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46] 그로토(Grotto)의 공간
그로토(Grotto)는 지형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동굴을 뜻한다. 바다와 연결된 경우도 많은데, 보통 석회석으로 이루어져 오랜 세월 동안 물과 닿아 부식되면서 특별한 형태가 구축되고 또 변형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런 지형을 이용해서 마을을 건설하고, 지하 공간에는 와인과 음식을 저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바닷가에 사는 연인들이 몰래 사랑을 나누고, 해적들은 배나 약탈한 물건을 숨기는 장소로도 사용하곤 했다. 현재도 이탈리아의 카프리나 나폴리 등 해안 도시 주변에 산재해서 관광 명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용어지만, 사이판을 여행했던 사람들은 스쿠버다이빙 등으로 체험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 남부 라고스(Lagos) 마을에도 그로토가 있다. 육지로부터 직접 접근이 어려워 작은 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람하며, 구간에 따라서는 머리를 숙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여느 암석 해안이나 섬처럼 ‘쌍둥이’, ‘코끼리’, ‘낙타 머리’, ‘타이태닉 빙산’ 등의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분포되어 있고, 중간중간에 천연 모래사장도 마련되어 있다. 잔잔하게 출렁이는 물결 속으로 투영되는 햇빛은 바닷물 색을 시간별로 변화시킨다. 환상적이다. 운이 좋으면 멀리서 점프하며 헤엄치는 돌고래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동굴의 삼차원적 형태의 공간마다 거실, 주방, 침실, 차고 등 마치 하나의 주택 방처럼 이름을 붙여 놓은 점이다.
그로토의 독특한 형태는 정원 디자인에도 응용된다. 잔디로 펼쳐진 넓은 정원의 한구석에 독립된 구조물을 만들고 작은 분수를 설치하거나, 내부 공간을 만들어 고요한 명상의 공간으로 사용한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노트르담 대학에도 캠퍼스의 한적한 구석에 ‘그로토’라 이름 붙인 공간이 있다. 1896년 성모마리아를 찬양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인데, 학생들이 고민이 있거나 정서적으로 힘들 때 찾아와서 위안을 삼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디자이너 켈리 웨어스틀러(Kelly Wearstler)는 로스앤젤레스의 ‘프로퍼(Proper) 호텔’을 설계하면서 레스토랑 내부의 특별하고 아늑한 공간을 ‘그로토’라고 명명했다. 자연은 영원한 디자인의 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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