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언의 공연산책]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붉게 만개한 정의와 희망의 대서사시

김현숙 기자 2024. 7. 2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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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일: 2024.07.24
캐스팅: 김지우, 김성식, 서영택 외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좌석: 6열 중앙

"살고 싶은 세상 위해 다 함께 가자"

눈부시게 찰랑이는 금발과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한 군인이 무대 위로 등장한다. 강단 있는 성격이 묻어나는 당당한 걸음걸이와 시원시원한 몸짓, 위엄있는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그 시절 소녀들이 열광했던 순정 만화 속 왕자님이 책을 뚫고 튀어나온 듯하다. 명망 있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프랑스 근위대장의 자리까지 오른 주인공, 오스칼은 존재만으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다. 마치 푸르른 정원 한가운데 핀 붉은 장미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척박한 땅에 희망을 가져 올 아름다운 장미, 오스칼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빵 한 조각 살 돈이 없어 허덕이는 국민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파티를 여는 귀족들. 베르사유 궁전은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연일 울려 퍼지고, 파리의 뒷골목은 민중들의 신음소리로 가득 메워진다. 오스칼은 이 혼란한 프랑스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나 자란다. 대대로 왕실을 지켜온 유서 깊은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가문의 명예를 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들로 키워져 당당히 근위대장의 자리에 오른다. 어느 날, 귀족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도적 '흑기사'가 등장하고, 그의 뒤를 쫓던 오스칼은 점차 부조리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데... 조국의 땅에 정의와 평화를 꽃피우기 위한 이들의 외침은 프랑스의 봄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인가.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붉게 만개한 정의와 희망의 대서사시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이케다 리요코 작의 동명의 순정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프랑스 베르사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작 만화는 프랑스 혁명의 역사와 로맨스, 복수 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순정 만화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연재 당시에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렇기에 해당 작품을 뮤지컬로 제작한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이런 기념비적인 작품이 무대로 재현된다는 사실에 큰 관심이 모였다. 특히 '마타 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베토벤' 등 뛰어난 창작 뮤지컬 작품을 꾸준히 제작해 온 EMK뮤지컬컴퍼니가 지휘봉을 들었다는 사실에 더욱 큰 기대의 시선이 몰렸다. 공연 당일, 극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관객이 바라보는 가운데 드디어 베일이 걷히고 눈부신 무대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극이 시작되고 무대가 펼쳐지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당대 귀족들의 호화로운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화려한 비주얼이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의 무대는 마치 공작새가 아름다운 날개를 넓게 펼쳐 상대를 유혹하듯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멋지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좌중을 압도하는 스케일과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제대로 이를 갈고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입이 떡 벌어지는 번쩍번쩍한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 보면 그림 같은 무대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월드 프리미어 창작 뮤지컬,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붉게 만개한 정의와 희망의 대서사시

가난하고 굶주리는 국민들, 그들을 착취해 저들의 잇속만 챙기는 귀족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을 깨고 사회에 정의의 바람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격동의 프랑스를 살았던 이들의 삶과 사랑, 정의와 평화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이 몇 안 되는 키워드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이 작품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만화, 영화 등을 자주 접한 사람이라면 더욱 큰 기시감을 느낄 법한 스토리일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한정하고 보더라도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미 포화상태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같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만 해도 '레미제라블', '마리 앙투아네트' 등의 쟁쟁한 뮤지컬이 포진해 있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이런 클래식한 이야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냐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을 볼 수밖에 없게 하는 특별한 이유, 한가지 독보적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이 작품의 독보적인 히로인, '오스칼'의 존재다.

오스칼은 누구나 인정하는 완벽한 주인공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조각 같은 외모에 귀족 신분, 근위대장이라는 높은 지위에다 정의감과 의협심, 약자를 감싸 안는 선한 마음까지.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말 그대로 만화에서나 존재할 법한 캐릭터다. 가난한 이들의 척박한 삶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기꺼이 프랑스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가장 현실성 없는 인물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헤쳐 나가는 아이러니는 짜릿한 쾌감과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붉게 만개한 정의와 희망의 대서사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주인공 오스칼의 목소리를 통해 더 크게, 더 멀리 울려 퍼진다. 그의 모습에는 우리가 꿈꾸는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우월감과 위선이 아닌 따스한 마음과 진심 어린 눈빛으로 민중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싸움을 주저하지 않는 것. 자유와 평등,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를 향해 내달린 오스칼의 땀방울은 세상 어떤 귀족의 보석에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게 빛난다. 

오스칼을 중심으로 모인 다른 캐릭터들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오스칼을 향한 순애보적 사랑을 드러내는 앙드레는 더없이 큰 희생정신과 순박한 면모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귀족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으로 오스칼과 대립각을 세우던 베르날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중심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모에 더해 폴리냑, 모리엘, 제로델 등 수많은 캐릭터들이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등장인물이 많아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간혹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하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작품의 분명한 장점이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를 구성하는 넘버들은 힘 있고 웅장한 느낌의 화려한 음악으로 채워진다. 풍부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아름다운 화음은 프랑스 베르사유의 황홀한 전경과 민중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넘나들며 작품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담아낸다. 특징적인 부분으로는 넘버 대부분에 고음부의 존재감이 짙게 나타난다는 점이 있다. 이런 구성이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기는 하나, 듣는 입장에서는 귀가 쉽게 피로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넘버의 마지막을 고음으로 장식하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구성이 단조롭게 느껴진다는 점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붉게 만개한 정의와 희망의 대서사시

배우들의 합과 연기는 창작 초연작인 데다 관람일이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임을 감안했을 때, 매우 뛰어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특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내는 과정에 있었을 수많은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물의 특성과 배우 본인이 가진 장점을 더해 저마다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장면 장면마다 드러났다. 아직 초반이라 약간은 불안한 부분이 보이기도 했으나, 그렇기에 공연이 진행될수록 긍정적인 변화를 거듭할 모습이 더욱 기대가 된다.

시대의 정의, 모두를 위한 자유, 평등한 사회와 평화로운 일상. 지금은 너무나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던 과거의 시대, 누구보다 앞장서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 한 사람이 있었다. 프랑스 베르사유에 핀 한 송이 장미. 때로는 날카로운 가시의 모습으로, 때로는 부드러운 꽃잎의 자태로 프랑스 땅을 휘저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예술과 노래가 되어 새롭게 피어난다. 사회의 명암을 아우르는 창작 대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오는 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붉게 만개한 정의와 희망의 대서사시

글, 강시언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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