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각 눈치보이니 교환사채 담보로 쓰는 기업들… “밸류업 역행” 눈총
올 들어 상장사가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자사주를 직접 매각하려니 공시 규제 강화와 투자자 반응이 신경쓰여서 돌려서 처리하는 것이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5일까지 유가증권·코스닥 상장사 24곳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0건)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카카오가 올해 4월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내놓고 가장 큰 규모(2930억 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카카오는 교환사채 발행을 위해 보유 중인 자사주의 약 70%를 처분했다.
그다음으로 호텔신라(1328억 원), 자화전자(375억 원), 디아이(200억 원), 선익시스템(180억 원), 유니드(154억), 한국석유공업(96억 원), 에프엔에스테크(96억 원) 순으로 발행액이 컸다. 가장 최근인 25일엔 씨에스윈드가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446억 원 규모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씨에스윈드는 이를 위해 보유 중인 자사주 74만1922주를 전량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환사채는 회사가 보유한 주식(자기주식이나 타법인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이다. 일각에선 최근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이 늘어난 이유로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의 관련성을 꼽는다.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3분기 중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처리 계획을 이사회 승인을 거쳐 공시하게 하는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 환원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취지다. 통상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당순이익(EPS)이 늘어 주가가 오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피해 기업들이 미리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해 자금 조달을 하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호텔·면세점 운영사 호텔신라는 이번에 처음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이달 5일 자사주(보통주) 213만5000주를 교환 대상으로 해 1328억 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호텔신라는 교환사채 발행을 위해 총 발행주식(보통주)의 5.44%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을 처분했다.
호텔신라는 만기 5년 교환사채를 무이자(표면 이자율·만기 이자율 모두 0%)로 발행했다. 포커스자산운용·GVA자산운용 등 자산운용사와 키움증권·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이 교환사채를 인수했다. 주당 교환가액은 6만2200원이다. 기준주가에 15%를 할증한 가격이다. 교환사채 투자자 입장에선 이자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주가가 교환가격 이상으로 오를 것을 기대하고 인수했다고 볼 수도 있다.
호텔신라는 교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전액 채무 상환에 썼다. 지난해 7월 KB국민은행에서 1년 만기로 빌린 1500억 원을 갚는 데 쓴 것이다. 대출 이자율은 4.65%였다. 호텔신라 측은 차입금 상환으로 이자 비용을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주 사이에선 회사가 주주 환원은 아랑곳없이 빚 갚는 데 자사주를 썼다는 불만이 나왔다. 자사주를 소각해 밸류업하라는 정책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호텔신라는 상장 후 자사주를 소각한 적이 없다.
일부 주주는 교환사채가 주식으로 교환돼 매물로 나오면 주가 하락 요인이 된다고 우려한다. 26일 호텔신라 주가는 5만600원으로 마감했다. 최근 1년간 최고치였던 지난해 8월(9만1000원) 대비 44% 떨어졌다.
증권가에서도 자사주를 담보로 한 교환사채 발행을 두고 평가가 엇갈렸다. 신한투자증권은 “이자율이 0%라 금융 비용 감소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교환가액이 높고 전환 조건도 까다로운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흥국증권은 호텔신라의 교환사채 발행 결정 하루 전 낸 보고서에서 낮은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을 언급하며 자사주 이익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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