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포커스] 북한 오물 풍선 2개월간 3600개… 일부 시민 ‘불안감’ 호소

김양혁 기자 2024. 7.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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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합동참모본부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남한으로 처음 날려 보낸 것은 지난 5월 28일이다. 이후 두 달간 10차례에 걸쳐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 3600개가 국내에서 포착됐다.

북한 오물 풍선은 경기, 인천, 서울 등 수도권을 넘어 강원, 충북, 충남, 경북, 전북, 경남 등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국가의 심장부인 대통령실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등에도 착륙했다. 풍선에 설치된 기폭 장치가 폭발을 일으켜 주택 옥상에 불을 낸 사례도 나왔다.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실적인 위험이 되지 못하는 물건이 북한 풍선에 담겨 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일상화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앞으로 북한이 생화학 무기에 해당하는 물질을 풍선에 담아 보내면 어떻게 하냐”며 불안감을 호소하는 시민도 있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낙하된 오염물을 처리하는 모습. /합동참모본부

◇北 오물 풍선에 기워 신은 양말, 칼로 훼손한 한국산 의류에 우상화 문건까지

북한은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기 이틀 전인 지난 5월 26일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 지역과 중심 지역에 살포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 탈북민 단체 등이 대북 전단을 북한으로 보내고 있는 것에 대응 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 오물 풍선에는 이름 그대로 다양한 오물들이 담겨 왔다. 대변 거름 등 오물부터 건전지, 신발·의류 조각, 페트병, 종이, 식품 포장지, 담배꽁초 등이 발견됐다. 북한 주민의 생활고를 보여주는 생필품 쓰레기도 나왔다. 몇 번씩 기워 신은 양말, 옷감 두 장을 덧대 만든 티셔츠나 마스크 등이다.

오물 풍선 내용물 중에는 북한 당국 의도가 개입된 것이 있다는 게 통일부 분석이다. 페트병은 라벨, 병뚜껑 등이 제거돼 있는데 이는 상품 정보 노출을 방지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 의류를 지원해 온 한국산 브랜드 제품을 훼손한 제품들도 나왔다. 칼로 훼손된 넥타이와 청재킷 등이 발견된 것이다. 한국산 물품에 대한 반감·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오물 풍선에 담긴 내용물. 옷감을 덧대어 만든 장갑. /통일부

납득하기 힘든 물건도 오물 풍선에서 발견됐다. 일부 오물풍선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대원수님 교시’,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높이...’ 등이 적힌 문건 표지가 발견됐다. 이들 표지는 절반으로 접히거나 구겨져 있었다.

북한 형법(64조 등)에 따르면 ‘수령 교시 문건 훼손’ 행위는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중죄다. 김정일과 김정은에 관한 것은 절대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를 맞아 방한한 북한 응원단이 현수막 속 김정일 위원장 사진이 비에 젖는다며 울먹이며 현수막을 뗀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기폭 장치 폭발로 주택 옥상·차량 등에 화재 발생

북한 오물 풍선 중에는 기폭 장치가 장착된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타이머가 부착돼 일정 시점이 되면 풍선을 터뜨려 풍선 안에 있는 오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 오물 풍선이 발견된 현장에 폭발물처리반(EOD)이 출동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에서 북한이 살포한 오물 풍선이 빌라 옥상으로 떨어지면서 불이 났다.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실제로 북한 오물 풍선이 화재를 일으킨 사례가 나왔다. 2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의 한 다세대주택 옥상에서 불이 났다. 북한의 오물 풍선이 터지면서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앞서 지난 6월 2일에도 경기 부천시 오정구에 주차돼 있던 차량 앞바퀴 근처에 북한 오물 풍선이 떨어지면서 폭발해 타이어와 차량 운전석 외부가 불에 타기도 했다.

◇일부 시민 “화학물질 넣을 수 있지 않나” 불안감

북한 오물 풍선은 국가 주요 시설에도 착륙하고 있다. 지난 24일 북한 오물 풍선이 서울 용산에 있는 대통령실과 국회에도 날아들었다. 앞서 서울 광화문에 있는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에도 북한 오물 풍선이 내려앉았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실에도 풍선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일종의 풍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상공에서 북한이 부양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남 오물풍선 쓰레기(빨간동그라미)가 떨어지고 있다. /뉴스1

북한 오물 풍선은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 1호선 열차 지붕, 대학병원 앞, 식당가 등에도 착륙하고 있다. 풍선에 기폭 장치가 터지면서 인도에 내용물이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서울 도심에서 북한 오물 풍선을 목격한 시민 중에 불안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40대 남성 최모씨는 “쓰레기라고는 하지만, 화학 물질은 육안으로 구별이 어렵지 않나”라며 “며칠 전 (북한 오물) 풍선이 광화문에 떨어져 불안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길을 가다 북한 오물 풍선 내용물을 만지려는 시민을 만류하는 다른 시민도 있었다.

통일부가 북한 오물 풍선 내용물을 수거해 전문 기관에 분석을 맡긴 결과, 오물 내에 포함된 토양에서 회충, 편충, 분선충 등 기생충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화학물질을 풍선 안에 넣을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전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로, 현재로선 지나친 우려”라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도 “(오물 풍선을 이용한 화학전) 가능성은 항상 있어 왔다”라면서도 “이론적 가능성만 있고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체감되는 사건은 크게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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