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한계 조언하기 전, 본인들 한계부터 되짚어야 할 ‘강연자들’[위근우의 리플레이]
심장이 울리기는커녕 차게 식었다. 석사논문 표절 문제 이후, MBC의 신규 프로그램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이하 <강연자들>)을 통해 약 3년 반 만에 강연 무대에 복귀한(방송 복귀는 2022년 MBN <그리스 로마 신화-신들의 사생활>) 한국사 강사 설민석의 강연을 들으며 느낀 기분이다. 오해를 피해 미리 말하면, 논문 표절은 교육자로서 큰 잘못이지만 적어도 그가 방송인으로서 충분한 자숙 기간을 보냈다는 것에 동의하며, 이번 강연에서 밝혔듯 다시 대학원에 입학해 논문을 쓰고 떳떳해지고 싶다는 각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가 과오를 반성하고 다시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 나아갈 앞으로의 과정을 응원하고 싶다. 단지, “어느 자리에서도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던 인간 설민석의 새까만 흑역사를 공개”하겠다던 이번 강연이 결과적으로 기만이자 허위매물이었을 뿐이다. ‘한계’를 주제로 꾸려진 이번 방송에서 그는 육체적, 환경적 한계로 자신이 경험했던 흑역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한국사 강사가 되었는지에 대해 여전히 능숙한 화술로 풀어냈다. 자신의 꿈을 따라 7번의 실패 끝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지만 쟁쟁한 배우 동기들에게 주눅이 들었던 그가 학원 국사 강의에서 의외의 재능과 사명감을 발견하고, 연기 전공자로서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접목해 역사 비전공자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는 청중에게 꽤 좋은 동기부여가 될 법했다. 하지만 그의 이번 출연과 강연이 예고부터 화제였던 건 예측 가능한 성공담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최대 흑역사라 할 논문 표절 문제를 어떻게 정면 돌파할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삶의 주요 고비마다 경험한 한계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던 설민석은 논문 표절 논란으로 “최강 지옥을 맛봤다”고 고백했다.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그 고난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대학원으로 돌아가 다시 논문을 쓰려는 건 용기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구성된 서사는 상당히 비겁하다. 그의 진정한 흑역사는 논문 표절 논란이 아니라 논문 표절 자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수많은 한계와 인생의 단계들을 본인의 노력과 인식의 전환으로 극복한 과정으로 재구성한 뒤, 그 모든 고난을 뛰어넘는 최종 고난으로서의 논문 표절 문제를 마치 새롭게 마주한 것처럼 말한다. 이건 선후가 바뀐 이야기다. 여러 고난을 잘 극복했지만 표절 논란이라는 예기치 못한 고난을 경험한 게 아니라, 그가 한계를 넘어섰다 강연에서 자랑스레 밝힌 그 과정 중에 실은 논문 표절이라는 편법이 동원된 것이다. 그가 역사 비전공자의 한계를 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고 뛰어난 언변과 연기력을 보여준 게 사실인 만큼, 학위 논문을 표절로 작성해 역시 비전공자의 한계를 보완한 것 역시 사실이다. 본인의 입지전적 서사가 실은 부도덕한 우회로를 거친 일종의 허구임을 밝히길 바랐다면 너무 많은 용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적어도 그가 정말 본인의 “새까만 흑역사”를 용기 있게 공개하며 자기 앞의 최종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다면 그래야 했겠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또한 이것을 매우 솔직하고 감동적인 강연으로 포장하고, 청중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에 공감할 수도 없다.
이번 설민석의 강연과 <강연자들>이 흥미로웠다면, 강연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심장을 울리는’ 소위 명강연이라는 것이 어떤 기술과 기만들로 지탱되는지 꽤 투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설민석은 이날 자신의 한국사 스토리텔링의 비법을 개연성과 갈등, 반전의 세 요소로 설명했는데, 그가 자신의 흑역사를 서사화한 방식도 정확히 그러하다. 자신이 지닌 한계 때문에 필연적으로(개연성) 꿈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지만(갈등) 한계를 통해 오히려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찾고 성공한다(반전). 이야기의 힘이 강한 건 쏙쏙 기억에 남아서만은 아니다. 이야기로 구조화될 때, 재능 있고 독한 한 개인의 일회적이고 우연한 성공의 경험은 모두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보편적인 가르침이 된다. 좋은 일이다. 그것이 가끔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단순히 설민석 개인의 과오가 희석됐단 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경험이 하나의 서사 구조로 깔끔하게 환원될수록 수많은 취사선택이 벌어진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경험에 맞닿아 있는 다양한 맥락과 질문들의 유의미한 경로 역시 다수 제거된다. 설민석의 흑역사 이야기는 한계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용기를 줄지 모르지만, 도전 중에 도덕적인 일탈과 타협에 빠지고 싶은 유혹에 대해선 별다른 가르침을 주지 못한다. 그것이 그가 실제로 경험한 가장 중요한 흑역사임에도. 설민석에 비해 훨씬 투박한 ‘노오력’의 서사를 들고 나온 김성근 감독의 강연도 마찬가지다. 그의 ‘야신(야구의 신)’ 신화에 항상 따라붙는 혹사 논란이 여전히 첨예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한계라는 의식을 가진 것 자체가 틀렸다”는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진실을 가린다. 김성근 본인과 애제자인 최정, 정근우 등이 한계를 설정하지 않고 노력해 성공했다는 사실이,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한계 앞에서 포기하고 핑계를 댔다는 반증이 되진 못한다. 성공한 생존자의 서사는, 생존하지 못한 다수의 목소리와 경험을 게으른 실패자의 변명으로 침묵시킨다. 강연이란 형식 자체가 다분히 일방적이기도 하지만, 순종적인 청중이 되어 이 불편함을 모른 척 해야만 명강연에 박수칠 수 있다.
첫 방영부터 화제를 모은 <강연자들>의 첫 주제가 ‘한계’인 건 그래서 재밌는 우연이다. 방송에서 ‘어(語)벤져스’로 명명된 강연자들 다수가 미디어에서 그들 경험과 전문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의 권위를 획득하고 발휘해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설민석은 표절 논란 전까지 잘 가르치는 한국사 강사를 넘어 MBC <선을 넘는 녀석들-한반도 편> 공식 홈페이지에서 ‘역사의 신’으로 소개되었으며,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본인 전문분야를 넘어선 로마사, 중국사, 현대 전쟁사 등을 다루다가 수많은 사실 오류를 범했다. <강연자들>의 강연자 중 하나이자 진행자이기도 한 오은영 박사는 정신건강의학자이자 뛰어난 상담가지만 ‘국민 인생 멘토’(<강연자들> 홈페이지 소개) 역할까지 맡기는 버거워 보인다. 당장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 문제 부부에 대한 그의 솔루션은 심리적 갈등과 이해의 개인적 차원에 국한되며 가부장적 문화의 불평등과 폭력에 대한 공적 차원의 문제는 종종 누락되거나 주변화 된다. 그것이 본인의 과욕이든 미디어의 안일함이든, 정직한 자기 제한의 미덕을 넘어서는 권위의 언어란 그 자체로도 부당하거니와 결과적으로 세계를 왜곡시킨다. 7인의 강연자들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강연자들>이 ‘한계’라는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스스로의 한계부터 돌아봐야 하는 건 그래서다. 앞서 지적한 설민석과 김성근 강연의 한계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책임질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며 만들어진 것이다. 당장의 반응이 좋다는 이유로 그런 말들이 다른 강연자를 통해, 다음 번 주제를 통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심장을 울리기 위해, 생각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니까.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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