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명 뒤섞인 티몬 '환불런 대란'…"압사당할라" 비명도
‘티메프 사태’ 일파만파
이날 밤사이 티몬 본사 입구에는 환불을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들었다. 본사 건물 지하는 물론이고 입구부터 옆 블록 골목까지 대기줄이 길게 이어졌다. 아침이 되자 지친 시민들은 양산을 펼쳐 든 채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열기를 식히기도 했다. 이미 환불 작성표를 적은 이들도 실제 입금이 될 때까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지하 현장에서 대기했다.
전날 밤 이곳에 와서 700번대 대기표를 받았다는 박모(46)씨는 “뉴스를 보자마자 송파구 집에서 당장 뛰어왔다”며 “환불 가능 여부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 좀처럼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티몬에서 300여만원짜리 여행 상품을 결제했는데, 결혼기념일 여행을 위해 4년간 조금씩 모은 돈이라 충격이 더 컸다고 했다.
박씨처럼 현장을 떠나면 혹시라도 환불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신이 쌓이면서 대기 인파는 점점 불어만 갔다.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에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데려온 가족도 보였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왔다”는 최모(51)씨는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친구도 여기 같이 와있다. 9월에 출발하는 여행권이 500만원짜리라 둘이 1000만원을 손해 볼 수 있어 일단 줄을 서고는 있는데 주변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인파가 몰리면서 현장에선 크고 작은 소동도 벌어졌다. 환불 명부를 수기로 적는 종이를 배부하는 과정에서 먼저 받으려던 시민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닥에는 찢어진 종이가 흩날렸고, 수기 명부를 받지 못한 이들은 임시방편으로 가져온 종이에 피해 금액과 대기 번호를 적었다. 수기 명부를 접수하는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곳곳에서 “밀지 마” “압사당하겠어요”라는 비명도 터져 나왔다.
앞서 티몬 측 권도완 운영사업본부장은 이날 0시40분쯤 본사에 몰려온 피해자들에게 “성수기 여행상품 중심으로 환불을 진행하겠다”며 “30억~40억원의 환불 자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전 2시쯤부터 피해자들이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대기표에 따라 환불 신청 접수가 시작됐고, 오전 7시쯤엔 일부 피해자들이 현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와”라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현장에서 환불 대기 번호를 받은 이들만 2000명이 넘었다. 환불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계속 몰려들어 오후엔 2500명을 넘어서자 경찰도 폴리스라인을 치고 이면도로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등 질서 유지에 나섰다.
한편 위메프는 이날 오전 5시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본사에서 진행해 오던 현장 환불 접수를 중단했다. 전날 새벽부터 2000명 이상에게 현장 환불을 진행했지만 본사로 인파가 계속 몰리자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온라인 접수로 창구를 단일화한 것이다. 이에 본사를 찾은 고객 100여 명이 현장 환불 접수 중단 소식을 듣고는 “오늘부터 돈이 없는 것 아니냐” “사장 나와라” 등 고함을 치며 거세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메프에서 180만원 상당의 호주 여행 패키지를 구매한 김모(31)씨도 현장에서 12시간가량 대기한 끝에 현장 환불 접수가 중단되기 직전 가까스로 환불을 받았다. 전날 오후 위메프 측은 본사를 찾은 피해자들에게 QR코드를 통해 정보를 제출하면 환불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사측은 변명을 되풀이하며 환불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고 한다.
김씨는 “정산 처리 직원이 한 명뿐인데 재택근무 중이다, 갑자기 직원과 연락이 두절됐다, 현장에서 환불받았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등 믿을 수 없는 얘기만 계속 늘어놨다”며 “고성이 오가면 소수에게 금액을 돌려주고, 잠잠해지면 또다시 환불을 중단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러면서 “상당수의 피해자가 수백만원대의 여행 상품을 결제한 사람들이었다”며 “환불도 환불이지만 말 바꾸기를 거듭하는 회사 측 대응이 더 어이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혜연·오유진·박종서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