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이제 그만, 정신 차려 이 친구야"…작은 거인의 절규

박정호 2024. 7. 2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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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의 가요 앨범 ‘너는 어디에’ 낸 김수철
작은 거인’김수철은 전방위 뮤지션이다. 지난 반세기 가요부터 국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갔다. 그가 생각하는 음악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이 시대 사람들의 고락과 함께하는 것이다. 박종근 기자
‘가수’ 김수철(66)이 돌아왔다. 지난 30여 년 노래보다 국악에 집중했던 ‘작은 거인’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가수’로 돌아왔다. 그의 새 앨범 ‘너는 어디에’는 1991년 ‘난 어디로’ 이후 33년 만에 낸 ‘가요’앨범(음원 31일 공개)이다. 그런데 그는 좀 화가 나 있다. 절규하듯 목청을 돋운다.

펑키 스타일의 ‘그만해’를 들어보자. 다짜고짜 ‘아, 왜 또 싸우는 거니/ 뭐가 또 불만이야/ 지쳤다 그만해라’로 시작한다. ‘내가 말했잖아 정신 차려 이 친구야’를 반복하다가 ‘그만해!’를 외치며 끝낸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귀에 익숙하다. 그가 1989년 발표한 ‘정신 차려’ 바로 그 노래다. ‘왜 잡으려고 하니/ 왜 가지려고 하니/(…)/ 아 여보게 정신 차려/이 친구야’에 맞춰 마치 체조하듯 무대를 엉거주춤 걸어 다니고, 객석을 향해 오른팔을 쑥 내밀었던 ‘댄스가수’ 김수철의 출현을 알렸던 곡이다.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한 노래였다.

데뷔 47년 ‘별리’‘나도야 간다’ 등 숱한 명곡
김수철이 33년 만에 발표한 가요 앨범 표지.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지구를 지키는 형형색색의 우주 에너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Q : 35년 만에 다시 ‘정신 차려’다.
A : “그때보다 사람들 욕심이 더 커진 것 같다. 나누기는커녕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으르렁댄다. 양보와 타협, 대화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양식과 상식이 통했다. 상대를 인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 아니면 모두 적으로 몰아간다. 대립과 충돌의 연속이다.”

Q : 현실 정치판을 꼬집는 건가.
A :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든, 경제든, 국제관계든 세상이 갈수록 사나워지고 있다. 사는 게 더 힘들어졌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이상기후 또한 해마다 거세지고 있다. 빈부 격차, 사회 양극화도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들려오는 소식은 싸움뿐이다.”

Q : 60대 중반 어른의 고언인가.
A : “아니다. 나이만 들었지 나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다만 돈 자랑 일삼는 사람들이 거슬린다. 함께 살아가려는 모습이 잘 띄지 않는다.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말뿐이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서민들 생활이 더 팍팍해지는 게 아닐까.”

Q :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 : “오늘을 열심히 살고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내 음악인생이 그랬다. 하루하루 쉬지 않고 연습하고, 곡을 만들어왔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은 어렵고 힘겨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혹시 아나, 권력자들이 이번 노래를 듣고 마음을 고쳐먹을지…. 푸하하하”
김수철의 새 앨범은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세트 같다. 타이틀 곡으로 실린 발라드 ‘너는 어디에’는 33년 전 ‘난 어디로’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우리 어렸을 땐 그렇게 살았지/ 서로를 안고 다독거렸지/(…)/ 그 시절로 돌아가고파/ 너는 나에게서 나는 너에게서/ 서로에게서 태어났잖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에서 주연 설경구가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장면마저 떠오른다. 세상 물정에 물들기 이전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김수철은 각박한 이 시대를 헤쳐가는 실마리를 나무에서 찾는다. 발라드 ‘나무’에서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또 아낌없이 다 주어도 바라는 것이 없네/(…)/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나타나서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씻겨줬어’라고 노래한다.

Q : 베스트셀러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A : “평소 나무를 좋아한다. 길을 걷든, 운전하든 나무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보러 수목원에도 종종 간다. 꽃이 화려하긴 하지만 나무의 감동에는 비할 수 없다. 나무의 참사랑을 닮고 싶다.”

Q : 나이가 들며 자연이 좋아진 걸까.
A : “젊어선 나무의 소중함을 몰랐다. 지금은 그 고마움을 절실하게 느낀다. 나무를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라며 얘기도 건다. 나무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안아준다.”

Q : 나무를 ‘빛’에 견주었다.
A : “나무는 예수를 닮았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는가.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부처의 자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Q : 록음악 ‘아자자’도 흥겹다. 이 시대 청춘을 향한 응원가 같다. 히트곡 ‘젊은 그대’(1984)의 21세기 버전인가.
A : “어디 젊은이뿐일까. 지금 지쳐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픈 너를 여기서 꺼내 줄게. 힘들어도 가보자. 될 때까지’라고 노래했다. 3분짜리 축약본과 10분짜리 원곡 ‘야야아자자’를 함께 실었다. 앞길이 험난해도 절대 쓰러지지 않았으면 한다.”
지난해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박종근 기자
데뷔 47년차 김수철의 전성기는 1980년대였다. 1977년 대학 1학년 때 선보인 ‘내일’을 시작으로 ‘일곱 빛깔 무지개’ ‘별리’ ‘못다 핀 꽃 한 송이’ ‘왜 모르시나’ ‘나도야 간다’ 등 숱한 명곡을 냈다. 1984년 KBS 가요대상을 거머쥐었고, 영화 ‘서편제’(1993) OST도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팔만대장경’(1998) 등 국악의 대중화를 화두로 노래보다 작곡에 전념해 왔다. 가요로 번 돈을 국악 창작에 쏟아부으며 한때 빚더미에도 올랐지만 “지금은 이제 겨우 빚 없이 먹고살 정도가 됐다”고 한다.

Q : 다시 가수로 뛰는 건가.
A : “국악 현대화라는 큰 목표는 변함이 없다. 다만 더 나이가 들면 노래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난 10여년간 짬짬이 만들어온 곡을 이번에 가다듬었다. 사실 ‘서편제’ 이후 여태껏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없다.”
외국에도 ‘국악의 맛’계속 알릴 것

Q : 이번에는 성공을 예감하나.
A : “그럴 가능성은 작다. 그간 다소 소원해졌던 대중에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나는 가창력이 빼어난 가수가 아니다. 하지만 곡을 만들 때의 느낌과 심정을 충실하게 담아내려고 한다.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도 가수가 꿈이 아니었다. 작곡·연주가 먼저였다.”

Q : 작사·작곡·편곡·연주·노래 ‘1인 5역’이다.
A : “특별히 계획을 세워서 곡을 만들지 않는다. 국악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노래를 빚었다. 가사도 대부분 일기장에서 따온 것이다. 그때그때의 생각과 느낌을 적어놓는다.”

Q : 매일 일기를 쓰나.
A :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림일기를 쓴다. 일상의 감정을 그림으로 먼저 표현하고 그에 대한 단상을 글로 남긴다. 30년가량 해왔더니 제법 분량이 쌓였다.”

Q : 이번 앨범을 혼자 만들었다.
A : “35년 전 ‘정신 차려’에서 처음 시도한 ‘원맨 밴드’ 개념이다. 드럼·베이스·건반·기타·노래 등을 도맡았다. 왜,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고 하지 않나. 한 악기 녹음하고, 그 위에 다시 악기를 입히고, 한 곡 완성하는 데 7~8단계가 필요하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돈이 많지 않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푸하하하.”

Q : 앨범 표지도 직접 그렸는데.
A : “우주에서 날아온 여러 친구를 빨강·파랑·노랑 형형색색으로 표현했다. 지구는 우주에서 보면 아주 작은 별이다. 우주에 가득한 에너지가 지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 앨범 끝에 ‘기타산조’를 넣었다
A : “1986년 아시안게임에 처음 발표한 이후 ‘기타산조’를 계속 발전시켜 왔다. 이번에는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했다. 우리 청소년에게 국악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Q : 지난해 10월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한 획을 그었다,
A : “벼르고 별렀던 ‘꿈의 무대’였다. 지난해 KBS 송년 무대로도 재연했다. 이젠 해외로 나가려고 한다. 여기저기를 타진하고 있다. 희망적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지구촌을 매혹시켰지만 정작 우리 전통문화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Q : 지난해 공연서 환경미화원·소방관·우체부 등을 무료 초청했다.
A :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고마운 분들이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서도 환경미화원·소방관 등은 두꺼운 옷을 벗지 못한다. 그들의 땀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어느덧 70대를 바라보는 나이, 김수철은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을 이렇게 매조진다. ‘어느새 저 멀리서 나를 보고 험한 세상 살리는 건/사랑 사랑뿐이란다/ 달려~.’(신곡 ‘휙’)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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