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민감 '코스피' 장기투자보다 분산투자를

2024. 7. 2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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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신항 터미널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 [뉴시스]
유튜브에 출연하거나 투자자를 만나면 “한국 주식시장 어떻게 보세요”라는 질문을 듣곤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똑같다. 질문을 한 사람은 힘이 빠질 수 있겠지만, 내 대답은 “값이 아주 쌀 때 사면 좋은 시장입니다”이다. 증권사 리서치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국민연금 등 다양한 운용기관에서 운용역 생활을 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싼값에 사서 비싸게 팔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는지 살펴보자.

한때 증시에서는 장기투자 바람이 분 적이 있다. 물론 가치주를 발굴해 장기투자하는 것은 투자의 기본이기는 하다. 그런데 과연 이게 한국시장에서도 들어맞을까. 코스피지수의 역사적인 수익률 분포를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1982년부터 한국 주식의 연 환산 복리 수익률은 7.36%다. 그런데 연간 기준으로 가장 자주 출현하는 수익률은 -10%에서 0%다. 수익률 -10~0%의 출현 빈도가 21.4%이니 대략 5년에 한 번꼴이다. 10년간 장기투자한다면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할 확률이 45.2%에 이른다. 즉, 10년에 4~5년 정도는 마이너스 성과를 각오해야 하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손실 확률이 45.2%인데, 어떻게 연 환산 복리 수익률이 7.36%가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로 10년에 한 번꼴로 강력한 상승장이 출현하는 데 있다. 1984년이나 1999년처럼, 연 100%에 가까운 수익을 기록하는 시장이 출현하면서 10년간의 연평균 성과를 올려준 것이다. 당장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 때 코스피지수는 1450에서 3300으로 급등했다. 급등하는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1984년에는 이른바 3저(低, 저금리·저환율·저유가) 호황이 출현했고, 1999년은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 덕에 외환위기 탈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영향을 받았다.

2020년에 나타난 급등세는 미국이 주도한 초(超)저금리 정책 시행, 그리고 2023년부터의 강세장은 인공지능 붐이 불며 반도체 경기가 빠르게 회복된 덕분이라 하겠다. 주가가 급등한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국 내부의 사정이 아닌 외부의 사정 즉, 외부 환경에 의해 한국 증시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한국 증시는 수출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내수보다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보니 국내의 경제 상황보다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한국의 수출 대상국 경제 상황에 따라 증시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수출 대상국들의 경제 상황이 좋아서 수출이 늘면 당연히 주가는 오르고, 그 반대이면 내린다. 이는 그동안의 수출·코스피 등락 그래프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2017년, 그리고 2021년 모두 수출이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고, 그 전후로 코스피도 전고점을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였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한국 증시에 상장된 많은 기업이 역시 수출로 먹고사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기업의 이익이 한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0% 정도다.

코스피200 종목 기준으로 2022년 수출주의 영업이익 비중은 79%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호황일 때 주식에 투자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주식 투자에 실패하는 걸까. 수출은 기업이나 정부가 제어하기 힘든 면이 크기 때문이다. 가령, 기업들은 더 많은 제품 수출을 위해 더 뛰어난,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만으로 수출이 증가하진 않는다. 예컨대 반도체만 해도 업계 생태계가 변화할 때마다 수요가 늘어나 주는 변동성이 큰 편이다. 수출이 늘었다고 해도 시장 가격이 내려가면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이익은 줄어들게 된다. 기업이나 정부가 나섰다고 해도 외부 변수가 너무 많은 게 수출시장인 것이다. 한 마디로 수출시장은 예측이 쉽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가을이다. 지난해에만 해도 그동안 한국 수출의 주력 상품이었던 반도체와 자동차의 수출 실적은 수요 감소로 바닥을 맴돌았다. 이때만 해도 반도체·자동차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보는 경제인이나 연구기관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되면서 금융시장은 새파랗게 질렸고, 한국의 수출도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많았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많은 기관이 이를 바탕으로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경제인들이 한국의 수출 전망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약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반도체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올해 들어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증가 폭이 더 가팔라졌다. 7월 들어 20일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67억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57.5% 증가했다(관세청, 통관기준 잠정치). 이 덕에 같은 기간 전체 수출액도 전년보다 18.8% 증가한 371억7000만 달러(약 51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전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다행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면서 미국과 일본, 유럽의 주가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을 예측하는 일은 사실 ‘홀짝게임’과 비슷하다. 수출을 제대로 전망하지 못하는데, 수출보다 먼저 움직이는 주식시장의 방향을 맞추는 것은 신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주식 가격이 폭락한 다음 외부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버티는 일 또한 대단히 큰 인내심을 요구한다. 주변에서 “왜 한국 주식 같은 곳에 투자하냐”는 비아냥 섞인 질문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수출에 기댄 한국 증시는 변동성이 큰 시장이다. 변동성에 대응하려면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 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주식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자산, 이를테면 금이나 미국 국채 같은 자산에 일정 부분을 배분하면 급박한 위기 국면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자산을 지키거나 늘려갈 수 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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