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래잡기] 공정한 올림픽이라는 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유색인종 겪는 유리천장 그려
자본·정치에 휘둘리는 올림픽
본래 취지 다소 퇴색했지만
각본없는 명승부에 국민 환호
선수들 땀과 노고에 박수를
프랑스 파리에서 지구 방방곡곡의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전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시작하였다. 조국을 대표하는 선수인 '올림피안'이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과 그만큼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 선수들이 규칙을 존중하며 우열을 겨루고 결과에 승복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감동적인 드라마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이들이 눈치챘듯이 올림픽은 이제 심신이 건강한 이들을 기리는 원래의 의도가 무색하게 세계 각국의 기술 전쟁터이자 수십조 원이 걸려 있는 스포츠 산업의 경연장으로서 각종 후원과 홍보, 방송권을 둘러싼 돈이 흘러넘치는 곳이 되었다. 물론 선수 개인의 실력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가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과 최첨단 장비, 과학적인 전략도 중요해졌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국가 경쟁력이 높은 것과 같다고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어떤 정치 활동도 금지된 곳이지만 정치 논리가 가장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곳도 올림픽이다. 나치가 창궐하던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가 금메달 4관왕이 되면서 영웅으로 부각되기도 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출전이 금지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졸라 버드는 영국 선수로 참가해 논란의 중심에 섰었고, 냉전시대에는 반쪽 올림픽이 열려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세네갈의 개념미술 사진가 오마르 빅토르 디오프가 2014년에 만든 '장-밥티스트 벨리'는 복잡한 이데올로기와 스포츠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는 '디아스포라' 프로젝트의 한 작품이다. '디아스포라' 프로젝트는 아프리카 출신으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디오프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아프리카 대륙 출신 인물들이 흔치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사진 속 모델은 작가 자신이며, 안루이 지로데가 1797년에 그린 장-밥티스트 벨리의 초상화 구도와 색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벨리는 세네갈에서 태어났으나 노예 상인에게 잡혀 오늘날의 아이티에 있던 당시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 팔려갔지만 결국 돈을 모아 자유를 획득한 사회운동가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노예제 폐지에 앞장선 벨리는 국민공회의 첫 흑인 위원으로 선출되어 프랑스 본토로 넘어간 후에도 왕정복고파와 격렬하게 논쟁하며 만민평등권을 주장하고 식민지 유색인종 시민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18세기 말에 그려진 지로데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국민공회 유니폼과 비슷한 의상을 입은 디오프는 벨리가 둘렀던 프랑스 삼색기 띠 대신 세네갈 전통 문양을 연상시키는 허리띠를 두르고, 노예반대론자 레날의 흉상에 기대 있던 진짜 벨리와는 달리 축구공이 놓인 기둥에 기대어 왼손에는 골키퍼 장갑을 들고 있다.
디오프는 소수의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이 마치 그 옛날의 벨리처럼 유럽에서 큰 성공을 해도 조금만 잘못하면 관중에게서 바나나 세례를 받거나 연봉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인종차별을 당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서구 열강의 한복판에서 활동하며 슈퍼스타로 주목을 받는 것 같지만 아직도 견고한 유리천장이 있는 세상에서 유색인종이 활동을 하는 데에는 초인적인 실력이 필수라는 오래된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공정하게 실력을 겨루는 스포츠 제전 올림픽도 여전히 돈 많은 선진국들이 메달을 휩쓸어가는 것을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은 아직 요원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도 일단은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국우선주의는 뭔가 공격적인 극우 성향인 것으로 치부되는데, 그런 정치적 고려 없이 시원하게 조국을 응원하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귀한 순간이 올림픽 기간이다.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팀 코리아 파이팅.
[이지현 OCI미술관장(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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