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수퍼사이클이라지만…중소 조선사는 ‘인력·중국·자금’ 3중고
조선업계 양극화 심화
# 한때 세계 조선업계 8위였던 HSG성동조선은 선박 수주를 사실상 중단했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여서 RG를 발급받기 어렵고, 신규 수주를 한다고 해도 건조할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대신 남은 인력으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스텍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공유수면 사용료가 치솟는 등 조선업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주변의 중소 업체들도 수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등 탈출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 R&D 지원 등 조선업 육성
연이은 수주 잭팟으로 ‘수퍼사이클’(장기 호황)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조선업계에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대형 업체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반면, 중소 업체는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전 세계 선박 수요가 친환경 선박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되고 있는 데다 인력난, 중국 업체의 시장 잠식 등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 업체들은 여전히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중형 조선산업 2023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중형선박 시장에서 국내 중소 업체의 점유율은 1.8%로, 2021년 반짝한 이후 줄곧 하락세다. 지난해 국내 중형선박 수주량은 144만CGT(표준선 환산톤수·66척)로 전년 대비 15.5%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과거 조선업 호황 당시 30여 개에 달했던 중견 업체는 현재 HJ중공업·대선조선·케이조선(전 STX조선해양)·대한조선 4곳 정도만 남았다.
2010년대 시작된 조선업계의 불황 이후 중소 업체의 인력 대부분이 대형 업체로 넘어갔는데, 이후 신규 인력 공급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부산에 위치한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시장이 호황이라 신규 발주 물량이 꾸준하지만 누적된 적자와 인력 문제에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학과 교수는 “수퍼사이클이지만 대부분의 일감이 대형 업체에 몰리다 보니 중소 업체는 추가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소 업체들은 대부분 협력업체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감이 준 중소 업체의 신용등급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이로 인해 수주 계약 때 필요한 RG까지 막히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조선업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선업은 국가 기간산업이자 안보와도 직결되는 만큼 제작금융(선박 제작에서 인도 때까지 드는 자금 대출) 등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얘기다. 수주 여부를 결정짓는 RG가 원활히 공급되도록 하는 것도 시급하다. 조선업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주문 후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돼 제작을 보증할 수 있는 RG 발급이 필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RG 발급이 대형 조선사에만 쏠리고 있고, 중·소형 업체는 사실상 지원이 끊긴 상태다. 6월 신한은행 등 9개 은행이 대한조선·케이조선 등 중형 업체에 약 2억6000만 달러(약 3600억원) 규모의 RG 발급을 시작해 숨통은 트였지만, 여전히 대형 조선사(약 15조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대표는 “정책금융기관이 나서서 중소 조선사에도 RG 공급을 늘려주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중소 업체가 무너지게 되면 국내 조선 생태계 또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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