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소장 42장 중 2장만 보여줘"… 현직 경찰도 두 손 든 경찰의 정보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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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차 경찰공무원 A씨가 최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일선 경찰관인 A씨는 혐의사실 중 개인정보 등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 일부만 가리고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A씨가 인권위와 권익위 진정서에 고소장 정보공개 열람 범위에 관한 수사관 직무 교육을 권고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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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비공개 처분 취소", 적법 범위 공개 취지
"피해자 신변 위협 없다면 피의자 방어권 보장"
"정보공개법을 숙지하고 있는 현직 경찰인 제게도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데, 다른 피고소인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18년 차 경찰공무원 A씨가 최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수사 경험이 있는 현직 경찰관마저도 피의자로서 기본적인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7월 이혼소송 중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아내에게 고소를 당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바로 다음 날 혐의사실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받은 자료는 A4 용지 42장에 달하는 고소장 중 단 2장 분량의 피고소인 인적정보와 혐의명, 고소요지뿐이었다. A씨는 "고소요지만으론 반박 증거와 의견서 준비가 어렵다"며 이의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결국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행정소송에 나선 끝에 승소했다.
정보공개 둘러싼 대립… 법원 "공개 가능"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서경민 판사는 A씨가 서울 양천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12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별지 목록 기재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관한 비공개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재판에서 정보공개청구의 정당성을 두고 A씨와 경찰서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다.
일선 경찰관인 A씨는 혐의사실 중 개인정보 등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 일부만 가리고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정보공개법도 공공기관이 작성하거나 취득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공익이나 개인의 권리 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비공개대상정보에서 제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개에 의해 보호되는 개인의 권리구제 등 이익은 비공개에 의해 보호되는 사생활의 비밀 등의 이익을 신중히 비교해 판단돼야 한다. 특히 A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피고소인 조사를 하면 3시간은 걸릴 거란 말을 듣고 변호할 내용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그는 "어떤 범죄 사실로 고소됐는지 적힌 고소장 일부는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양천서는 "피해자 진술권을 침해하고 당사자 대등 원칙에 비춰 맞지 않는다"며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에서 원고와 피고(형사사건의 경우 검사와 피고인) 등 소송당사자는 대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고소장의 상당 부분을 A씨에게 공개할 경우 A씨가 조사에 대비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정보 공개가 고소인 진술권을 침해하거나 당사자 대등 원칙에 반하는지 불분명하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고소장을 비공개한다고 해서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만한 사정도 없다고 봤다. 오히려 △업무수행의 공정성 △수사 절차의 투명성 확보 △피혐의자의 방어권 보장 등을 고려해 공개가 필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진정서를 접수했다. 인권위과 권익위 판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적법한 수사 절차 및 알권리 보장해야"
피해자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피의자의 최소한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보공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수사관들에게 숙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A씨가 인권위와 권익위 진정서에 고소장 정보공개 열람 범위에 관한 수사관 직무 교육을 권고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률사무소 율다함의 신수경 변호사는 "경찰이 사건 당사자보다 훨씬 우위인 지점에서 증거를 확보하고 수사를 진행하니 피의자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며 "정보공개의 범위가 일선 수사관의 재량에만 맡겨질 것이 아니라 지침에 따라 일관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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