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와 감각과 기억의 ‘오류’들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 지음
김보은 옮김
디플롯
“사고하고 반성하며 추론하는 능력은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기술이며, 어쩌면 인간을 종으로서 특징 짓는 최고의 능력일 것이다.” 인간을 한껏 추어올리는 지은이의 말에 안심하기는 이르다. “인간의 사고력에는 결함이 너무나 많다”는 지적이 곧 나온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비이성적 유인원’(The Irrational Ape). 다름 아닌 인간을 가리키는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면면을 구체적 유형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전한다.
지은이는 연역적 삼단논법처럼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오류인 여러 논법을 파고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논리적 왜곡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기억의 오류도 있다. 무작위 자료에서 패턴을 찾아내려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아포페니아’라고 부르는데, 1970년대 바이킹 1호가 찍은 화성 사진에 언뜻 사람 얼굴이 보인 것도 이런 예다. 지은이는 사진의 해상도를 높이면 평범한 암석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대중음악을 거꾸로 틀면 숨겨진 메시지가 들린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 영국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는 이로 인해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 형사재판의 증인이라면, 기억의 오류는 이 책에 소개된 사건처럼 억울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은이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의 마음을 비과학적 성격 검사 등을 통해서도 설명한다. 기존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나 증거만 받아들이는 ‘체리피킹’은 알다시피 소셜 미디어 시대에 한결 두드러진다.
지은이는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생물통계학자이자 암 연구자다. 그는 특히 백신 반대론자, 대체의학 숭배자 등의 주장을 맹공하며 이를 다루는 매스미디어의 ‘기계적 중립’을 비판한다. “균형 잡힌 보도”는 환영할 일이지만 “균형은 각 주장이 내세우는 증거의 굳건함에 비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과 가짜 과학을 동등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트럼프와 힐러리가 대결한 미국 대선 때의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에도 적용된다.
‘비판적 사고’에 대한 이 책의 강조는 때로는 참담하고 때로는 다행스러운 역사적 사건들로도 뒷받침된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에서 참새 박멸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가 메뚜기의 창궐과 대기근을 불러온 반면교사의 사례만 아니라 냉전 시대 전쟁 발발 위기를 막은 이성적 판단의 사례도 등장한다.
지은이는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의 마음은 특이하게도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고 썼다. 볼테르의 말을 빌려 “진실을 사랑하되 오류를 수용” 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특히 지금 시대 횡행하는 각종 음모론이나 허위 정보는 ‘실수’를 알아차리는 일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더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허위 주장과 선전에 맞설 뿐 아니라 ‘실수’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일 법하다. 다만 여러 구체적 이슈에 대한 저자의 지지 혹은 반대 입장에 대해서도 때로는 독자의 ‘비판적 사고’가 필요해 보인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