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쓰레기 시간
문제가 된 건 가비지 타임 앞에 ‘역사’를 수식어로 붙인 ‘역사의 쓰레기 시간(歷史的垃圾時間)’이란 말이 퍼져서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후원후이(胡文輝) 광저우 양성만보 편집자는 지난해 9월 소셜미디어(SNS)에 “소련 브레즈네프 시대를 다룬 글을 읽고 ‘역사의 쓰레기 시간’이란 용어가 떠올랐다”고 썼다. 그는 “1979년 브레즈네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신 차르 제국을 수렁에 빠뜨렸다”며 “이때부터 1991년 소련 멸망까지를 ‘소련의 쓰레기 시간’으로 불러도 무방하다”고 했다. 그는 중국 역사에서도 황소(黄巢)의 난 이후의 당(唐) 제국, 1630년 명(明)의 명장 원숭환(袁崇焕)을 숭정제가 처형한 뒤 1644년 멸망까지의 시기를 ‘역사의 쓰레기 시간’에 비유했다.
‘쓰레기 시간’은 진화했다. 오스트리아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제시한 논리와 일맥상통한다면서다. 중국 SNS에 “역사가 경제 규율을 벗어나면 개인은 바꿀 힘이 없고, 필연적으로 실패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글이 등장했다. 경제 인플루언서들은 “가비지 타임에는 절대 투자하면 안 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탕핑(躺平)’이 유일한 출로”라며 거들었다.
낙관적인 경제광명론을 외치던 당국은 반박에 나섰다. 관영 북경일보가 지난 11일 “중국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경시하는 언사”라며 유해성을 부각했다. 왕원(王文) 인민대학 충양(重陽) 금융연구원 원장은 지난 8일 기고문에서 “역사의 쓰레기 시간이란 거짓 학술 용어는 탕핑론보다 더 위험하다”고 성토했다. 다만 “국민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경제 하강기의 사회적 심리를 반영했다”며 “개혁에 버리는 시간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분발을 촉구했다.
로이터·가디언 등도 ‘가비지 타임’ 논란에 주목했다. 경제 주체의 신뢰를 되살릴 당의 비공개회의와 논란이 겹친 점도 지적했다. 중국 당국이 불길한 꼬리표를 어떻게 떼어낼지 주목된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