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에번 부치 AP 사진기자 인터뷰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7.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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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피격 결정적 장면 포착
“무수한 실패 있었기에 특종 나와”
“렌즈 통해 스토리텔링, 사진의 힘 여전히 막강”
소니 카메라 2대 소지… “주짓수가 인생 바꿔”
에번 부치 AP통신 워싱턴지국 수석 사진기자. /에번 부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지난 13일 발생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은 사진 한 장으로 정의(定義)됐다. 얼굴에 피가 흘러내린 채 파란 하늘과 성조기를 배경으로 오른 주먹을 들고 소리치는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타임지는 사건 직후 이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쓰면서 “역사적 중요성, 명료한 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긴장감 등 이번 사건의 모든 것이 이미지 하나에 다 들어 있다”고 했다.

이 사진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20년 넘게 현장을 누빈 AP 워싱턴 지국의 베테랑 사진기자 에번 부치(Vucci·47)가 촬영했다. 2021년 저널리즘 부문의 권위 있는 상인 퓰리처상을 받은 부치는 25일 전화 인터뷰에서 트럼프 총격 사진에 대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란 직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눌렀다”며 “사진기자의 저주는 결코 두 번째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AP 워싱턴 지국의 사진기자 에번 부치의 카메라에 담긴 장면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난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격 직후 피를 묻힌 채 주먹을 들어올린 모습, 2008년 이라크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기자가 신발을 던지는 모습, 2020년 5월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워싱턴 DC 거리에 세워진 차량들을 뒤집는 모습, 11월 대선 출마를 포기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24일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에번 부치

-총격에서 트럼프 대피까지 2분 남짓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대처했나.

“AP에 2003년 입사했다. 예전에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했고 전에도 이번과 비슷한 돌발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 유세 현장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전쟁 취재 경험은 총소리를 들어도 두려움에 떨거나 겁에 질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나를 단련해 주었다. 나는 유세에서 ‘팡, 팡’ 하는 총성을 듣는 순간 이것이 미국 역사에 기록돼야 할 중요한 사건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작업 모드’로 들어가 생각을 멈추고, 1000번 넘게 해온 대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총알이 날아올까 두렵진 않았나.

“사람들은 나에게 ‘겁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이에 ‘우리는 용감한 사람들이다’라고 답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총격 현장으로 다가간 것은 내가 사진기자라는, 그저 그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사진기자에겐 기회가 절대 두 번 오지 않는다. 바로 그때, 바로 그곳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트럼프가 총에 맞은) ‘그곳’에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사건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유세에서 총격이 있든 없든, 평범하고 지루한 집회였든 똑같이 촬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장면이 달라진다고 해서 사진이라는 작업이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진기자 모두는 총격이 일어난 연단으로 다가갔고 그저 최선을 다해 촬영했다. 우리 모두 꽤 잘해 낸 것 같다.”

-그 ‘한 번 온 기회’를 놓칠 수도 있나.

“당연하다. 내가 ‘10할 타자’는 아니지 않은가. 무수히 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거꾸로 특종 사진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오랜 기간 이런 상황을 겪었다는 축적된 경험이 총소리가 나자마자 곧바로 작업 모드에 들어갈 수 있는 데 도움이 됐다.”

-그 ‘한 장’은 어떤 카메라로, 어떻게 찍었나.

“내가 쓰는 카메라는 소니 α9 III(알파나인 스리)다. 두 대를 사용한다. 그중 하나엔 24-70㎜ 렌즈(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표준 줌렌즈)를, 다른 카메라엔 7년 된 70-200㎜ 렌즈(망원렌즈)를 달아 둔다. 나는 사건이 났을 때 무대 끝에 있었고 일단 망원렌즈로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달려오는 장면을 몇 장 찍었다. 이후 그들이 트럼프에게 근접하자마자 나도 그쪽으로 달려가서 24-70㎜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바꿨다. 당일 찍은 사진 중 95% 정도는 24-70㎜ 렌즈로 찍은 것이다.”

본지 오종찬 사진부장은 부치의 설명에 대해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상황에 맞춰 렌즈를 바꿀 시간이 없다. 사진기자는 중요한 현장엔 보통 다른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두 대를 메고 다닌다”고 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의 8월 5일자 표지 사진. 타임지는 에번 부치가 찍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을 표지로 선정하며 "역사적 중요성, 명료한 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긴장감 등 피격 사건의 모든 것이 이 이미지 하나에 다 들어가 있다"고 했다. /타임지 인스타그램

-사건 이후 어떤 반응을 들었나.

“사진 커뮤니티에 있는 이들에게 특히 많이 메시지를 받았다. 그들은 ‘(총격이 일어난) 끔찍한 한 주였지만 스틸(정지된) 사진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정지된 이미지 하나가 가진 힘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답장했다.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왔다.”

-동영상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진이 왜 더 강력한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다. 이 사건의 전말을 담은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아마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을 알겠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동영상은 정지한 프레임(frame)과 비교할 수가 없다. 정지한 프레임은 그 순간을 그대로 멈추게 하고 그것을 우리가 응시하게 한다. 나는 이런 매력 때문에 중학교 때 사진에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기 원한다’는 것이 사진을 시작한 첫날부터 지닌 목표였고, 지금도 이를 위해 노력한다. 후배들에게도 나는 늘 말한다. ‘당신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끼게 해야 한다’고.”(정지한 프레임이란 ‘멈춰진 순간’을 뜻하는 사진기자들의 용어다)

-사진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기꺼이 추가 근무를 하겠다는 자세와 의지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아무것도 안 하면서 오랜 시간을 그저 기다려야 할 때가 잦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순간이 오면 바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숙제’하듯이 사안에 대해 조사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사진에 개인적 편견이 개입되지 않도록, 공정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1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당시 에번 부치가 사용한 소니 'α9 III(알파나인 스리)' 카메라. /소니

부치가 찍은 사진으로 트럼프는 ‘총격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쌓았다고 평가받는다. 트럼프의 대선 구호인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이기도 해서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도 일조했다.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혹시 연락 왔나.

“안 왔다. 사실 내가 너무 바빠서 그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사건 후 어떤 일을 했나.

“지난 13일이 일생일대 사건이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사진기자에겐 ‘업무 종료’라는 것이 없다. 그다음 날 바로 공화당 전당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밀워키행(行) 비행기를 탔다. 이후 바로 미시간주로 이동해 트럼프와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의 첫 합동 유세를 취재했다. 어제는 워싱턴 DC로 돌아와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진 사퇴 이후 처음)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을 촬영해 송고했다. 백미러 볼 시간도 없이 직진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11월 대선까지 많은 일이 일어날 텐데, 그때까지는 ‘전력 질주’할 계획이다.”

-소셜미디어를 보니 (브라질 무술) 주짓수를 즐기는 것 같다.

“7년 정도 됐다. 주짓수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면 웃기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스트레스를 풀고 정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출구다. 이 운동을 하면 한없이 겸손해진다. 항상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오래 버티고, 더 많이 이겨내려 노력한다. 끔찍한 상황에 부닥치면 잠시 멈춰 서 숨을 고르고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타개할까 생각해야 하는데, 주짓수를 할 때도 항상 여러 수 앞을 내다보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보도 현장도 비슷하다. 총소리가 났을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요원들은 트럼프를 데리고 어디로 갈까’ 이런 판단을 해야 하는데, 주짓수는 나에게 압박감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할 일을 하는 법을 확실하게 가르쳐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4일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재선 도전을 포기한 배경과 임기말 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사진은 에번 부치가 찍어 송고한 것이다. /AP 연합뉴스

-총격 현장에 달려들면 가족이 걱정하지는 않나.

“아내는 이제 익숙한 편이다. 내가 예전에 전쟁을 취재할 때 두 딸은 매우 어렸기 때문에 총격 사건은 낯설었을 텐데, 아빠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이번 일로 사진 저널리즘의 중요성도 깨닫기 시작했다.”

-한국에 취재하러 온 적 있나.

“여행은 못 가봤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을 따라 일하러 간 적은 있다. 청와대를 기억한다. 한국 음식이 정말 맛있었고,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 ☞에번 부치

알고 보니 주짓수 선수 - 에번 부치의 취미는 주짓수다. 그가 자신이 딴 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미국을 대표하는 통신사인 AP의 워싱턴 지국 수석 사진기자로 현재 백악관을 비롯한 정치 분야 사진 취재를 맡고 있다. 1977년 메릴랜드주에서 태어났고, 뉴욕 로체스터 공대에서 사진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2003년 AP에 입사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현장을 20년 넘게 누볐다. 2020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숨진 뒤 벌어진 시위 현장을 취재한 사진으로 이듬해 권위 있는 저널리즘 상인 퓰리처상(사진 속보 부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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