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조선에 둘도 없는’ 요리책 낸 미식가, 위관 이용기
위관(韋觀)이용기(李用基)는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을 살다 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기생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오입쟁이이면서 조선시대 가요를 1400편이나 수집한 책 ‘악부’(樂府)를 남겼고,계명구락부의 ‘조선어사전’ 편찬자였다.무엇보다 그는 1924년 ‘조선무쌍(無雙)신식요리제법’이란 요리책을 낸 선구자였다.조선에 둘도 없는, 말그대로 유일한 ‘신식요리책’이란 뜻이다.
이용기가 1917년 최초의 근대식 요리책으로는 꼽히는 ‘조선요리제법(製法)’ 서문을 썼다는 사실은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스물일곱 정신여학교 출신 교사 방신영이 쓴 ‘조선요리제법’은 일제시대 판을 거듭하면서 최고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책이다.좀 배운 여성이라면 집집마다 한권씩 갖출 만큼,가정필독서였다.‘만가필비(萬家必備)’란 수식어를 붙여 책 제목을 달 정도였다.신문관 주인인 최남선과의 인연으로 이용기가 서문을 썼을 것으로 보인다.
◇국어학자 권덕규의 증언
1870년 서울서 태어나 1933년쯤 사망한 이 사내의 생애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훗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난을 겪은 국어학자 권덕규가 이용기 사후 매일신보에 쓴 회고는 그 드문 기록 중 하나다.
‘위관(韋觀)이라 하면 서울서 모모한 사람은 대개 아는 이이다’로 시작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그가 생전에 가끔 모모(某某)문사의 틈에 끼어 연석에 참여하게 되기는 무슨 까닭인가.그의 장기(長技)를 취하야 그랬다 하면 그가 음식솜씨가 있고 자차구리한 이야기-곧 잡담이 일수(一手)인 것도 하나이요 또한 문자의 섭렵도 그 방면으로 하야 들을 것이 있으며 더 나아가 말하면 여항의 풍속-더욱 서울 대가(大家)-양반의 집 이야기 또 더 궁중의 이야기도 많이 아는 고로이며 이런 이야기를 그만두고 실상 그의 이야기를 한다하면 한말 망명객들을 좇아 해외에 놀았음으로 그 방면의 이야기를 알아 그들의 내력을 들을 수있으며 해외의 지식을 겸한 고로이다.'질엉이(지렁이)를 보고 위관을 생각하며', 매일신보 1935년 11월21일)
◇‘유명인사’대접받은 당대 오입쟁이?
서울 대갓집은 물론 궁중 이야기를 꿰뚫어 구수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담이 있었다고 한다.젊을 적 해외에 나가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고,바깥 사정에도 익숙한 인물이었으니 좌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것이다.학식과 몸으로 헤쳐나온 경험이 풍부한데다 무엇보다 요즘 감각으로 주목받는 것은 음식을 즐길 줄 아는 미각까지 갖췄다는 사실이다
이용기의 일생을 주로 소개한 이는 노산 이은상(1903~1982)이다.이용기는 1928년-1930년 계명구락부의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때 노산을 만나 자신이 정리한 ‘악부’를 보여주고 지도를 받은 사이였다.노산은 이용기보다 30년 가까이 아래지만, 일본 유학시절 동양문고에서 손진태와 함께 조선 고(古)가요를 정리했기에,노산의 안목을 높이 본 것이다.
◇'깨끗한 선비의 기질을 갖춘 얌전한 인물’
국문학자 신경숙은 노산의 회고를 바탕으로 이용기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한다.
‘이용기는 경성 토박이로 말년은 사직동에서 살았다. 젊어서부터 풍류를 좋아하여 오입쟁이로 일생을 살았다. 그러나 주색에 빠지는 방탕이나 활양은 아니고 기녀들을 상대하여 시가를 화답하는 풍류객으로 깨끗한 선비의 기질을 갖춘 얌전한 인물이었다. 실제 그는 최남선, 권상로, 이은상 등과 교유했으며, 수완이나 처세술도 부릴 줄 몰랐고, 가난했지만 친구들을 좋아했다.그는 2권의 저술을 남겼다.그 중 하나 상 하 두권짜리 ‘악부’(樂府)이다. 이 책은 10년 가까이 가요를 수집하고, 수많은 누더기 종이를 덧대어 완성시킨 가요집이다. 다른 하나는 ‘연구집’(聯句集)으로 한시문을 모아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전쟁 통에 소실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많은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특히 소설은 약 2000여 권이나 소장하고 있었다.’( ‘위관 이용기의 저술활동과 조선적인 것의 추구’63쪽)
노산이 위관을 ‘오입쟁이’라고 부른 게 의아하지만 기생들에게서 옛 노래를 채집하기 위해 접촉했다는 것이니 이해가 간다. 풍류객일 뿐 ‘깨끗한 선비의 기질을 갖춘 얌전한 인물’이란 평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소설만 2000권을 소장했다니 어지간한 애서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위관의 ‘악부’는 연구논문이 여러 편 나올 만큼 국문학자들의 연구소재로 인기가 높다.
◇845가지 한식,양식, 일식, 중식 요리법 망라
K푸드가 세계로 진출하는 요즘,관심사는 그의 요리책이다.1924년 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영창서관)은 845가지의 음식 만드는 법을 실었다.조선음식 뿐 아니라 중국, 일본, 서양음식 만드는 법도 포함됐다.요리사도 아닌 그가 이렇게 많은 음식 만드는 법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알았을까.19세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중 음식을 다룬 ‘정조지’(鼎俎志)등 옛 문헌을 참조했다는 얘기는 전하지만,주영하 교수는 ‘정조지’를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라고 한다. ‘임원경제지’ 또한 필사본이 몇 점 안될 만큼 희귀서였다.
위관의 말년은 가난했다.‘조선에 둘도 없는’책이라고 호언했던 요리책도 ‘조선요리제법’의 인기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그는 노산에게 20원을 받고,오랜 세월의 업적인 ‘악부’를 넘겼다. 노산은 이 ‘악부’를 보성전문학교에 기증했고 현재 고려대에서 소장하고 있다. 광복 후 ‘악부’는 국문학자들에 의해 재발견(’국문학 연구에 새 자료 발견’, 조선일보 1963년11월5일)돼 옛 가요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일조했다.
◇참고자료
신경숙, 위관 이용기의 저술활동과 조선적인 것의 추구, 어문논집 62,2010
주영하, 방신영과 이용기, 그리고 20세기 조리서, 근대 한식의 풍경, 한식재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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