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대기근 부른 ‘참새 제거작전’… 그럴듯한 페이크가 빚은 비극

송은아 2024. 7.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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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허위 정보 범람하는 시대
논리 오류 빠지는 경우 등 많아
8년 전 美 대선서 트럼프 당선
언론의 기계적 중립성 탓 지적
“증거·이성 따르고 잘못 고쳐야”

페이크와 팩트/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김보은 옮김/ 디플롯/ 2만5800원

1950년대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대약진 운동 당시 없애야 할 해악이 지목됐다. 파리, 모기, 쥐와 함께 의외의 생물인 참새가 목록에 포함됐다. 농부가 기른 곡물을 먹어치운 죄였다. 1년이 안 돼 참새 약 10억 마리가 죽었다.

중국 조류학계 권위자 정줘신은 참새가 해충을 통제하는 중요 동물이라고 경고했다. 마오는 이를 듣고 분노했다. 정줘신은 ‘권위적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사상 재교육과 강제노동을 받았다. 결과는 비극이었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가 폭증해 곡식을 먹어치웠다. 중국은 뒤늦게 구소련에서 참새를 수입해왔지만 인민 수천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
신간 ‘페이크와 팩트’는 비판적 사고가 뒷전으로 밀리면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사례로 중국의 3년 대기근을 든다.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생물통계학자인 저자는 마오와 공산당이 ‘뭔가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정치적 삼단논법에 갇혀 있었다고 분석한다.

사고, 반성, 추론하는 인간의 능력은 문명을 가능케 했지만 결함이 많고 실수를 저지른다. 선동과 허위 정보가 범람하는 요즘은 특히 함정에 빠지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저자는 사례를 통해 각종 논리 오류, 선동·선전에 휩싸이는 현상, 통계의 잘못된 활용 등을 보여준다.

논리 오류 중 하나로는 휴대전화 전자파가 암이 생기게 한다는 오해가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문서는 2007년과 2012년에 발표된 ‘바이오이니셔티브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과학문헌으로 위장했지만 전문가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보고서 저자들은 ‘모든 무선 주파수 복사는 전자기복사다/ 일부 전자기복사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무선 주파수 복사는 암을 유발한다’는 흐름 때문에 오류에 빠졌다. ‘모든’ ‘일부’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정의한 데서 생긴 오류다. ‘모든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죽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죽었다/ 따라서 지미 헨드릭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였다’라는 논리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휴대전화, 와이파이는 저에너지 광자인 마이크로파를 활용한다. 가장 에너지가 높은 마이크로파조차 가장 에너지가 낮은 가시광선보다 약 1430배 적은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렇게 낮은 에너지로는 DNA 손상을 일으킬 수 없으니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

통계를 잘못 활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1990년대 영국 부부인 스티브와 샐리가 겪은 비극은 통계 때문이었다. 부부는 두 아들을 연이어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잃었다. 어머니인 샐리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소아과 의사인 메도는 비흡연자 중산층 가족에서 영아돌연사증후군이 일어날 우도(관측값이 확률분포에서 어느 정도 나타나는지에 대한 확률)는 8543명 중 하나이기에 두 번이나 일어날 확률은 대략 7300만명 중 1명꼴이라고 추론했다. 배심원단은 유죄로 평결했다.

이를 본 통계학자들은 크게 놀랐다. 두 사건의 확률을 단순히 곱해서 확률을 구하려면 각 사건이 완벽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영아돌연사증후군은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으며, 유전이나 환경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후 항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3년간의 수감 생활로 고생한 샐리는 2007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숨졌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김보은 옮김/ 디플롯/ 2만5800원
저자는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매스컴의 ‘기계적 중립’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온갖 스캔들에 휩싸이고 혐오 발언, 중상모략을 일삼았다. 경쟁 상대인 힐러리는 장관 시절 사적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했다는 논란에 시달렸다. 매스컴은 힐러리의 상대적으로 작은 스캔들을 트럼프의 온갖 문제와 같은 수준으로 보도했다.

저자는 이런 기계적 중립은 각 주장 뒤에 있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공정성이라는 환상에 집착할 때 나온다고 꼬집는다. 대체의학이 효능이 없음을 규명한 많은 과학실험 결과와 효과를 봤다는 일부 환자의 주장을 같은 무게로 보도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쉽게 눈에 띄는 경험담이 진실을 가리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양안보연구센터는 도그파이트(전투기 근접 전투)에서 귀환한 전투기를 연구했다. 엔진과 콕핏을 제외한 기체 전체에 탄환자국이 있었다. 이에 기술자들은 두 부분을 빼고 다른 부분만 강화했다.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는 엔진과 콕핏이 손상된 전투기는 아예 추락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일깨워줬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사례를 간과하고 성공사례에 근거해서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생존 편향이라 한다.

거짓에 속지 않으려면 과학적 회의주의가 필요하다. 특정 주장에 분석적 사고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권위에 혹해선 안 된다. 인간은 확증편향에 면역력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보의 출처가 믿을 만한지, 입맛에 맞는 정보만 갖다 쓰지 않는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과학자처럼 생각하려면 증거와 이성을 따라야 하고,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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