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칼럼] 은퇴 쓰나미와 자산관리의 새로운 관점
한국은행은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순차적으로 도래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일 발표한 보고서('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연령 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평가')에 따르면 현재 60세까지 보장하는 고용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서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2024~2034년 중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p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탓에 2015~2023년 중 연간 경제성장률은 0.33%포인트 하락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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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가처분소득을 은퇴 전 근로활동 때 가처분소득과 비교한 '순연금대체율'도 35.8%에 불과해, OECD 평균(61.4%)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2차 베이비부머의 소득 및 자산 여건은 1차 베이비부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인다.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전 실질소득은 1차에 비해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저축과 국민연금 납부 규모 역시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과 저축이 늘어나면서 2차 베이비부머의 금융·실물자산 규모 역시 증가해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전 순자산은 1차 베이비부머의 은퇴 전 순자산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다만 약 6억원 상당의 가구당 순자산의 70%가 사실상 부동산인 실물자산으로 구성돼 있어 가처분 소득으로 전환이 가능한 금융자산은 30%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은퇴라는 중요한 이벤트에 진입하게 되는 세대는 물론이고, 그 주변 세대들도 자산의 절대적 규모가 아니라 매달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소득의 흐름이 얼마인가를 중심으로 자산관리를 바라봐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면서 개인의 은퇴재무설계와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 MIT 경영대학원 교수)은 일찍이 자산에서 소득으로(From Asset to Income)라는 개념을 주창해 왔다. 현실적으로 가처분 소득으로 쉽게 전환되기 어려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은 은퇴 준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의미 없는 자산이며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소득을 창출해 주는 소위 인컴(Income)형 자산이 소용에 닿는 자산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은 오랜 시간 동안 부동산 중심의 자산축적 관행이 이어져 왔다. 이는 자칫 '흑자도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총 자산은 비교적 여유가 있는데 당장 쓸 돈이 없는 상태에 이를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최근 은퇴한 여러 사례에서도 자산이 있는 데도 쓸 돈이 없어 곤란을 겪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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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있는 경제활동 기간 중에는 연금저축과 IRP(개인퇴직계좌)를 이용해 세제혜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산을 연금화할 수 있도록 축적해 가야 한다. 저축과 투자에서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연금저축과 IRP는 세액공제 한도 납입액(합산 900만원)의 최대 16.5%(148만5000원)를 세액공제를 통해 돌려준다.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노후 준비를 위해 연금투자 혜택을 확대하는 추세이다. 두 계좌를 합해 1년에 1800만원까지 입금할 수 있고, 이 가운데 900만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연 급여 5500만원 이하이면 16.5%, 5500만원 초과면 13.2% 공제 혜택을 준다. 900만원을 납입했다면 각각 148만5000원, 118만8000원을 연말정산에서 돌려받아 세금 환금을 통해 확정적 수익을 내는 셈이다.
연금저축과 IRP는 세제혜택 측면에서는 같지만 자산 운용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연금저축은 주식, ETF(상장지수펀드) 등 위험 상품에 자산의 100%를 투자할 수 있지만, IRP는 위험 자산 비중이 70%로 제한된다. 연금저축이 좀 더 위험 선호적인 운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IRP는 예금과 주식연계파생결합사채(ELB), 리츠 등 투자할 수 있는 상품군이 더 다양하다는 특징도 있다. 또 연금저축은 중도인출이 가능하지만, IRP는 연금수령 조건이 되기 전까지는 개인회생·파산, 요양, 천재지변, 주택구입·전세보증금 등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인출할 수 있다.
은퇴에 직면한 시점이라면 금융자산을 연금저축과 IRP로 꾸준히 전환하는 것 외에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처럼 부동산 자산을 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자산연금인 주택연금의 경우 부부 중 1명이 만 55세 이상이고, 담보로 제공하는 주택이 공시가격 12억원 이하면 가입할 수 있다. 만약 공시가격이 합산 12억원을 초과하는 2주택자는 주택연금의 담보로 제공하지 않는 다른 주택을 3년 이내 매각하는 조건으로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세부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공시가격 12억원 상당의 주택을 담보로 65세에 종신형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약 월288만원을 지급받게 된다. 더구나 주택연금은 내용상 담보대출의 성격이어서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등 재산과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준조세성 부담을 지지 않는다.
자산의 연금화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기적인 가처분 소득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는 본질적인 장점 외에도, 세 부담 완화도 기대할 수 있다. 부동산의 경우 고율의 종합부동산세나 상속세의 대상이 되지만 주택연금은 대출금이므로 비과세이다. 금융자산도 목돈으로 보유하며 수익을 내면 금융소득종합과세나 이자, 배당소득세의 대상이 되지만 연금계좌에서 일정 기준에 맞게 5~10년 이상 인출하면 현저히 낮은 세율(연금소득세 3.3~5.5%)의 적용 받게 된다.
정부의 과세정책도 자산의 연금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지속해서 개편되고 있는 만큼 아직 은퇴까지 시간이 있는 2차 베이비부머와 그 이후 세대는 연금계좌를 우선으로 자산을 모으고, 이미 은퇴에 진입한 세대는 적극적으로 자산연금을 최대한 활용한 자산 리빌딩을 추진해 개인과 사회의 부담을 완화하고 은퇴 쓰나미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어야 하겠다.
권용수 삼성증권 은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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