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가 소환한 그 시절 디카…디지털카메라의 ‘낡은 새로움’에 꽂히다

김지윤 기자 2024. 7.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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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디카, 널 찍었다
그래픽 | 현재호 기자 hyun@kyunghyang.com

임솔비양(19)은 최근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에서 ‘빈티지 디카’(디지털카메라)를 구매했다. 스마트폰 하나면 촬영부터 후보정까지 가능한 시대, 사진을 따로 옮겨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구형 카메라를 들인 이유는 “대체 불가의 매력 때문”이다. 임양은 “디카의 화질과 색감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추억을 꺼내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사진 속 순간을 더 소중하고 찬란하게 만든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 미니홈피 유행에 맞물려 X·Y세대의 ‘필수템’으로 꼽히던 ‘콤팩트 디지털카메라’가 부활했다. 작고 가벼워 휴대성이 높고 간단하게 버튼만 누르면 촬영돼 일명 ‘똑딱이’라고 불리던, 화소 수가 200만~300만에 불과한 바로 그 카메라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흐리멍덩한 색감에 다소 조잡해 보이는 기능으로 무장한 이 볼품없는 ‘빈티지 카메라’가 Z세대 사이에서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카 붐의 불씨가 된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

‘엄빠’의 카메라, 트렌드가 되다

온라인 중고 사이트에 ‘빈티지 카메라’를 검색하니 ‘삽니다’ ‘팝니다’로 시작하는 게시글이 끝없이 이어진다. 스마트폰의 편리함과 나날이 진화하는 기술이 채우지 못한 감성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의 흔적이다. 스펙 좋은 단종 모델의 가격은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온라인 중고시장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구할 수 있는 동묘 일대나 세운상가를 찾는 이들도 있다. 기능보다 디자인에 만족하며 3만원대에 판매되는 ‘저렴이 버전’을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남대문시장에서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박기성 대표는 “2, 3년 사이 디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체감된다”며 “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으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정점을 찍고 설 곳을 잃어가던 디카의 운명이 바뀐 것은 지난해,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Ditto’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뮤직비디오 덕분으로 알려져 있다. 저화질의 흐릿함으로 아련하게 편집된 영상과 그 시절 청춘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선명한 화질과 화려한 앵글에 익숙한 Z세대에겐 낯선 노스탤지어라는 감성을 자극했다. 특히 소품으로 쓰인 캠코더와 디카는 ‘레트로’ 열풍에 빠져 있던 이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켰고 여기에 블랙핑크, 세븐틴, 에스파, 르세라핌 등 유명 아이돌 멤버들의 디카 사랑이 목격되며 빈티지 디카는 말 그대로 ‘잇템’으로 등극했다. 현재 Z세대의 주무대인 인스타그램에는 해시태그 ‘digicam’으로 생성된 콘텐츠가 38만개에 육박하고 틱톡이나 유튜브에서는 빈티지 디카로 촬영한 브이로그, 리뷰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주로 언급되는 기종은 니콘 쿨픽스 S3700, 후지 파인픽스 F460, 올림푸스 뮤 1060, 소니 사이버샷 DSC 등이다.

레트로 바람과 함께 ‘반짝인기’에 그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빈티지 디카 붐은 저마다의 사연과 함께 견고한 영역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온라인 중고 사이트에 디카 구입 희망 게시글을 올린 대학생 조보영씨(23)는 “시커먼 미러리스 카메라, 천편일률적인 스마트폰과 달리 디카는 다채로운 디자인이 강점”이라며 “희소성이 있는 제품은 시중에 풀리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원하는 색상, 크기, 모델을 나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Z세대의 관심 속에 부활한 ‘똑딱이’ 카메라. 위 사진부터 니콘 쿨픽스 L12, 올림푸스 뮤 1060, 후지 파인픽스, 소니 DSC-WX7, 니콘 쿨픽스 S30.

서재에서 발견한 디카 덕에 새로운 취미가 생긴 고등학생 최영혁군(17) 역시 “처음 접해본 ‘신문물’이 꽤 흥미로웠다. 정작 부모님께서는 ‘왜 굳이’라고 하셨지만 배터리를 분리해 충전하거나 손가락이 아닌 버튼으로 화면을 확대, 축소하는 과정이 감성적으로 다가왔다”며 “스마트폰이나 패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기인데 이름과 달리 아날로그 감성을 주는 것이 특히 재밌다”고 강조했다. 개성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요즘 세대에게 디카는 ‘맞춤형 장난감’인 셈이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온 이들의 합류도 눈에 띈다. 대학생 정대영씨(22)는 필름 가격이 상승하고 인화료 부담이 커지면서 ‘가성비 좋은’ 대안을 선택했다. 정씨는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고화질의 카메라와 달리 친근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점을 디카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휴대전화 앱에도 디카 감성 필터나 인화 필터는 많이 있지만 특유의 인위적인 느낌이 싫었다”며 “세기말을 떠오르게 하는 디카의 흐릿함이 나의 단점을 가려주는 것 같아 편안한 기분이 든다”고 전했다.

사진을 공유하는 플랫폼과 기기의 변화가 디카 붐을 견인했다는 의견도 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김명성씨(40)는 “과거에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인터넷 사진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돼 고화질 사진을 공유하고 확대해 보는 문화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스마트폰 화면으로, 소셜미디어 허용치 안의 사이즈 내에서 사진을 소비하다보니 굳이 고화질 카메라가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들이 ‘유물’ 디카를 즐기는 법

Z세대가 빈티지 디카를 즐기는 법은 무엇이 다를까. 대학 휴학생 박강연씨(22·가명)는 니콘 쿨픽스 5200을 사용 중이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그는 컬러와 디자인 중심으로 카메라를 골랐다. 고화질 사진은 스마트폰으로도 촬영할 수 있으니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화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삽입구 커버가 계속 떨어져 테이프로 고정해줘야 한다는 소소한 단점이 있지만 동영상 촬영까지 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디카 유저인 레드벨벳의 조이(왼쪽 사진)와 르세라핌의 사쿠라. 르세라핌 사쿠라 인스타그램

박씨는 “우리 세대는 어릴 적 어렴풋하게 디카를 만져봤던, 스쳐간 세대다. 디카로 나만의 특별한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촬영 팁은 ‘눌러지는 대로 찍는 것’이다. 필름 카메라와 달리 촬영 컷 수에 대한 부담이 없고, 설령 용량이 부족해도 카메라 속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옮겨서 여유 공간을 만들어 다시 찍을 수 있으니 가능한 팁이다. 그는 “화질이 뛰어나서, 인물이나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찍으려고 디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며 “흔들린 사진도 그것만의 감성이 존재한다. 잘 찍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프리랜서 김재원씨(22)는 ‘의미 부여’를 통해 디카의 가치를 높인다. 어릴 적부터 항상 옛것을 갈망하고 그 사연을 알아가는 과정이 뜻깊은 일이라 여겨왔던 김씨는 “2013년 출시된 이 카메라는 당시 150만원의 판매가로 비난받다가 50만원으로 ‘급’할인을 하고선 역사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하이엔드 똑딱이”라며 “현재는 매물이 올라오는 순간 사라져 못 사는 제품”이라고 자신의 소장품인 니콘 쿨픽스 A 시리즈를 소개했다. 비록 2주 만에 센서가 고장 나면서 무용지물이 됐지만 그는 “작은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편리함과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디자인, 지금 봐도 뒤처지지 않는 성능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다시 기회가 찾아온다면 또 한 번 구입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독일에 거주하며 실내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호수씨(가명)는 디카 80대의 소유주다. 이씨는 “매일 새로운 트렌드, 기술에 노출된 내게 디카는 쉼표 같은 존재”라며 “20년이 넘은 기계에서 사진을 옮기다보면 새로운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촬영 외 다른 기능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도 그가 디카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는 평소 전화나 문자메시지, 음악 등에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사진에 집중할 수 있어 카메라만 들고 산책하는 시간을 즐긴다. 소품 촬영을 주로 하는 이씨는 “이렇게 바꿔보고 저렇게 바꿔보며 여러 장 찍다보면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이 남더라”며 많이 시도해볼 것을 강조했다.

레트로 붐과 함께 Z세대 사이 ‘콤팩트 디지털카메라’가 재조명되고 있다. 1·3. @sorukiki 2·4. @ gfindayqmffhrm 5. @connfy_c 6. @oldture

역주행, 언제까지 계속될까

빈티지 디카 붐은 범세계적인 트렌드다. 미국의 인터넷 신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필터링되지 않은 경험을 추구하는 Z세대 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디카의 판매 수익은 2028년까지 14억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캐논 코리아 측은 디카의 부활을 두고 “유튜버를 포함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등장하면서 사진, 영상 콘텐츠 제작 환경이 고도화되고 시장이 커졌다”며 “이런 가운데 입문자들이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휴대가 용이한 카메라를 찾는 과정에서 디카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모든 이가 희망적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주디 엘레나는 “Z세대는 디지털 세대로 불리며 항상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폰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고 스마트폰으로부터 단절을 갈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역주행은 디지털화된 세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싫증 난 이들의 일시적 일탈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냈다.

뜻밖의 성황에 카메라 업계도 고민이 깊다. 최근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니콘 쿨픽스’ 무료 대여 이벤트를 진행한 니콘 이미징 코리아 관계자는 “단종 카메라 수리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부품이 없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이미 기술적인 수준이 향상돼 더 좋은 카메라를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 단종된 ‘빈티지 카메라’를 재출시하거나 해당 부품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빈티지 디카에 관심을 두는 젊은 세대 대다수가 화이트 밸런스나 노출 보정 기능은커녕 해당 카메라를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조차 모른다”며 “지금의 현상이 해당 카메라에 대한 만족인지, 그 시절에 대한 향수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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