파리 곳곳을 누빈 가면 쓴 성화 주자가 무대에 나타나 지단에게 다시 성화를 건넸다. 지단은 다음 주자인 스페인 테니스 영웅 라파엘 나달에게 성화를 전달했고 나달은 센 강의 보트에 몸을 실어 세레나 윌리엄스, 칼 루이스 등과 함께 성화를 옮겼다.
이후 루브르 박물관 튈르리 정원으로 이동한 성화는 프랑스 역대 올림픽 및 패럴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정원에 설치된 성화대까지 봉송했다. 열기구 모양의 성화대에 성화가 점화됐고 캐나다 출신의 프랑스계 가수 셀린 디온의 '사랑의 찬가' 공연을 끝으로 개회식이 마무리됐다. 희귀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알려진 디온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디바다운 열창으로 개회식의 대미를 장식했다.
주경기장을 벗어나 센 강 일대와 파리 곳곳을 무대로 삼은 이번 개회식은 그야말로 '역대급' 스케일로 진행됐다. 예술의 도시,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역사를 품은 도시에 걸맞게 어느 때보다 화려한 개회식이 열렸다. 거대하고 화려했지만 다소 '난잡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각종 테마의 공연들이 통일성있게 어우러지는 대신 각각의 화려함만을 과시하려는 듯했다. 스타디움 밖으로 나와 시도한 '개방된 개회식'은 참신했고 의미있었지만 통일성과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남았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나라의 가장 민감한 문제는 등한시하는 최악의 모습으로 인해 개회식에 담으려 한 각종 메시지들은 빛이 바랬다. 대한민국과 북한을 제대로 구분조차 하지 않은 개최국 프랑스의 처참한 인식에 공허함만 남았다.(사진=파리 올림픽 개회식)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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