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위로 주는 야생의 어머니

주정완 2024. 7. 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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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의 구원
빅토리아 베넷 지음
김명남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야생 식물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바람에 날려 흩어진 야생 식물의 씨앗은 어느새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잎사귀와 형형색색의 꽃잎을 피워낸다. 이름조차 낯선 식물들이 아무리 험난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인간도 자연스럽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계절의 순환과 함께 드러나는 식물의 경이로운 생태는 마음속 상처로 괴로워하는 인간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시골의 공공 임대주택에 살면서 난치병에 걸린 아들을 돌보는 중년의 엄마다. 임대주택 단지 한쪽에 작은 정원을 가꾸면서 느꼈던 감상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수십 편의 짧은 수필에 담았다. 사실 가난한 살림살이에 한 조각 땅도 갖지 못한 저자가 정원을 가꾼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으로 치면 입주자 대표회의 같은 곳에선 처음부터 저자의 정원 조성에 반대하며 불응하면 임대주택에서 나가야 한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의 끈질긴 노력과 설득으로 간신히 허락을 받아냈다.

책을 펼치면 다양한 식물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생활비도 넉넉지 않은 저자에겐 비싼 식물의 모종이나 씨앗을 살 돈이 별로 없었다. 대신 저자가 눈을 돌린 건 들판에서 자라는 야생 식물이다. 그는 각 식물의 이름과 특성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자신의 정원에 정성껏 옮겨 심는다. 저자는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행복의 봉우리란 없고, 성취해야 할 완벽한 삶도 없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어지럽고 끔찍하고 아름다운 삶뿐이며, 나는 이 삶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정원을 가꾸는 건 단순히 아름다운 꽃이나 식물을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상처를 견디고 살아갈 힘을 되찾는 ‘힐링(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발음이 서툰 아들은 정원에 뿌리는 거름을 사랑이라고 부르며 엄마의 작업을 돕는다. 저자는 “우리 위에 마도요가 울고, 삼월의 구름이 언덕 가까이 모인다. 나는 여기에 서 있다.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가 곁에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야생 식물을 가리키는 ‘야생의 어머니’란 표현은 이 책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은 말이다. 영어 원제는 ‘All My Wild Mothers.’ 우리말로 옮기면 ‘내 모든 야생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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