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카드웰의 법칙

"만물은 극에 달하면 되돌아가고, 즐거움은 극에 달하면 근심이 된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날 비틀대는 한국 사회를 이보다 잘 반영한 표현은 드물다. 성장은 정체되고 혁신은 멈췄으며 사회는 분열되고 미래는 희미해졌다. 한때 혁신의 상징이었던 이들은 대부분 지대 추구자가 되었다. 네이버는 소매업 수수료나 노리는 쇼핑몰이 되었고, 카카오는 주식 놀이로 사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와 비슷해졌다. 기술 혁신보다 상장 놀음에 집착하다 부도에 몰린 큐텐 사태를 보는 마음은 위태롭고 씁쓸하다. '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 펴냄)에서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는 국가가 과학기술에 대한 집단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때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 지식은 저절로 생겨나지도,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카드웰의 법칙 탓이다.

카드웰의 법칙은 기술사학자 도널드 카드웰이 발견한 것으로, 한때 과학기술 문명을 선도했던 혁신 국가들이 경제성장과 함께 그 창의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끝내 멈춰 서고 뒤처져 추종자로 전락하는 경향을 말한다. 르네상스 때 이탈리아 북부와 독일 남부가 주도한 기술 혁신은 대서양 항로 개척 이후엔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종교개혁 시대엔 사상 자유의 요람으로 선박 기술 혁신을 일으킨 네덜란드로 넘어갔다. 혁신의 주도권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다시 영국으로, 19세기 말 이후에는 독일과 미국으로 이어졌다.

카드웰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유는 과학기술 발전이 정치와 문화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과학적 발견은 기존 믿음이나 통념을 파괴하고, 기술적 혁신은 낡아빠진 사업 모델이나 사회 구조를 파괴한다. 그 과정은 험난하다. 최근 플랫폼업자들이 보여주듯 과거에 혁신을 주도해 우월적 지위를 얻은 세력이 문제다. 이들은 압력 단체로 변신해 자신들 지대 추구에 유리하도록 정치 시스템을 조정하고 사회제도를 조작해 산업적·교육적·문화적 진입장벽을 세운다. 학교 성적과 스펙이 성공을 지배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그 선연한 증거다. 기존 지식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비판 능력을 상실한 전문가에게 유리한 까닭이다.

모키르에 따르면 다원주의 문화와 아이디어 경쟁이 결합한 사회만이 카드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확산하고 공유함으로써 기존 지식이 새로운 지식의 도전을 받아 언제든 수정·보완될 수 있는 문화, 정치가 부자나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작동하는 사회일 때 성장은 지속된다. 한국 사회는 현재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