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권도 차별화가 핵심, 대통령·한동훈 줄타기 시작됐다

2024. 7.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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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당선으로 본 대통령과 여당 대표 관계
국민의힘이 사실상 ‘분당(分黨)대회’ 같은 전당대회를 치른 다음 날인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새 국민의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만찬장에 입장하며 한동훈 대표(왼쪽 둘째),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와 대화하는 모습. [사진 대통령실]
한동훈 대표는 앞에 놓인 당 대표·대선후보·대선 승리의 세 개 허들 중 첫째 허들은 가볍게 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당 대표 자리는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디딤돌보다는 걸림돌이 된 경우가 많았다.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노무현 정부의 고건,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총리는 한때 지지율 1위로 유력한 후보였으나 대통령이 되는 데는 모두 실패했다.

여당 대표도 비슷한 운명이다.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노무현 정부의 정동영, 박근혜 정부의 김무성,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대표 누구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가까이 갈수록 대통령 자리에서는 멀어지는 역설의 이유는 뭘까. 역으로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역대 대통령은 전임자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 됐다. 김영삼에서 김대중, 노무현에서 이명박, 박근혜에서 문재인, 문재인에서 윤석열처럼 정권 교체가 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노태우에서 김영삼, 김대중에서 노무현, 이명박에서 박근혜처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경우도 전임자와 차별화가 승리의 핵심적 요소다. 늘 ‘변화’를 원하는 국민에게는 대통령과 같은 정당이라도 어느 정도 정권 교체 이미지를 갖는 후보가 유리하다.

2012년 박근혜 차별화로 당 변화 이끌어
대통령과 2인자 관계 어떠했나
①정권 교체에 동의하는가? ②야당이 대안인가?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55%를 넘으면 정권은 교체된다. 그러나 ①이 55%를 넘더라도 ②가 50%를 밑도는 상황에서 여당 후보가 대통령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정권 교체를 지지하는 일부 유권자는) 여당 후보를 야당의 대체재로 받아들인다. 김영삼·노무현·박근혜가 그런 경우다.

한국 대통령을 흔히 ‘제왕적’이라고 표현한다. 한국 대통령은 정말 ‘제왕적’인가. 박정희·전두환 두 대통령은 제왕적이 아니라 사실상 ‘제왕’이었다. 시진핑·푸틴·김정은 못지않은 절대 권력을 가졌다. 행정부·집권당·권력기관·국회·사법부·언론을 지배했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제왕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행정부·권력기관·집권당은 여전히 장악했지만, 국회·사법부·언론에 대한 통제력은 잃었다. (당·청 분리 선언 이후인)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은 집권당 통제력을 잃었다. 이젠 그저 ‘1호 당원’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당의장,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충돌 사례에서 보듯 최근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러브 라인’보다는 ‘갈등 라인’에 더 가깝다.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는 현역·계승자·도전자 세 포지션 중 하나다. 단임제인 대통령 선거는 현역 포지션이 없다. 계승자나 도전자 둘 중 하나다. 야당 후보는 당연히 도전자 포지션이다. 문제는 여당 후보다. 계승자와 도전자 포지션 사이에서 실존적 충돌이 불가피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 정권 교체 여론이 55%를 넘고 정권 재창출 여론이 35%를 밑도는 상황이 오면 도전자 포지션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도전자 포지션 후보는 캠페인 목표가 세 가지다. ①대통령이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다 ②내가 더 나은 비전과 리더십이 있다 ③내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 야당 후보는 세 가지 모두 주장할 수 있다. 여당 후보는 ①은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지만 ②와 ③은 강하게 어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극적 반전이 없다면 한동훈 대표도 계승자가 아니라 도전자 포지션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임기 반환점도 돌기 전에 등장한 미래권력 한동훈 대표와 현재권력 윤석열 대통령의 관계는 어떤 역사로 귀결될까. 한동훈 대표 앞에 놓인 시나리오는 네 개다. ①윤석열 대통령과 관계 회복도 하고 당 혁신도 성공하는 것 ②대통령과 관계 회복은 안 되지만 당 혁신은 성공하는 것 ③대통령과 관계는 회복하지만 당 혁신은 실패하는 것 ④대통령과 관계 회복도 안 되고 당 혁신도 실패하는 것. 한동훈 대표는 대통령과 관계 회복보다 당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과 관계 회복 없이 당 혁신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딜레마다.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과 차별화가 불가피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①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②윤 대통령의 아바타라는 이미지 ③연이은 검사 대통령에 대한 우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자칫 위험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으로 대선에서 진 뒤 한나라당은 10년 야당을 했다. 2007년 민주당 정동영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으로 패배한 뒤 민주당도 10년 야당 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갈등은 총선 패배와 박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1997년 이회창의 차별화는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면 김영삼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수 있겠다는 우려를 낳았고 그 두려움 때문에 김영삼 지지층 일부가 이인제를 찍었다.

믿을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후보 없어
한동훈 대표는 2012년 박근혜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2012년 박근혜는 총선과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에도 성공하고 ‘당의 변화’도 이끌면서 ‘보수 통합’도 해냈다. TK(대구·경북)와 충청 두 곳을 고향으로 인식하게 만든 박근혜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선진통일당(국민중심연합과 자유선진당 통합 정당)을 흡수 통합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도 요구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김종인과 ‘청년 세대’를 상징하는 이준석 영입으로 중도 이미지도 구축했다. 박근혜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했을 때, 김대중이 김종필과 ‘DJP 연합’을 했을 때, 노무현이 재벌인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를 했을 때, 박근혜가 진보적인 ‘경제민주화’를 주장했을 때 지지층이 이탈하지 않은 이유는 (상황을 통제하는) 리더십과 정체성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선에서 승부의 관건은 비전이 아니라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민심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을 이끄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쫓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자 이미지가 없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결단해야 할 때 여론조사 뒤로 숨으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선택지가 있다. ①한동훈 대표 체제 고립과 붕괴 시도 ②한 대표와 관계 회복과 수평적 당·정 관계 수용 ③(탈당하지는 않지만) 당과 거리 두기 ④정무장관과 원내대표 등을 통해 야당과 직접 대화하는 주도적 정치 시도. 윤 대통령은 이미 이준석·김기현 체제를 허물었고 밀사를 통해 이재명과 대화를 시도했다. ①④의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다. 수평적 당·정 관계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②가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1차적 선택은 윤 대통령에게 달렸다. 한동훈 대표는 이에 따라 대응하는 포지션일 수밖에 없다.

모든 대통령은 ‘믿을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후보를 찾지만 늘 실패했다. 이길 수 있으면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있으면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결론은 뻔했다. 항상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그게 정당의 합리적 선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위상이 비슷하지만, 퇴임 후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차이를 만든 핵심은 정권 재창출 성공 여부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격하를 피할 수 없었다.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기 때문에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면 지금과 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야 업적을 남길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는 과거 사례에서 또 하나 배울 게 있다. 한국과 미국 모두 경선에 치열하게 싸우고 본선에서 분열하지 않으면 승리에 도움된다. 2007년 이명박·박근혜, 2008년 버락 오바마·힐러리 클린턴 사례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야당일 때라는 사실이다. 정권을 찾아와야 한다는 지지자들의 압력 때문에 분열할 수 없는 것이다. 여당은 쉽게 분열한다. 1997년 이회창·이인제, 2022년 이재명·이낙연 사례다. 초유의 상황 앞에 놓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됐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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