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수퍼사이클이라지만…중소 조선사는 ‘인력·중국·자금’ 3중고

오유진 2024. 7. 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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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양극화 심화
지난 16일 선주사로 인도된 케이조선의 5만t급 LNG 운반선. [연합뉴스]
# 동시에 중형 선박 4척을 건조할 수 있는 부산의 마스텍중공업은 지난해 신규 선박 수주에 필수인 RG(선수금 환급보증)를 발급받지 못해 신규 수주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이전에 수주한 선박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신규 건조에 수리조선업을 겸하며 가까스로 버텨왔는데, 더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보고 조선소 부지에 최근 인기인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조선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 한때 세계 조선업계 8위였던 HSG성동조선은 선박 수주를 사실상 중단했다. 완전 자본잠식 상태여서 RG를 발급받기 어렵고, 신규 수주를 한다고 해도 건조할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대신 남은 인력으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스텍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공유수면 사용료가 치솟는 등 조선업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주변의 중소 업체들도 수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등 탈출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 R&D 지원 등 조선업 육성
연이은 수주 잭팟으로 ‘수퍼사이클’(장기 호황)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조선업계에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대형 업체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반면, 중소 업체는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전 세계 선박 수요가 친환경 선박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되고 있는 데다 인력난, 중국 업체의 시장 잠식 등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K조선은 2000년대 HD한국조선해양 등 대형 업체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HJ중공업·대선조선 등 중소 업체가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석탄 등의 화물선)·유조선 같은 중형선박을 담당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 불황이 찾아왔지만 최근에는 다시 수퍼사이클로 불릴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 상반기 약 116척(123억5000만 달러어치)을 수주하면서 연간 목표의 90%를 채웠다. 삼성중공업도 상반기 49억 달러어치의 선박을 수주하면서 연간 목표치 50%를 확보했고, 한화오션은 상반기 실적이 지난해 연간 실적(35억 달러)을 넘어섰다.

반면 중소 업체들은 여전히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중형 조선산업 2023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중형선박 시장에서 국내 중소 업체의 점유율은 1.8%로, 2021년 반짝한 이후 줄곧 하락세다. 지난해 국내 중형선박 수주량은 144만CGT(표준선 환산톤수·66척)로 전년 대비 15.5%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과거 조선업 호황 당시 30여 개에 달했던 중견 업체는 현재 HJ중공업·대선조선·케이조선(전 STX조선해양)·대한조선 4곳 정도만 남았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마저도 사정이 좋지 않다. 중견 업체 가운데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건 대한조선(359억원)이 유일하다. 대선조선은 워크아웃(기업회생작업) 절차를 밟고 있다. 조선업이 수퍼사이클에 진입했지만 중소 업체가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일손 부족 영향이 크다. 수주를 하더라도 이를 소화할 인력이 태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신규 선박 발주 물량이 늘어도 수주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력 부족→수주 감소→근로 환경 악화→인력 부족’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소 업체의 고용 인력은 총 9만6000명으로 2014년 말 대비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0년대 시작된 조선업계의 불황 이후 중소 업체의 인력 대부분이 대형 업체로 넘어갔는데, 이후 신규 인력 공급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부산에 위치한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시장이 호황이라 신규 발주 물량이 꾸준하지만 누적된 적자와 인력 문제에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학과 교수는 “수퍼사이클이지만 대부분의 일감이 대형 업체에 몰리다 보니 중소 업체는 추가 채용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중소 업체들은 대부분 협력업체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금융 등 파격적 지원 필요” 지적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부가 지난해부터 조선업에도 외국인 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했지만 현장에서는 역부족이란 의견이 많다. 한 소형 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1~2년 근무하고 돌아갈 외국인 인력이 아닌 최소 5~10년 숙련된 전문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결국 근본적인 인력난을 타개할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외국인 인력이 유입된 후 예상보다 생산성이 늘지 않았고, 오히려 선박 제품의 성능과 품질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일부 대형 업체는 ‘스마트 야드’(지능·자동화 생산 시스템)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인력을 메우고 있지만 중소 업체가 이를 활용하기엔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여기에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시장에 뛰어들면서 중소 업체의 입지는 더욱 줄고 있다. 조선·해양 시장조사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중·일 조선 수주 점유율은 중국이 64%, 한국이 25%, 일본이 3%로 한국은 2018년 한 차례 중국을 앞선 이후 매년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다. 1분기 카타르 2차 LNG선 29척을 전량 수주하면서 일시적으로 점유율이 늘었지만 연간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 조선업이 부진했던 기간 중국이 경쟁력을 확 끌어올렸고, 중국 정부가 연구·개발(R&D) 지원 등 보조금으로 조선업을 키우고 있다”며 “이제는 가격 경쟁력까지 더해져 한국 업체의 입지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산 선박 가격은 한국산보다 약 15% 쌌는데, 지금은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는 게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일감이 준 중소 업체의 신용등급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이로 인해 수주 계약 때 필요한 RG까지 막히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조선업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선업은 국가 기간산업이자 안보와도 직결되는 만큼 제작금융(선박 제작에서 인도 때까지 드는 자금 대출) 등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얘기다. 수주 여부를 결정짓는 RG가 원활히 공급되도록 하는 것도 시급하다. 조선업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주문 후 인도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돼 제작을 보증할 수 있는 RG 발급이 필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RG 발급이 대형 조선사에만 쏠리고 있고, 중·소형 업체는 사실상 지원이 끊긴 상태다. 6월 신한은행 등 9개 은행이 대한조선·케이조선 등 중형 업체에 약 2억6000만 달러(약 3600억원) 규모의 RG 발급을 시작해 숨통은 트였지만, 여전히 대형 조선사(약 15조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대표는 “정책금융기관이 나서서 중소 조선사에도 RG 공급을 늘려주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중소 업체가 무너지게 되면 국내 조선 생태계 또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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