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 초유의 2중 탄핵…위법 논란 속 대행 탄핵, 방통위 ‘0명 체제’
초유의 일이 초유의 빈도로 벌어진다. 한때 터부였던 탄핵이 거야(巨野)에 의해 일상이 됐다. 탄핵할만해서라기보다 탄핵할 힘이 있으니 하는 데까지 갔다. 대통령 부인을 대상으로 한 탄핵청원 청문회가 열리고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까지 탄핵하려 해 방통위원 0인 체제가 됐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대처는 초라하다. 출구 없는 무한정쟁이다.
━
방통위 초유의 ‘0명 체제’
이상인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겸 부위원장이 26일 오전 자진 사퇴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날 오후 이 대행에 대한 탄핵 표결 방침을 정하자 방통위 업무 마비를 막기 위해 선제 사퇴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동관, 이달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 사퇴로 이어진 ‘탄핵 발의→자진 사퇴’의 악순환에 방통위는 유례없는 ‘0인 체제’가 됐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인 상임위원(부위원장)의 사임을 재가했다”며 “방통위 부위원장 사임은 적법성 논란이 있는 야당의 탄핵안 발의에 따른 것으로, 방통위가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방송뿐만 아니라 IT(정보통신)·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야당의 행태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 대행은 “방통위가 정쟁의 큰 수렁에 빠져 있는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상임위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방통위원이 된 이 대행은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의 사퇴 후 직무대행을 맡아왔다.
이 대행이 사퇴하면서 방통위는 일시적으로 상임위원(정원 5명)이 한 명도 없게 됐다. 민주당에선 “진짜 방통위원이 한 명도 없는 ‘빵(0)통위’가 됐다”(조인철 의원)는 말이 나왔다.
이와 별도로 민주당 등 거야는 이날 국회에서 ‘방송 4법’ 가운데 하나인 방통위법을 일방 처리했다. 전날 오후 시작된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24시간 7분 만에 강제 종결한 후다.
민주당 탄핵→방통위장·대행 자진사퇴 7개월째 되풀이
이날의 이례적 상황은 ‘공영방송’을 둘러싼 여야 간 무한 정쟁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공영방송 수뇌부 교체에 들어가자, 민주당이 방통위원장 탄핵으로 교체를 지연시키고 방송 4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나서면서다.
이 과정에서 직무대행 탄핵이란 ‘변칙’적 상황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적법하다고 주장하지만 한 달 전 김현 민주당 의원이 탄핵 대상을 ‘방통위원장 또는 직무대행’으로 확대하는 방통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과 충돌된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대통령실은 이날 공지문에서 이 대행 직함을 ‘부위원장’으로 지칭했다.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행정 각부의 장(長)’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방통위 부위원장 탄핵 시도 등 일련의 과정은 대단히 무도한 (야당의) 입법 폭거”라며 “현행법상 부위원장은 탄핵 대상이 아니라는 걸 (민주당도) 아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이 대행의 탄핵까지 밀어붙인 걸 두고, MBC 경영진 선임 권한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구성이 임박해서라는 관측이다. 민주당의 심리 상태는 이진숙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도 드러났다. 장관급 후보자로선 이례적으로 사흘간(24~26일) 청문회를 해 “체력 검증으로 변질됐다”(최형두 국민의힘 의원)는 말이 나왔는데 현안질의 명목으로 이 후보자를 증인 채택, 내달 2일 다시 국회로 부른다. ‘인사청문회를 3일 이내’ 하도록 규정한 인사청문회법과 사실상 배치되는 의결이다. “이 후보자를 들들 볶는다”(박정훈 국민의힘 의원)란 반발이 나올 정도다.
이 후보자와 민주당 의원들은 강하게 충돌했다. 이 후보자가 MBC 노조 관련 질문에 “어제 어떤 위원께서 왜 민노총 조합원이 MBC의 80~90%를 차지하느냐(고 질문했다)”며 “뭔가 공정하고 정의롭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사실상 힘에 의한 지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민주당 소속 최민희 위원장이 “어제 그렇게 물은 게 저(어떤 위원)”라며 “정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합원 89%가 되는 것이다. 사내 일에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후보자의 뇌 구조에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제 뇌 구조에 대해 말한 부분에 사과를 원한다”고 항의했고, 최 위원장은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