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여름 편지
“그곳의 아이들은/한번 울기 시작하면//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박준 시인의 시 ‘장마’에는 ‘태백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연인의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아침부터 취해 있는 사내들, 석탄재로 뒤덮인 길이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 갱도에서 숨진 광부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주로/질식사나 아사가 아니라/터져 나온 수맥에 익사를 합니다”라고 적던 그는 그러나 곧 종이를 구겨버리고 새 편지지를 꺼냅니다. 그리하여 이 시는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라고 끝나게 되지요.
시적 화자는 왜 연인에게 탄광촌의 참혹함을 말하려다 그만둔 걸까요?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까지 세상의 그늘을 드리우고 싶지 않고, 희망만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는 또 다른 여름 편지가 있습니다.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메밀국수’의 첫 연은 이렇습니다. “분지의 여름밤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밤이 되어도 화기(火氣)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아 저녁밥을 안치는 대신 메밀국수를 사 먹고 돌아왔습니다.” 화자는 인근의 오래된 막국숫집, 연신 부채질하며 저녁을 먹었는지 물어보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 적습니다. “주말에 큰비가 온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은 그 전까지 배추 파종을 마칠 것입니다 겨울이면 그 흰 배추로 만두소를 만들 것이고요.”
여름의 절정에서 겨울을 당겨 생각하는 건 잠시나마 더위를 잊기 위해서겠죠. 장마는 끝물에 다다랐고, 폭서와 열대야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의 한 자락을 그려 보며 조금이나마 덜 덥고 무탈한 주말 보내시길 빕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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