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다이아에 밀린 진짜 다이아… 추락하는 ‘보석의 왕’
원석 가격지수, 고점 대비 36% 하락… 올해 자산가격 상승 랠리서도 소외
실험실 인공 다이아 확산이 결정타… 가성비 높아 천연 다이아 수요 감소
주요 시장인 中 경기 침체도 한몫… 드비어스 등 공급 업체 감산 돌입
“생산 줄면 점차 가격 회복” 전망도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의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금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데 반해 다이아몬드 가격은 2년 전 고점 대비 36%나 내린 상태다.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 보석의 인기가 천연 다이아몬드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 종로의 한 귀금속 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혼수를 준비하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주고 다이아몬드 세트를 샀지만 최근에는 그렇게 돈을 쓰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며 “집값이 오르면서 내 집 마련에 돈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다이아몬드 매출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했다.
● 보석의 왕, 다이아몬드의 추락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다이아몬드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장기 투자 상품으로까지 여겨졌다. 전 세계 3분의 1을 생산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다이아몬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져 품귀 현상까지 예고됐다.
하지만 이후 다이아몬드 가격은 그런 전망이 무색할 만큼 추락했다. 올해 들어 전 세계 금융, 자산 시장은 이른바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였다. 글로벌 증시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화, 유가, 금·은 등 귀금속 가격을 비롯해 구리나 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까지 모두 올랐지만 다이아몬드는 예외였다. ‘보석의 왕’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가 빛을 잃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이아몬드는 오랜 시간 가장 가치 있는 보석 중 하나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신성한 보석으로 여겨졌고 중세 유럽에서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순수한 탄소 결정체로 지구상 가장 단단한 광물인 데다 빛을 굴절, 반사시키는 특성 때문에 미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유한 권력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다이아몬드는 20세기 중반 들어 대중화됐다.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 원석 유통업체인 영국 드비어스의 공이 컸다. 1947년 드비어스가 만든 다이아몬드 광고에 쓰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라는 카피가 결혼 적령기 청춘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후 다이아몬드는 결혼 필수품이자 프러포즈 최고의 선물이 됐고 영원한 약속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다이아몬드가 역사적으로 항상 밝게 빛났던 건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두고 아프리카의 주요 국가들이 내전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다. 비윤리적인 채굴 방식과 무분별한 광산 개발로 인한 비판도 쏟아졌다. 특히 다이아몬드 1캐럿을 채굴하는 데 물 500L와 6.5t에 달하는 지면을 깎아내야 한다는 것과 다량의 탄소가 발생한다는 점 때문에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도 거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20세기를 거쳐 21세기까지도 최고의 보석 자리를 유지했다. 드비어스 등 다이아몬드 원석 유통업체의 공급량 조절로 다이아몬드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가치가 우(右)상향하면서 투자 상품으로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생산 초기에는 주로 공업용으로 쓰였지만 기술 발전을 거듭하면서 2010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주얼리 시장에서도 주목받았다.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적, 광학적, 화학적 측면에서 100% 동일하지만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10∼20% 수준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한 미국 배우 메건 마클이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착용하면서 더 화제가 됐다.
높은 가성비에 젊은 소비층들이 반응하면서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얼라이드 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약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 수준에 그쳤던 글로벌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은 2022년에는 약 120억 달러(약 15조70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약 499억 달러(약 68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보석업계 관계자는 “다이아몬드 감정서가 없다면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차이를 분간하기 어렵다”며 “가성비를 중시하는 젊은층 위주로 천연 다이아몬드보다는 랩그론 다이아몬드에 대한 선호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주얼리 브랜드들도 앞다퉈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인 프레드가 랩그론 다이아몬드 컬렉션을 내놨고, 프라다도 지난해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주얼리 라인을 출시했다. 스와로브스키는 올해 4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 랩그론 다이아몬드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글로벌 최고의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는 투자회사를 앞세워 랩그론 생산업체인 루식스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 브랜드들도 하나둘씩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랜드의 주얼리 브랜드인 로이드는 2020년 국내 업계 최초로 랩그론 다이아몬드 주얼리 라인을 선보였다. 신세계나 롯데 등 국내 유통업체들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랩그론 다이아몬드 판매를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 350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랩그론 다이아몬드 시장은 2022년 500억 원대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700억 원대까지 급성장했다. 이랜드 로이드 관계자는 “랩그론 다이아몬드에 대한 고객의 긍정적인 인식이 계속 늘고 있고 생산 원가도 점차 낮아질 것”이라며 “랩그론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다양하고 화려한 주얼리 상품이 시장에서 더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주얼리 등 사치재에 대한 소비가 급격하게 줄었다. 중국의 인구 감소로 인해 결혼율이 줄어든 가운데 투자 목적으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던 사람들이 금 투자로 돌아선 것도 판매량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 시장 조사기관인 닥슈컨설팅은 “중국에서 금이나 랩그론 다이아몬드 등이 인기를 끌면서 천연 다이아몬드 수요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다이아몬드 브랜드인 아이두는 지난해 1월 파산 구조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홍콩에 본사를 둔 주얼리 업체인 룩북도 지난해 천연 다이아몬드 관련 도매사업 매출이 21.4% 줄었다.
다이아몬드 가격이 떨어지고 판매량이 줄면서 다이아몬드 생산국과 관련 기업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블룸버그 등은 최근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드비어스는 앞서 올해 다이아몬드 생산량을 10% 줄이겠다고 밝혔는데 추가 감산을 선언한 것이다. 올해 2분기(4∼6월) 생산량도 1년 전보다 15%가량 줄었다. 러시아의 경쟁업체인 알로사도 다이아몬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세계 2위 다이아몬드 생산국인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5.3% 감소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다이아몬드 시장 침체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생산량 감소와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시들해지면 가격 회복이 완만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드비어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알 쿡은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이 회복될 것”이라면서도 “수요가 갑작스럽게 뛰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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