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64] 초식동물과 아파트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얼룩말, 영양, 가젤 같은 초식동물은 군집 생활을 한다. 반면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는 가족 단위거나 혼자 초원을 누빈다. 초식 동물들은 왜 집단 생활을 할까. 안전에 대한 본능 때문이다. 사자가 가젤을 공격해 무리에서 가장 느린 가젤 하나가 희생되면 무리의 생존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이 닥치면 아이와 여성, 노약자들이 먼저 희생되는 것과 비슷하다.
‘스프링복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스프링복(springbok)은 수천 마리가 무리를 이루며 시속 88km로 달릴 수 있는 아프리카 영양의 일종이다. 스프링복은 신선한 풀을 찾아 수시로 이동하는데 문제는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사는 데서 발생한다. 선두 그룹은 신선한 풀을 먹을 수 있지만 뒤쪽은 더 이상 먹을 풀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기에는 풀이 많아 평화롭지만 풀이 부족한 건기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 이들은 자신들의 장기인 달리기로 극한의 속도 경쟁을 벌인다.
누군가 선두를 위해 달리기 시작하면 모두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그 질주의 끝은 절벽에 이르러야 끝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가속도가 붙은 질주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것이다. 스프링복의 비극은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서지만, 본래의 목적을 잊은 의미 없는 경쟁은 공멸로 다가온다. 축구 경기장의 앞 관중이 일어나면 뒤에 관중들도 일어나 모두가 불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며칠 전, 공원에서 앞서가던 젊은 부부의 대화를 들었다. 사려던 아파트 가격이 전 고점을 넘었다며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옥신각신 중이었다. 누군가를 뒤따르며 돈을 버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걷겠다고 서로 설전을 벌이는 건,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초식동물처럼 대단지 아파트에 오순도순 모여 살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고삐 풀린 가계 대출 기사가 쏟아지는 지금이 스프링복의 교훈을 떠올려야 할 때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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