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스물일곱의 나에게⑥] 뒷모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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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저널리스트 헤더 라드케가 '엉덩이즘'이라는 책을 냈다.
그런데 뒷모습은 하나다.
"절연한 슬픔/ 절연하지 못한 슬픔/ 그리워하는 나를 그리워하는 막막함/ 코끼리 같은 동물의 엉덩이를 중심으로 뒷모습// 네 시도 나를 두고 간다".
뒷모습은 떠나보낼 것이 아니라, 붙잡아 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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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되고 오래가는 건 뒷모습
지나간 과거나 회상 아닌
이면에 숨은 '진실'에 초점을
미국 저널리스트 헤더 라드케가 '엉덩이즘'이라는 책을 냈다. 원제는 'Butts: A Backstory'이다. 엉덩이의 해부학적 구조부터 인류가 엉덩이에 상당한 시선을 보내는 문화인류학적 이유까지 400페이지를 써 내려갔다. 폭넓은 분석에 비해 결론은 좀 싱겁다. 엉덩이는 엉덩이일 뿐이니 과하게 생각하지 말자, 엉덩이에 대한 과민과 집착에서 해방되자는.
엉덩이를 생각하다 뒷모습을 떠올렸다. 늘 같이 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조차 좀처럼 보기 힘든. 그런데 엉덩이와 뒷모습은 그 의미가 아주 다르다. 전자는 또 다른 외면이지만 후자는 다른 형태의 내면인 까닭이다. 앞은 순간이지만 뒤는 오래간다. 눈은 앞을 좇아가지만 입은 뒤를 더 좋아한다. 첫눈에 반하지만 스파크일 뿐이고 뒷모습은 각인되면 이야기가 생긴다. 앞모습은 시작이지만 뒷모습은 지속이다.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 선생의 작품 중 '뒷모습'이라는 수필집이 있다.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의 작품에 글을 더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앞모습은 가면, 페르소나(persona)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의 페르소나로 살지 못한다. 그런데 뒷모습은 하나다. 굳이 다른 모습을 만들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만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뒷모습은 무의식이며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시인들이 뒷모습을 시로 썼다.
김은지의 '막'이란 시는 이렇게 끝난다. "…절연한 슬픔/ 절연하지 못한 슬픔/ 그리워하는 나를 그리워하는 막막함/ 코끼리 같은 동물의 엉덩이를 중심으로 뒷모습// 네 시도 나를 두고 간다".
이규리는 시 '뒷모습'에서 "…뒷모습은 남의 것이라지만,/ 너무 참혹할까 봐 뒤에 두었겠지만,/ 누군가 내 뒷모습 본다면/ 역시 분홍색으로 읽을 것이다/ 해답은 뒤에 있다"고 적었다.
떠나간 자리에 진실이 남는다. 직장을 그만둬 본 사람들은 안다. 떠난 후에 어떤 모습이 어떤 소리가 남는지. 사랑도 마찬가지다. 떠난 뒤에 어떤 표정이 어떤 울림이 남는지, 그리고 시간에 따라 작아지는지 커지는지. 떠날 것을 미리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때 잘한다. 뒤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또한 잊지 말아야 할 문제다. 뒷모습을 평소에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겠다. 얼굴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 1년에 한 번쯤이라도, 누군가의 렌즈에 잡힌 사진으로라도 자신의 뒷모습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겠다.
아버지가 되면 더 그렇다. 아이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이탈리아 네오레알리스모의 명작으로 꼽히는 흑백영화 '자전거 도둑'에서처럼 말이다. 아이는 실의에 빠져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에서 지금 삶의 고통을 읽는다.
자신의 뒷모습을 기록하다 보면 사물 혹은 사건의 뒷모습, 진실에 다가가는 실마리가 생긴다. 단선적 평면적 사실에 휘둘리지 않고, 입체적 다차원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뒷모습을 기록하는 데 있어 경계할 것이 있다. 과거 지향, 회상형 기록보다는 지금 여기, 현재형이 되는 게 낫다는 점이다. 뒷모습은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표면에 대비되는 이면, 가면 속의 '생얼', 거짓에 대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소년에게도 청년에게도 그리고 중년에게도 뒷모습이 있다. 죽음에 다가섰을 때에도 있을 것이다. 뒷모습은 떠나보낼 것이 아니라, 붙잡아 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김동률 노래 '뒷모습' 가사처럼 '죽도록 후회'하게 될 것이다.
[김영태 코레일유통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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