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확 달라진 트럼프, 공화당 주인 자리 꿰찼다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공화당 전당대회로 본 트럼프
지난 18일 막을 내린 밀워키 전당대회에서 세 번째로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의 면모는 2016년 처음 대선 후보로 뽑힌 클리블랜드 전당대회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트럼프는 더 이상 8년 전의 정치 초년생이 아니었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축출하면서 당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정치 베테랑이었다. 트럼프는 완벽한 공화당의 주인이 되었다. 필자는 밀워키에서 그것을 보았다.
8년 전 클리블랜드 전당대회는 당의 단결 측면에서 엉망이었다. 오랫동안 공화당을 지켜온 당내 주류들이 끝까지 트럼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내 주류파들이 트럼프의 선출을 막기 위해 주류파 후보단일화를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예비경선에서 우위를 달린 트럼프가 격렬하게 저항하는 등 첫날부터 격한 갈등과 대립 속에 불안하게 치러졌다. 트럼프에겐 외롭고 초라한 전당대회였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의 환호보다 그것을 반대하는 당내의 반대 시위가 더 컸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팀을 구성한 면면들은 정상적인 정치권내에선 인정할 수 없는 탈법의 브로커들이 전부였다. 결국 전당대회에서 트럼프의 찬조연설자로는 가족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그해 대선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라기보다는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패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미국의 전당대회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정강정책(플랫폼)이다. 당내 정강정책위원회(플랫폼 위원회)에서 강령을 만들고 초안을 작성하고 대선후보 캠프와 함께 심의하고 조정해 전당대회에서 공식 발표한다. 종종 위원회와 캠프의 입장이 달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정강정책에는 집권 후 시행할 각 분야의 정책 방향이 망라되어 있다. 경제, 외교, 안보, 이민, 복지, 조세, 교육, 교역, 환경, 인권, 에너지 등 분야별로 매우 세부적이고 구체적이다.
2016년 트럼프 캠프는 선거운동 하기에도 버거웠고 강령이나 정책을 개발할 만한 인력이나 전문성이 없었다. 당의 후보로 지명은 되었지만 정강정책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집권 내내 당의 고문들에 의해 계속해서 방향이 바뀌었고 의회로부터 거절당했다. 수시로 사람을 바꾸어야 했고 성과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2024년 밀워키 전당대회는 달랐다. 트럼프와 그의 팀은 정강을 만드는 과정에서 플랫폼 위원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논쟁을 억누르는 등 강한 압박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의 공화당 플랫폼과는 다른 정강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전당대회 시작 전 밀워키에 도착한 플랫폼 위원들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그들 손에는 트럼프 팀이 작성한 정강의 사본이 건네졌고 몇 시간 만에 찬성 84, 반대 18로 정강정책을 통과시켰다. 그제서야 위원들은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새로운 정강정책은 낙태에 관한 표현을 완화하고, 동성애 전환 치료에 관한 예전부터의 표현들을 삭제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 거의 8조 달러 증가한 국가 부채를 줄이는 것에 관한 섹션도 삭제했다.
전당대회에 쏠리는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지명이다. 트럼프는 전당대회 첫날 J D 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다음 달이면 40세가 되는 사상 최연소 부통령 후보다. 예상은 됐지만 이제 막 정치권에 입문한 정치 신인을 지명한 건 파격이다. 밴스는 미 해병대에 지원해 이라크전에 참전한 뒤 예일대 법대에 들어갔다. 쇠락한 공업지대의 가난한 철강 노동자의 집안에서 성장한 밴스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2016년 발간한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다.
트럼프가 선거 자금에 굶주렸던 올해 초, 피터 틸은 달러를 가득 실은 전용기에 밴스를 태우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를 만났다. 언론에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밴스가 거명되기 시작한 건 이 때부터다. 밴스는 대안 우파와 국가보수주의 운동을 결합시키는 MAGA운동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서약하고 트럼프의 낙점을 받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밴스는 트럼프가 교주인 MAGA교를 자유주의자들(liberal)에게 지옥 같은 창조물로 만들어 낼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그가 진정한 MAGA운동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밴스가 자신을 이어갈 차기 권력이란 의미다. 트럼프는 지식인들이 점유해 온 미국의 주류를 무너뜨리고 워싱턴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밴스의 등장은 오랜 기간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있다.
사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은 마이크 펜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데 힘입은 바 크다. 우파 기독교도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던 트럼프는 독실한 보수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펜스를 지명함으로써 경합주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제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트펌프와 부통령 펜스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트럼프식 정치를 견뎌내지 못한 펜스는 급기야 임기 마지막에 트럼프를 떠났다. 부통령 후보 지명에서도 트럼프는 8년 전과 다른 모습이다. 러닝메이트는 후보를 보완하는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비전과 철학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임을 트럼프는 알아차렸다. 밴스를 지명한 배경이다.
전당대회는 당의 동력을 총결집해서 본격적인 선거 캠페인을 시작하는 행사다. 전당대회의 단결된 모습을 보고 11월 본선거의 승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24년 공화당은 밀워키 전당대회를 통해서 주인이 바뀌었음을 알렸다. 트럼프는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정당, 그래서 ‘GOP(Grand Old Party)’라고도 불리는 공화당의 완벽한 주인이 되었다. 그런 트럼프를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우파 성향의 대중들이 열광적으로 따르고 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