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들이 집단지성으로 쓴 '한반도 기후재앙'의 모든 것

권영은 2024. 7. 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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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집현네트워크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
잦아진 폭우와 태풍… 기후변화 현실
기후변화는 어떻게 감염병 유행시키나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 압연라인 공장이 물에 잠겨 있다. 포항제철소는 당시 창립 이래 최초로 가동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포항제철소 제공

2년 전 여름, 서울의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이 숨졌다. 시간당 160㎜를 퍼부은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초래한 참변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태풍 힌남노가 동반한 집중호우로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에서 28명이 사망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재앙은 현실이다. 기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내 최고 과학자 37명이 한국 사례를 토대로 기후변화의 현주소를 총정리한 책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을 냈다. 한국 사례들이 주로 등장해 반가운 책이다.


최고 국내 연구진의 '한반도 기후변화' 진단

책은 집단지혜(집현·集賢)의 소산이다. 정확한 과학 지식 생산·유통을 위해 2022년 2월 과학자들이 설립한 비영리법인 '집현네트워크'가 온라인 플랫폼에 발표한 '집현문서' 20여 편을 새로 쓰거나 다듬어 책으로 묶었다. 참여한 과학자 37명의 면면은 '국내 최고'라는 표현이 결례가 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이라는 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귀띔이다.

기후변화 책 대부분이 기후 연구 분야에서 앞서 있는 해외 사례 위주인 것과 달리, 이 책은 저자들이 직접 모은 한국의 데이터와 사례가 중심이다. 최신 기후 연구 동향도 적극 반영돼 있다. 책은 2022년 8월 서울의 극단적인 집중호우에 주목한다. 기후학적으로 장마 휴지기에 서울 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집중호우가 내린 '기상 이변'이었다. 책은 지난 40년간 국내 집중호우 발생 현황 등을 통해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을 입증한다.

기온이 섭씨 1도 상승하면 대기 중 수증기량은 7% 증가한다. 온난한 기후에서 대기는 수증기를 더 오래 머금고 있다가 한꺼번에 떨어뜨려 폭우가 늘고 동시에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늘면서 가뭄이 함께 나타난다. 올여름처럼 폭염과 호우가 잇따라 나타나는 복합 이상기후도 한 예다.

태풍 힌남노도 마찬가지다. 태풍은 남북위 30도 이내 열대지역에서 강하게 발달하는 저기압인데, 힌남노는 그보다 상당히 높은 북위 25도선에서 발생했다. 온난화로 중위도의 바다 표면 온도가 크게 오르면 태풍이 많이 상륙하는 한반도와 일본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게 책의 경고다.

북극곰들이 2022년 8월 10일 북극의 해빙 위를 걷고 있다. 극지연구소 제공

해수면 상승 역시 남 일이 아니다. 한반도 주변 해수면은 전 지구 평균해수면 상승 속도보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같은 태풍에도 과거보다 침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해수면이 지금처럼 계속 상승한다면 2030년 인천공항이 침수되는 등 한국 국토의 5% 이상이 물에 잠기고 300만 명 이상이 직접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재앙' 새로운 바이러스 감염병 시대 온다

책은 전반부의 '기후 환경'과 후반부 '바이러스와 감염병'으로 크게 나뉜다. 기후변화와 감염병을 본격적으로 한데 다루려는 시도다. 기후재난과 보건재난은 인류가 마주한 가장 큰 위협으로, 순환하는 지구 안에서 연결된 재난이다.

한국 기후가 아열대화하면서 열대 바이러스 감염병 발생 가능성이 커지거나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려 얼음 밑에 감춰져 있던 이른바 '고대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다. 야생동물 서식지가 줄고 동물과 인간의 접촉이 늘면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발병하고, 바이러스는 개체 수가 줄어든 야생동물 대신 인간을 숙주로 삼게 된다.

첫 번째 기후과학 수업·집현네트워크 지음·발제 윤신영·위즈덤하우스 발행·464쪽·3만 원

감염병과 기후변화의 연결 고리는 과학자들이 더 탐구해야 할 영역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최신 연구 분야가 감염병이다. 김예지 위즈덤하우스 편집자는 "기후가 감염병 발생 패턴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극히 최근의 일로,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새로운 분야"라며 "인류 생존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두 가지 문제를 따로 보지 말고 연구해야 될 필요성을 보여준 것만으로 이 책은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 영향으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전보다 빈번히 발생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책은 "지구를 소중히 보존하며,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더 효과적인 대비책을 준비하는 것이 이성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온난화를 막을 방안으로 성층권에 햇빛 차단 물질을 뿌리거나 지구와 태양 사이에 반사경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부터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전환 등 이제는 상식이 된 대책까지 열거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 일으킨 기후변화는 결국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책임감을 갖는 것일 테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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