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각 눈치보이니 교환사채 담보로 쓰는 기업들… “밸류업 역행” 눈총

김남희 기자 2024. 7.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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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상장사가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자사주를 직접 매각하려니 공시 규제 강화와 투자자 반응이 신경쓰여서 돌려서 처리하는 것이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5일까지 유가증권·코스닥 상장사 24곳이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0건)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카카오가 올해 4월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내놓고 가장 큰 규모(2930억 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카카오는 교환사채 발행을 위해 보유 중인 자사주의 약 70%를 처분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그다음으로 호텔신라(1328억 원), 자화전자(375억 원), 디아이(200억 원), 선익시스템(180억 원), 유니드(154억), 한국석유공업(96억 원), 에프엔에스테크(96억 원) 순으로 발행액이 컸다. 가장 최근인 25일엔 씨에스윈드가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446억 원 규모 교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씨에스윈드는 이를 위해 보유 중인 자사주 74만1922주를 전량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환사채는 회사가 보유한 주식(자기주식이나 타법인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이다. 일각에선 최근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이 늘어난 이유로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의 관련성을 꼽는다.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3분기 중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처리 계획을 이사회 승인을 거쳐 공시하게 하는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 환원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취지다. 통상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당순이익(EPS)이 늘어 주가가 오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피해 기업들이 미리 자사주를 담보로 교환사채를 발행해 자금 조달을 하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호텔·면세점 운영사 호텔신라는 이번에 처음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이달 5일 자사주(보통주) 213만5000주를 교환 대상으로 해 1328억 원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호텔신라는 교환사채 발행을 위해 총 발행주식(보통주)의 5.44%에 달하는 자사주 전량을 처분했다.

호텔신라는 만기 5년 교환사채를 무이자(표면 이자율·만기 이자율 모두 0%)로 발행했다. 포커스자산운용·GVA자산운용 등 자산운용사와 키움증권·NH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이 교환사채를 인수했다. 주당 교환가액은 6만2200원이다. 기준주가에 15%를 할증한 가격이다. 교환사채 투자자 입장에선 이자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주가가 교환가격 이상으로 오를 것을 기대하고 인수했다고 볼 수도 있다.

2024년 7월 25일까지 최근 1년간 호텔신라 주가 흐름. 7월 25일 종가는 5만 원.

호텔신라는 교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전액 채무 상환에 썼다. 지난해 7월 KB국민은행에서 1년 만기로 빌린 1500억 원을 갚는 데 쓴 것이다. 대출 이자율은 4.65%였다. 호텔신라 측은 차입금 상환으로 이자 비용을 줄이고 재무구조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주 사이에선 회사가 주주 환원은 아랑곳없이 빚 갚는 데 자사주를 썼다는 불만이 나왔다. 자사주를 소각해 밸류업하라는 정책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호텔신라는 상장 후 자사주를 소각한 적이 없다.

일부 주주는 교환사채가 주식으로 교환돼 매물로 나오면 주가 하락 요인이 된다고 우려한다. 26일 호텔신라 주가는 5만600원으로 마감했다. 최근 1년간 최고치였던 지난해 8월(9만1000원) 대비 44% 떨어졌다.

증권가에서도 자사주를 담보로 한 교환사채 발행을 두고 평가가 엇갈렸다. 신한투자증권은 “이자율이 0%라 금융 비용 감소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교환가액이 높고 전환 조건도 까다로운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흥국증권은 호텔신라의 교환사채 발행 결정 하루 전 낸 보고서에서 낮은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을 언급하며 자사주 이익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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