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살에 첫 선화공주 역 맡은 여성국극 명인
오늘까지 이틀간 세종문화회관서 제자들과 ‘조 도깨비 영숙’ 공연
“일단 무대에 서면 온 힘과 정열을 다하지. 관객과 호흡하며 무대를 온통 휘젓고 다니는 게 체질이야. 박수가 안 나오면 몸이 근질거려서 못 견디거든.”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만난 여성 국극 명인 조영숙(90)씨가 “난 무대에서 제대로 못 하면 병이 나 버린다”며 웃었다.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 최전성기를 누렸던 여성 국극 1세대, 코믹한 감초 조연 역할로 큰 인기를 누리던 시절 별명이 ‘영원한 싼마이(일본 가부키의 조연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온 은어)’였다.
조 명인이 27~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조 도깨비 영숙’ 무대에 선다. 21세기 관객과 호흡하며 여성 국극 전성기의 화려한 매력을 재해석해 선보이는 자리. 어어부 프로젝트와 이날치의 베이시스트 장영규 등이 연출로 참여하는 공연계 신구 협업 프로젝트. 조 명인은 제자 4명, 악사 3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국극 ‘선화공주’의 왕부터 서동과 선화공주를 포함해 1인 5역을 소화한다.
“1953년 봄 전쟁통에 ‘선화공주’를 처음 공연했지. 그때도 난 코믹한 조연, 서동의 친구 철쇠 역할을 했어. 내가 ‘니 주제에 무슨 공주냐. 감자나 구워 먹자’ 이런 대사를 하면 객석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지.” 조 명인은 당대 여성 국극 최고 스타였던 임춘앵(1923~1975)의 애제자. “어느 날 갑자기 날 부르시더니 ‘야야, 오늘은 네가 좀 해야겄다’ 하시더라고. 대역이지만 처음으로 서동 역을 완전히 연기했던 그날 뿌듯함은 지금도 생생해요.”
공연 제목의 ‘도깨비’는 그가 원산사범학교 다니던 시절부터의 별명. 어머니는 악극단으로 떠돌던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그를 사범학교에 보냈지만, 조 명인은 학교에서도 공부뿐 아니라 노래와 무용, 연극과 운동에도 재능을 보여 이 별명을 얻었다.
“국극은 전쟁에 가난에 고단했던 그 시절 사람들에게 최고의 위로였어요. 품격 있고 화려했던 우리 국극의 전성기 모습, 관객 분들께 생생히 보여드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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